미래일기, 뉴욕으로 나를 보내다
미래일기, 뉴욕으로 나를 보내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21.04.07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기, 주나 – 세계여행] 뉴욕1
때는 바야흐로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뉴욕에 도착한 2018년 12월 28일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뉴욕의 2018년 12월 29일. 이날의 일들을 자세히 기억하는 건 기억이 아닌 기록 덕분이다.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2012년도부터의 일기들이 남아있다. 워낙 기술이 좋아져서 핸드폰을 바꿔도 알아서 저장해준다. 사소한 것들까지 기록하는 습관 덕분에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사려고 했던 물건을 잊은 적 없고, 호주에서는 스치듯 만났던 친구를 6년 만에 찾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바로 종종 미래일기를 쓴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미래일기를 쓰면 그 일들이 정말로 일어난다. 생각한다고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생각한 것을 기록하는 순간 행동으로 옮기려 했고, 그러면 언젠가는 이루어져 있었다. 세계여행도 그 중 하나. 생각보다 즉흥적으로 떠났지만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꿈.

두 번째 뉴욕 여행도 그렇게 계획됐다. 당시 1월이었는데 연말 분위기가 조금 남아있었다. (귀차니즘에 빠진 가게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우지 않은 덕분에….) 그 모습을 보고 연말의 뉴욕이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뉴욕에서 연말을 보내겠다고 일기를 썼다. 마침내 그 긴 시간의 꿈과 일기들이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27번이 되어 2018년 연말, 뉴욕으로 나를 보내게 되었다.

 

2017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동생들과 함께. 어린 시절 아빠가 출장길에 사다 주신 미국 필통이 나를 2년 연속 이곳에 있게 만들었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기록. 현지인들이 줄 서서 먹는 베이글 가게에 들어갔다. 역시 맛집은 이렇게 찾는 거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8년 기록2. 이날의 기록이 베이글과 피자뿐 이라니. 진짜 뉴요커 같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어린 시절, 아빠가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오며 여동생과 나에게 필통을 사다 주셨다. 미국까지 갔는데 더 근사한 선물을 기대하지 않았냐고? 그 필통은 달랐다. 고급스러운 소재의 네모난 필통은 위쪽 버튼을 누르면 지우개가 튀어나오고, 아래쪽 버튼을 누르면 자가 튀어나왔다. 2단으로 되어있었는데 1단에는 형형색색의 연필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심지어 필통에 연필깎이가 붙어 있기까지 했다. 단순한 필기 용품이 아니라 근사한 장난감 그 자체였다. 그 필통을 가지고 놀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곳이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언젠가 꼭 가보겠어!’ 그 꿈을 꾸었을 때만 해도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았었다. 필통 덕분에 남동생이 20살 된 기념으로 떠났던 삼남매 첫 해외 여행지로 미국을 선택했다. 나비효과와 미래 일기의 힘을 믿는 나는 세계여행의 시발점이 그 필통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아빠에게 미국 필통을 선물 받았다. 둘째,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궁금해졌다. 셋째, 그로부터 20년 후, 2017년 동생들과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으로 미국을 갔다. 넷째, 경이로움 속에 뉴욕 타임스퀘어를 걸으며 예전에 꾸었던 세계여행이라는 꿈이 기억났다. 다섯째, 일기를 썼다. 여섯째, 정확히 이듬해 다시 떠났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7년 1월의 뉴욕. 저 사람들을 보는데 문득 나의 잊고 있던 지난 꿈이 생각났다. ‘세계여행’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2017년 1월의 뉴욕 자유의 여신상.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당시 이렇게 적었었다. “큰일 났다. 여기서 3개월만 살고 싶다.” 아직은 이루지 못한 꿈.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뉴욕의 2018년 12월 29일, 보스턴에서 5시간 3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다. 14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이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 2년 만에 도착한 뉴욕은 깜짝 놀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12월과 1월의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니!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영어로 욕설도 들으니 정말 내가 미국에 있구나 싶었다. 마냥 재미있었다. 그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계속 웃음이 났다.

‘뉴욕’이라고 인터넷에 검색을 하니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 여행자들의 로망과 기대를 120% 충족시켜 주는 여행의 천국’(출처 네이버)이라고 소개한다. 뉴욕은 딱 그런 곳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곳이기에 엄청난 기대를 앉고 갔다. 그 기대를 120% 충족 시켜주었다. 방송에서 수없이 봤던 타임스퀘어는 ‘실제로 보면 방송이 이 모습을 다 담지 못했구나’ 하면서 입이 떡 벌어진다. 그곳에 나오는 삼성 광고는 또 왜 그렇게 가슴이 벅찬지 모르겠다. 한국 광고가 나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느껴지는 것 자체가 그곳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그리고 ‘무한도전’. 영화와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지 덤보. 사진과 내 마음이 두 제목과 너무 잘 어울리는 듯하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브로드웨이 42번가. 연극영화과 졸업생으로서 이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얼마나 설레던지.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뉴욕에 도착한 다음 날, 카메라도 들지 않고 아주 가볍게 길을 걸었다. 2년 전, 뉴욕에서 봐야 한다는 것, 먹어야 한다는 것, 해봐야한다는 것들을 해봤다. 이번엔 뉴욕에 온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 그냥 걸었다. 관광객처럼 사진도 안 찍고, 정말 뉴요커가 된 것처럼 하루를 보냈다. 맛집도 찾지 않았기에 점심은 현지인들이 줄 서 있는 베이글 집에 들어갔다. 간식으로는 1불짜리 피자를 사서 걸어 다니며 먹었다. 센트럴 파크,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42번가, 고개만 들면 보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2018년을 마무리하는 사람들.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요즘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시기이기에 더욱더 그날의 공기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누군가와 함께 갔던 여행지를 혼자 다시 가보는 건 뉴욕이 처음이었다. 혼자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을 줄만 알았는데 곳곳에 동생들과의 추억들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그립고 아쉬웠다.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이자 여행자들의 로망과 기대를 120% 충족시켜 주는 여행의 천국 뉴욕.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도시이자 여행자들의 로망과 기대를 120% 충족시켜 주는 여행의 천국 뉴욕.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언젠가 다시 동생들과 뉴욕으로 여행 가고싶다는 미래 일기를 쓴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언젠가 다시 동생들과 뉴욕으로 여행 가고싶다는 미래 일기를 쓴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꿈은 꾼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행동해야 한다. 요즘은 일단 앉아서 계획만 세우거나 생각만 하지 말고 그 시간에 행동부터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난 행동의 원천은 꿈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는가. 꿈이 없다면 무엇이든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당장 이룰 수 없는 일들 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일지라도 말이다. 나도 이렇게 세계여행을 하리라곤 그 꿈을 적을 때까지도 몰랐다. 빨간머리 앤이 했던 말 중에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들로 계획을 세우면 일주일이 그렇게 길지 않을 거야. 너의 방이 무슨 색이었으면 좋겠는지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해봐.”

언젠가 다시 동생들과 뉴욕으로 여행가고 싶다는 미래 일기를 쓴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