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4.09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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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10년도 훨씬 전에 얘기다.
주택청약 통장을 팔려고 한 적이 있었다. 벼룩시장에 ‘청약통장을 삽니다’라는 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고 그 글을 본 내가 거기다 전화를 걸 뻔 했으니까 말이다. 근데 내가 왜 그걸 팔려고 했을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만 아이 둘을 키우며 도시에 살기엔 턱 없이 부족한 돈을 벌어다 줬다. 때문에 결혼할 때 받은 반지도 팔아먹고 남편 예물로 해준 오메가 시계도 팔아먹고 애들 금반지까지 팔아먹었지만 돈이 늘 모자랐다. 아무리 아낀다 해도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해야 했고. 그중에서도 ‘식’이 늘 문제였다. 

옛날이야기에 보면 이런 게 나온다.
부자인 형님들은 부모님의 재산을 탐하고 내쳤지만 가난하고 착한 막내는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다. 그래서 결국 복을 받아 잘 먹고 잘 살았다….
이야기 속에선 가난한 막내가 늘 효자효녀였고 나 역시 제일 가난한 막내였다. 하지만 나는 효녀가 아니었다.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였다. 배꼽 인사 잘한다고 동네 슈퍼 아줌마가 콩나물 한 움큼 꽁으로 주는 것도 아니었다. 애 낳고 살아보니 하나에서 열까지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세상이었다. 그래서 늘 돈이 모자랐다.

근데 문제는, 나보다 형편이 훨씬 나은 언니 오빠 집은 다 놔두고 틈만 나면 엄마는 우리 집에 와있고 싶어 했다는 거다. 맘이 편하다. 잠이 잘 온다. 입맛이 돈다… 이러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씩이고 우리 집에 와 계셨다. 엄마가 오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밥 차릴 때 생선 한 토막이라도 상에 올리려면 시장을 봐야했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친정 엄마에게는 돈 없는 표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하고도 엄마한테 시시때때로 도움을 받았기에 ‘돈 없다’ 소리가 목구멍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집을 얻을 때 돈을 보태주거나 아이들 옷을 사주고 가전제품을 바꿔주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집이나 가전제품, 애들 옷을 뜯어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나에겐 현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엔, 애들 돌 반지를 동네 금은방에다 내다 팔았다. 다음엔 결혼반지… 그 다음엔 시계…. 
이런 식으로 돈 되는 것들을 팔아먹기 시작했다. 물론. 엄마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젠 더 이상 팔아먹을 게 없어진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청약통장 삽니다’라는 글을 보게 됐다. 나에겐 아직 청약통장이 남아있었던 거다. 알아보니 그걸 다른 사람에게 팔면 3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이면 당분간은 돈 걱정 하지 않고 반찬을 사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법(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 걸리면 인생 ㅈ되는 일이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 해봤지만 그건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쑥을 뜯어다 밥상을 차려드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집에 가.
왜?
나도 힘들어!
뭐가?
그냥 다!!

그날 엄마는 내 앞에서 작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갖고 와라. 짐도 있고… 그만 집에 갈란다. 
가라니까 가야지. 내가 어찌 아냐. 너희 집 가자고? 싫다. 내 집 갈란다. 그래…. 

엄마가 떠나고 나서 혼자 펑펑 울었다.
더 이상 팔아먹을 게 없어서 가라고 한 건데…
기냥 청약통장이라도 팔 걸 그랬나…
밤에 잠이 안 왔다. 그래서 다음 날 엄마 집에 갔다.

왜 왔냐?
엄마 데리러 왔지.
가라며. 됐다 안 간다.
에이, 가자 엄마…. 

그러다 엄마 앞에서 눈물이 터졌다.
왜 우냐… 알았다 가자 그래…. 

엄만 다시 작은 언니를 불렀고 언니는 번역 일이 바쁘다며 어린 조카 둘까지 우리 집에 떨궈놓고 갔다. 나는 그 대가로 언니에게 돈을 요구했다. ‘30만원만 빌려줘. 애들 잘 먹여야 될 거 아냐.’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포스터 ⓒ위클리서울/ 그래픽=정다은 기자

그날 밤. 애들 재워놓고 엄마랑 잭 니콜슨이 나오는 비디오를 빌려봤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얼마나 깔깔 웃으며 재밌게 보시던지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잭 니콜슨이 아빠를 닮았다며 좋아하던 엄마… 언젠가 그 영화를 다시 한 번 봐야지 해놓고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당신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자식은 부모 앞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더 나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 역시, 더 잘 사는 모습, 더 나은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돈이 많다고 좋은 자식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기는 쉽지 않았다. 내 자식부터 챙기기 바쁘고 먹고 살기 힘들어 ‘나중에 여유 되면’이라는 변명 뒤에다 엄마를 두고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 내 시간이 생기고 뭔가를 팔아야 반찬을 살 수 있는 형편은 벗어났지만… ‘이젠 엄마가 없다.’ 

시간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두는 것.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게 부모님에 대한 ‘효도’다.
뭐 대단한 효도를 하겠다고 그걸 뒤로만 미뤄두었을까. 살아계실 때 더 자주 안아드리고 맛있는 거 같이 먹고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보고 봄에 꽃이 피면 공원이라도 함께 걷는 거. 그런 것들이 바로 효도인데 말이다. 

봄나물 무치고 된장찌개 끓여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리던 그때가 그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청약통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도 아낌없이 팔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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