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아파트 택배 대란

택배노조는 지난 19일 오전 배달차량 지상 진입을 전면 금지한 해당 아파트 단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 시위를 시작했다. 사진 우정호 기자
택배노조는 지난 19일 오전 배달차량 지상 진입을 전면 금지한 해당 아파트 단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 시위를 시작했다.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위클리서울=우정호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기사들과 입주민 사이에서 발생한 ‘택배 갈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아파트 측에서 택배 차량의 아파트 단지 내 지상 출입을 막자 택배 노조가 반발했고, 급기야 아파트 단지 입구에 택배가 쌓여 ‘택배 산’을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4일 택배노조 측은 해당 아파트 단지 내 택배배송을 전면 거부하기도 했으나, 입주민들의 압박에 못 견뎌 16일부터 개별배송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여전히 갈등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 택배 노조는 “아파트의 갑질에 동조하며 택배노동자들에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전가했다"며 ”CJ대한통운을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마저 ‘해당 문제는 사적 영역’이라며 개입 불가 의사를 밝힌 가운데, 해당 아파트 단지를 지은 건설사를 비판하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지상에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조성된 고덕동 G 아파트. 사진 우정호 기자
지상에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조성된 고덕동 G 아파트. ⓒ위클리서울/ 우정호 기자

‘고덕동 아파트 택배 대란’…갈등 원인은?

고덕동 아파트 택배 갈등은 지난 1일 아파트 측이 안전상의 이유로 배달차량의 지상도로 진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본격화됐다.

택배 기사들은 반발했지만 아파트 측은 저상탑차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을 통해 배송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일반 택배차량의 높이가 2.5~2.7m인데 비해 해당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는 2.3m에 불과해 기존 차량으로는 지하주차장 진입이 불가능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단지 내 배송을 위해 손수레를 이용하기도 했다.

택배 갈등은 주로 ‘지상공원형’ 아파트에서 벌어진다. 지상에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공원으로 조성한 아파트인데, 대형 택배차량이 오가면 안전사고 위험이 커지고 보도블럭이 파손된다는 게 입주민들의 주장이다.

반면 택배노동자들은 지하주차장 층고가 낮아 대형 택배차량이 진입할 수 없고, 사비를 들여 저상 차량을 개조하기에는 부담이 크다고 반발한다. 화물칸 높이가 낮으면 물건을 꺼낼 때 신체적 고통이 커지는 점도 문제다. 아파트 입구에서 택배물을 손수레에 옮겨서 이동하는 것 역시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과로를 유발할 수 있다고 택배노동자들은 말한다.

이에 지난 14일 택배노조는 해당 아파트의 세대별 배송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입주민들이 택배기사들에게 폭언을 쏟아내거나 항의 문자를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등 위협을 가하면서 지난 16일부터 세대별 배송이 재개됐다. 택배노조 측은 기사 보호 차원에서 배송을 재개했지만, 협상과 투쟁은 계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택배노조는 아파트입주민대표회의에 ▲아파트 내 안전속도 준수 ▲후면카메라 의무 설치 ▲안전요원 배치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지상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아파트 측이 지상 통행 불가 방침을 고수한다면 택배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택배노조는 지난 19일 오전 배달차량 지상 진입을 전면 금지한 해당 아파트 단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 시위를 시작했다.

택배 노조 관계자는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농성을 펼칠 것”이라며 “문제가 불거지는데도 모른 척 하는 택배사를 고소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위클리서울/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위클리서울/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택배노조, “갑질 아파트 동조하는 CJ대한통운 대표 고발"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택배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A아파트와 저상차량을 이용한 지하 주차장 배송에 합의했다면서 회사 대표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20일 밝혔다.

또 CJ대한통운 측에 A아파트를 배송 불가 구역으로 지정하고, 택배 물품당 추가 요금을 부과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이날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신호 CJ대한통운 대표이사와 A아파트 구역을 담당하는 대리점장을 22일 고용노동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택배물품 상·하차 때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으로 기어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된 저상차량은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분명한 산업안전 위험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산안법 제5조 '사업주 등의 의무'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근골격계 질환 예방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리점장은 직접적인 사용주이며, 택배사는 '등'에 따라 포괄적 사업주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과 입주자대표회의 간 합의를 보여주는 증거로 지난 13일 입주자대표회의가 노조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문에서 '저상차량 도입을 위해 일정 기간 유예 후 전체 차량 지하배송 실시'를 "CJ대한통운 당 아파트 배송담당팀과의 협의 사항"이라고 부르며 "노조가 협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고 했다.

노조는 "아파트 측의 일방 결정으로 배송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고 소속 노동자들이 갑질을 당하고 있는데도 택배사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갑질 아파트에 동조하며 택배노동자들에게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전가했다"고 비판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입주자들이) 자신들의 쾌적한 아파트 환경을 위해 지상출입을 제한했으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게 마땅하다"며 배송 불가구역 지정과 추가 요금 부과를 사측에 요구했다.

진 위원장은 이어 "기사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면 25일 예정된 대의원대회에 곧바로 전 조합원 쟁의 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위클리서울은 CJ대한통운 측 입장을 듣기위해 연결을 시도했으나 닫지 않았다.
 

택배노조 제공
ⓒ위클리서울/ 택배노조 제공

누구 잘못인가?…‘아파트 건설사 탓’ 지적도 등장, 정부는 ‘개입 불가’ 답변

택배 갈등을 두고 온라인에서도 택배 기사 옹호론과 주민 옹호론이 치받는 상황 속에 '애초에 왜 건설사가 층고를 낮게 지었나'며 근본적 질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는 "일단 원흉은 2.3m 층고 허가를 내준 행정당국이다. 아파트 지상을 공원형으로 만들면 무슨 일이 있을지 예상 가능하지 않나"고 지적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 이용자는 "2018년 법이 개정된 이후 지하 층고를 2.7m로 조정했지만, 최소한 3m 이상으로 높이를 상향시켜야 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천장에 달린 구조물 때문에 2.7m라도 실 층고는 2.4~2.5m가 돼서 택배탑차가 못 지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택배기사들이 저상 차량을 이용할 경우 근무환경이 악화되는 것은 물건을 덜 실을 수밖에 없어서 근처 다른 주거 지역에도 피해가 간다"는 지적도 더했다. 그러면서 "건설 비용이 월등히 높겠지만 지하에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소방차량도 들어갈 수 있게 더 높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9일 택배노조에 따르면 택배산업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최근 택배노조 측에 “이 문제는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앞서 택배노조 측은 “국토부가 택배산업 주무부처이기 때문에 역할이 있다고 본다”고 중재에 나설 것을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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