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그래픽=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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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 전역한 둘째에게 오랜만에 전복 스테이크를 구워주었다. 고소한 버터를 녹여 칼집을 넣은 도톰한 전복을 노릇노릇 구워 감자와 버섯을 곁들였는데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옛날처럼 전복이 비싼 것도 아니고 한 팩 더 사다가 내 것까지 구워먹는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전복을 숟가락으로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살뜰하게 도려내 아이에게 모두 구워주고 나는 전복의 내장과 곁에 너덜너덜 붙어있는 것들을 참기름에 찍어먹었다. 그러다 옛날에 갈치 때문에 슬퍼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식탐이 많은 여자였다. 이영자가 밥을 먹으면서 자꾸 슬퍼진다고 했던 말… 너무 공감한다. 눈앞에 놓인 맛있는 것들이 먹을수록 자꾸 줄어드니 슬플 수밖에. 내가 딱 그런 감성의 소유자다. 세상에서 제일 이해 안 되는 말 중의 하나가.

‘입맛이 너무 없어.’

‘먹고 싶은 게 진짜 하나도 없네.’

‘왜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걸까….’

이런 종류의 말들이다. 인생에서 먹는 재미를 빼놓고 어떻게 삶을 논할 수 있겠냐 말이다.

어려서부터 복스럽게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다고 별명도 ‘똥뙈지’였다. 다행히 언니들과 오빠는 나처럼 먹는 것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모자람 없이 배를 채우며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무한 경쟁자… 음식을 양보해야 되는 걸림돌이 나타난 건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여자들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진 않는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성에 대해 보고, 듣고, 배운 게 30%. 똥기저귀 갈아주며 키우다보니 내 새끼라 예뻐 보이고 짠해 보이는 감정 30%.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 다 같이 고생하며 사는 인간으로서의 동지애 30%. 나머지 10%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어쨌거나 식탐 많은 내가 누군가에게 빵이나 고기를 양보해야만 하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시어머니는 가끔 손질된 갈치나 고등어 같은 걸 비닐에 곱게 싸서 구워먹기 좋게 가져다주곤 하셨다. 갈치는 머리랑 꼬리 부분을 빼면 두툼한 가운데 토막이 기껏해야 두세 개 정도. 유독 갈치구이를 좋아하던 나는 노릇노릇 구워진 갈치를 아이들 입에다 몽땅 발라 넣어줘야 된다는 게 너무 슬펐다. 가장자리 가시 있는 부분과 내장을 감싼 흐물흐물하고 비린 맛이 나는 그런 살 말고 온전한 가운데 토막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갈치의 앞면은 아이들에게 먹이고 뒷면은 내가 먹어야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제비새끼처럼 입을 쫙쫙 벌리며 맛있게 받아먹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 먹자고 두툼한 살코기를 빼돌린다는 게 어미로서 조금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먹는 거 앞에서 사람은 치사해지는 법. 나는 독한 마음을 먹고 애들에게 말했다.

“김치도 먹고 된장찌개도 먹고 뭐든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지는 거야. 그래그래. 생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김 맛있지? 아쿠 잘 먹네~~.”

하지만 눈치 없는 첫째는. “엄마, 꼬기 주세요 꼬기!” 이러며 통통한 명란 알 같은 손가락으로 갈치를 가리키곤 했다. 나는 너무 슬프고 분노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갈치 뒷면을 발라 아이의 밥숟갈에 얹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한밤중에 두툼한 갈치구이가 너무 먹고 싶어 잠이 안 왔다. 그래서 냉동실에 두 토막 남아있던 갈치를 모두 꺼내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웠다. 그리고 찬밥을 물에 말아 두툼한 갈치 살과 함께 정신없이 퍼먹고 있는데 잠을 자다 냄새를 맡고 나온 남편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먹고 있는 내 뒷모습을 본 거다.

“뭐해??”

나는 무덤에서 간을 파먹고 있는 구미호처럼, 한 손에 갈치를 들고 남편을 돌아보았다.

“밥 먹잖아….”

“지금이 몇 신데?!”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그 늦은 밤에 내가 왜 갈치를 들고 밥을 퍼먹고 있는지 설명해 준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먹어야 될 갈치 뒷면을 아이들에게 모두 뺏겨버린 어미의 슬픈 비애는 어떻게 포장해서 말해본들 ‘쪽팔린 식탐’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날, 두툼한 갈치 두 토막을 야무지게 발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나 혼자 다 먹은 다음, 몹시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에게 갈치의 도톰한 살을 발라 먹이며, 왜 엄마는 애들한테 맛있고 좋은 건 다 양보해야 되냐고 억울해 했던 시절의 얘기다. 딸기도 달콤하고 싱싱한 건 아이들에게 먹이고 짓무르고 덜 익은 건 내가 먹으며 ‘엄마니까 그래야 하는 거야’라고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도 맛있고 좋은 거 먹고 싶다’며 억울해 하던 철없고 어린 엄마….

순도 100%의 모정은 엄마가 되는 그 순간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내가 경험해보니 그랬다. 치킨을 먹을 때 퍽퍽한 가슴살 말고 닭다리부터 뜯고 싶었다. 생선도 머리나 꼬랑지 말고 두툼한 흰 살을 발라 내 입에 넣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 듣고 배운 게 있어 엄마는 아이에게 더 맛있고 더 좋은 것을 먹여야 된다는 생각으로 참고 양보했다. 세상에 무슨 엄마가 애들한테 먹이는 걸 아까워하고 자기 배부터 불리고 싶냐고, 그러고도 엄마가 맞는 거냐고 한심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리고 미숙한 시절엔 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좋은 엄마 프레임에 갇혀 겉으로만 엄마 흉내를 내고 싶어 하면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자들이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엄마로 성장 하는 거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나쁜 엄마인 거 같아’라는 죄책감을 참 많이 겪었다. 때론 식탐이 그랬고 어쩔 땐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영영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좌절한 적도 많다. 아들 두 놈이 중2병을 겪고 있을 땐 엄마 자리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는 조금씩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던 거 같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전복을 구워주며 아들에게 물었다.

“군대 있을 때 누가 제일 많이 생각났어?”

“물론, 엄마죠.”

“왜 엄마가 제일 많이 생각났어?”

“엄마가 해주는 밥, 그게 먹고 싶더라고.”

“내가 음식을 좀 잘하긴 하지. 어려서부터 너네 자장면이나 피자 시켜 먹이지 않고 내가 다 만들어 먹였잖아. 그러고 보면 엄만 참 좋은 엄마였어, 안 그래?”

“뭐 그것도 그렇지만… 엄마가 해주는 밥은 인간미가 있었잖아. 우리가 음식 남기면 엄마가 그거 긁어 먹으면서 막 잔소리도 하고. 근데 군대라는 곳은 인간미가 없어. 때 되면 먹고 누가 더 먹으라고 챙겨주거나 맛없다고 타박도 못하고 그냥 우겨넣는 거잖아. 그래서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었어요.”

인간미가 있는 밥. 아이의 표현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 뭔가 자부심이 들었다. 비록 내가 아이들에게 최고의 엄마, 좋은 엄마였다고 자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인간미가 넘치는 밥을 먹여 키웠구나 싶은.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싹싹 비우는 아들을 보며 엄마라는 게 뭐 대단하고 거창한 게 아니라 밥을 해서 먹이는 사람, 그 정도로 기억되는 것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좋은 집에 좋은 옷을 입히지도 못 했고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 가서 아이들의 교육에 열과 성의를 다하진 못 했지만 갈치 살을 양보해가며 나름 열심히 키워냈으니까 말이다.

지금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 내가 겪었던 많은 감정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엄마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도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엄마로 살아가는 게 뭐 대단한 게 아니라고. 따뜻한 밥 해먹이고 때론 아이와 싸워가면서 지그재그로 그렇게 살아내면 되는 거라고 말이다.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려들지도 말고 지금처럼 꾸준히 해나가면 되는 겁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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