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푸쉬카르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1. 오래된 새들

새들은 이 도시가 세워지기 전에도 여기에 있었다. 레비와 나는 그런 사실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연달아 대화가 이어지진 못했다. 뒷산에 가면 팔이 길고 얼굴이 검은 원숭이들이 가득해, 레비가 내게 말해줬을 때 호숫가 뒤로 동산처럼 솟아있는 언덕들이 보였다. 저기에는 원숭이들이 있구나, 원숭이는 저기서 얼마나 또 오래 있었을까. 원숭이가 있고 새가 있고 사원이 있고 사원을 수리하는 번티가 있고, 그래서 여기는 오래된 마을이다. 사람들이 모여와 기도하는 마을. 신이 흘린 눈물이 고여 호수가 되었다는 건조한 사막의 마을은 뜨거운 햇빛 속에서 청명했다. 호수 주변의 하얀 가트들은 갠지스의 가트와는 다르게 호수를 따라 둥글게 이어져 햇빛에 반짝일 뿐이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불태우지 않는다. 이 작은 마을에 죽으러 오는 사람은 없고 기도하는 사람들만 온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도 많다. 덕분에 이스라엘 음식을 많이 먹었다. 팔라펠이나 후무스 같은 거. 값싼 의류를 파는 노점거리도 호수 주변을 따라 둥글게 이어진다. 검은색 판초를 싸게 사서 밤마다 덮다가 떠날 때는 무거워서 버렸다. 낮에는 희고 밤에는 붉게 따뜻했던 마을, 푸쉬카르. 새들은 자꾸 날았으며 그 새들은 오래된 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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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빛의 호위

레비가 나를 처음 불렀을 때 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인도 대도시의 번잡한 풍경에서도 나는 이상한 평화를 줄곧 느껴왔었지만 3주 쯤 지나니 소음은 그저 소음으로, 번잡은 그저 번잡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누적되었다. 대도시를 걷다 숙소로 돌아오면 코에서는 거뭇거뭇한 게 이따금씩 묻어나왔고 나를 붙잡는 관광도시 사람들의 완력은 지친 마음에 유독 더 힘들게 느껴졌다. 이제 어디로 가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라자스탄주의 대도시 자이푸르를 지나고 있던 나는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한국인 여행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푸쉬카르에 꼭 가보라고. 작으면서도 유명한 마을인데, 나를 믿고 한 번 거기 가봐라 정말 좋을 거다. 여행자들은 잠깐의 기억으로 도시를 평가하기에 그들이 상찬한 여행지를 따라만 가는 것은 미련한 짓이 되기 쉽지만, 대도시에 지쳐있던 나는 작은 마을이라는 말 하나에 기댔다. 결국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되었던 지붕이 파랗다는 조드푸르로 향하려다 결국 푸쉬카르로 방향을 틀었다.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다 처음 푸쉬카르에 내렸을 때 이곳의 인상은 정말 희고도 아름다웠다. 라자스탄주의 사막지형을 적당히 끼고 있어 청명한데다가, 마을 중앙에 위치한 호수엔 잔잔한 윤슬들이 연달아 반짝였다. 무엇보다 언덕들을 끼고 도시와 꽤 떨어진 작은 마을이라, 사람을 압도하는 도시의 위압감이 없었다. 이곳 게스트하우스들은 널찍한 정원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도착한 게스트하우스의 덩치 큰 직원은 자연스럽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정원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영국인 남녀는 그보다 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여기서 오래 머물 수 있겠구나, 햇빛 속에서 생각했다. 빛의 호위를 받는 것 같은 곳이다. 첫인상은 이렇게 많은 마음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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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비의 지폐

레비는 호수로 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는 호수의 전망 포인트로 유명한 가트로 가는 길목에서 향초나 기념품을 파는 중간키의 남자였다. 평소라면 장난을 좀 치다가 내빼거나,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마냥 훌훌 지나갔을 테지만, 들떠있던 나는 레비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나를 불러 세운 이유는 간단했다. 물건 사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네가 한국 사람처럼 보인다. 내게는 한국 돈이 얼마 있다. 환전소에서 이걸 바꾸면 너무 환율이 비싸니, 네가 이 한국 돈을 좀 살 생각이 없겠냐, 같은 말들. 나는 인도에 한참 더 머물 생각이었으므로 한국 돈보다는 인도 돈이 훨씬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하자 레비는 약간 멈칫거리며 돈을 주섬주섬 넣었다. 나는 슬쩍 본 그의 돈에 한국어 문장이 어렴풋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레비의 형은 몇 해 전에 자살했다. 레비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레비는 형의 매대 트럭을 이어서 운영하고 있다. 레비의 형이 일전에 푸쉬카르에 놀러온 한국인들 무리를 만나서 이곳저곳을 소개해준 일이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지폐에 감사 인사를 써서 선물했다. 레비의 형은 몇 해 전에 자살했다. 레비는 형의 지폐를 가지고 있다. 레비는 형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 레비는 형과 한국인들이 함께 찍은 사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들은 함께 웃고 있다. 그것은 2008년의 일이다. 12년이 지났고, 레비는 혼자 있다. 레비는 이제 형의 그림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싶다. 레비는 지폐를 처분하고 싶다. 지나가는 한국인을 불러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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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이런 이야기까지는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는 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마쳤지만, 그는 누구보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단단한 인상이었는데 언뜻언뜻 소년 같은 얼굴이 겹쳐 드러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장사를 하고자하는 의지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의지가 없는 척하다가 방심을 노려 한 턱 털어보자는 느낌을 찾아낼 수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간혹 불러 세울 뿐 물건을 팔기 위해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나는 레비의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 없어 한참 같이 앉아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진실성보다도 레비의 어떤 태도가 마음을 끌었다.

장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상한 장사꾼. 그가 좌판에서 배운 영어는 상당히 훌륭해서 의사소통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다. 레비는 그 이후로 한 번도 형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형을 떠올리고 있는 듯 했다. 나중에 알기로 한국인에게 선물 받은 원화를 구해 한국인에게 접근하는 몇몇 인도인들이 있다는 말을 한국에서야 들었는데, 레비가 과연 그런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면 알 수 없다. 다만 레비가 자리한 골목에는 레비 또래의 상인 친구들이 많았으며, 레비가 자리를 비우는 이따금씩 그 친구들이 레비의 안색을 걱정했던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걱정마저 연기였으면 최소한 그들이 나를 그냥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더군다나 걔네는 연기를 더럽게 못하는 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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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번티의 제단

나는 결국 그 골목에 너덧 명 되는 기념품 파는 애들과 다 친해졌다. 그때의 하루일과는 레비의 골목으로 출근해 이곳저곳 기웃대며 말하고 놀았던 것으로 요약된다. 레비의 바로 옆 매대는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데 참 해맑게 웃는 번티가 작은 조각상들을 팔고 있었다. 그의 꿈은 인도 영화계 볼리우드의 대스타 액션배우라서, 그는 별의 별 멋지고 우스운 포즈를 선보이며 내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는 내게 인도에서 요즘 유행하는 모바일 게임과, 삶의 기쁨에 대해 자주 말했다. 삶은 기쁜 것이야 브로. 요즘 장사가 잘 안 돼. 그러나 좌절할 수 없어. 왜냐하면 삶은 좋은 것이니까 브로. 나는 잠깐이나마 번티가 치명적으로 부러웠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랑 사업하지 않을래? 아니 난 아직 일을 안 해, 너랑 사업할 돈 없어.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줘, 언젠가 사업할 마음이 들면 언제든 연락해. 그의 삶의 태도는 본 받을 만 했지만 내가 며칠 본 그의 장사수완은 악독한 것이어서, 나는 그에게 멋진 사진을 찍어주는 쪽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번티는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다른 친구 두 명과 뒷산에 올랐다. 그곳에는 번티가 자발적으로 관리하는 시바신을 위한 제단이 있었다. 맨 발로 산을 오르며 그들은 환하게 웃었다. 아픈 발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그들의 제단에 도착해 함께 기도를 올렸으며, 그들의 주문을 외우고, 그들의 물을 마셨다. 언덕에는 이야기한대로 팔이 길고 얼굴이 검은 원숭이들이 빼곡했는데, 적어도 수 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가득한 원숭이들 사이로 이어지는 제단을 향한 오래된 길. 언덕 위의 원숭이도, 제단도, 삶도 여기서 계속되었다. 아직도 번티는 내게 가끔 메시지를 보낸다. 부모님은 잘 지내시니 브로, Life is alway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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