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호 사)소비자와함께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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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정길호] 역사학자 발터 샤이델은 그의 저서 『불평등의 역사』(The Greate Leveler)에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 기사를 빗대어 전쟁·전염병·혁명·국가붕괴 4가지는 역사 과정속에서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며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중세시대 흑사병의 대유행으로 인해 무려 1억 명 이상의 인명이 목숨을 잃지만, 사태가 잠잠해질 때면 노동력부족 등으로 서민들의 실질 임금이 상승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간격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이 반복된다고 샤이델은 주장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곳곳에서 이와 정반대 현상을 만들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흑인들의 코로나 감염률과 사망률이 백인들보다 훨씬 높아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흑인 인구는 26%에 불과했지만, 코로나19 사망자의 70%가 흑인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백인들보다 생활 수준이 낮은 흑인들은 기저질환자들의 비율도 높고 건강보험 가입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한 빈곤층의 경제적 피해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도시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은 전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일자리로 복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하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은 새로운 4가지 계급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는데 한국 상황도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계급으로는 원격 근무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인데 전문직·관리직 등의 인력들로 임금변화가 없고 코로나19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는 계급이다. 두 번째는 필수 노동자(The Essentials)로 경찰관, 소방관, 운수 노동자, 의료 관련 종사자, 농장노동자, 배달 노동자들로 일자리를 잃지는 않지만, 전염병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세 번째는 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The Unpaid)들로 소매점·식당 종업원, 육아도우미, 여행가이드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로 실직하거나 무급 휴가를 강요받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잊혀진 노동자(The Forgotten)인데 재소자, 노숙자들로 집단생활로 거리두기가 어려워 감염에 취약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소득·소비 양극화가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 18일 발표한 ‘2020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4/4분기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4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02만6000원으로 2.7% 늘었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137만6,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해 2.2% 증가했지만, 적자액도 24만4,000원으로 0.4% 늘었다. 평균소비성향은 117.8%로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해 0.5%P 하락했다.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789만5,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2.3% 늘었다. 흑자액은 338만3,000원으로 6.1% 증가했다. 평균소비성향은 57.2%로 전년 같은 분기에 비해 1.6%P 내려갔다.

  이에 따라 대표적인 분배 지표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지난해 4/4분기 4.72배로 전년 동기의 4.64배보다 0.08배 포인트 상승하여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다. 전년도에 월 소득 천만 원이 넘는 부자들은 차를 바꿨고 반면 저소득층은 식료품을 사는데 지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들은 차를 바꾸는 데 쓴 돈이 64% 늘었다. 한 대 2억 원이 넘는 슈퍼카 람보르기니는 3백 대 넘게 팔려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포르쉐도 8천 대 가까이 팔아 기록을 갈아치웠으며 아우디는 두 배, BMW도 30% 판매량이 늘었다.

국산차도 비슷하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처음으로 10만 대 넘게 팔렸으며 그랜저도 2019년보다 두 배 팔렸다. 코로나 불황에도 차를 바꾼 사람들은 역시 부자들이다. 소득이 가장 높은 상위 20%. 월평균 소득 1천만 원이 넘는 가구인데, 지난해 유일하게 소득이 더 늘어났다.

이들이 자동차 사는데 쓴 지출이 늘었다. 소득이 늘었으나 여행 지출이 줄어 대신 차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득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계층에서는 오히려 자동차 구입 지출이 줄었다.

특히 소득 하위 20%에 속한 가난한 집들은 정부지원금을 빼고 나면 소득이 6%나 줄었다. 소득이 낮을수록 육아 부담이 크고, 게다가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임시·일용직이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유일하게 늘린 지출은, 식료품과 주거였다. 의식주 해결이 급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4.1%로 상향시켰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빠르게 증가한 글로벌 수요가 수출 호조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다만 수출을 주로 하는 업계 외에 문화·음식업 등 대면 서비스업계의 경우 정상화까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여 '불균등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계층별 불평등 심화는 국민통합을 방해하고 사회적 혼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한국은 양적으로 성장을 해야 하고 질적인 측면에서도 불균형을 시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 사태를 가장 잘 극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명성에 걸맞는 정부 정책과 민·관이 합심하여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빠른 전환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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