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철학공방 별난’ 신승철 작가-2회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신승철 작가 제공

- 원전 폐기 이후, 당장의 대안이 있다면.

▲ 재생에너지와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에너지전환이 필수적이다. 원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또 다른 위험으로 우리를 몰아세우는 결과를 낳는다. 재생에너지 기반으로의 전환과 함께 에너지 절약이 함께 된다면, 미래세대에게 정말로 깨끗한 지구를 물어줄 현 세대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에너지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먼저 전기값이 인상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유상증자의 방식이나 무상증자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유상증자를 통해서 높아진 전기요금을 주식으로 받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상황이다. 동시에 에너지전환을 위한 펀딩을 위해서 기후국채를 발행하는 방법이 있다. 독일의 경우 기후위기로 인한 경기후퇴를 감안하여 마이너스 국채임에도 불구하고 완판이 되었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시민적 힘의 영향이 크다.

 

- ‘녹색은 적색의 미래다’라는 책을 펴낸 적 있다. 책 제목이 곧 질문이고 답처럼 보인다. 풀이하자면.

▲ 적색이라 불리던 좌파 정치세력이 성장주의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녹색은 대안적인 탈성장의 논의를 통해 적색이 나아갈 방향이 보다 나은 세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삶을 감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적색의 성장주의의 해독제는 녹색이다. 탈성장 전환사회의 비젼은 사실상 문명의 전환에 필적하는 모든 부분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관행농에서 유기농으로, 자동차에서 자전거로, 육식에서 채식으로, 아파트에서 마을로, 해외농산물에서 로컬푸드로 등 문명의 전환은 오래된 지혜를 다시 살려내고 우리의 삶을 바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녹색은 적색의 미래일 수밖에 없다.

 

- 주 전문분야는 펠릭스 가타리이다. 가타리에서 생태 문제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타리를 연구할 때 처음부터 생태 문제로 접근했는지, 아니면 훗날 생태 문제로 방향을 틀었는지.

▲ 생태문제에 대한 관심은 가타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가타리가 생태에 대해서 말할 때, 이를 유심히 생각하다가 녹색당 초동모임이었던 초록정치연대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사실 가타리는 프랑스 녹색당 창건멤버였다. 그런 점에서 가타리로부터 시작해 생태주의로 나아가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가타리 사상이 녹색진영의 사유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안보이던 것도 많이 보이게 되었고, 생태주의에 대해서 더 깊게 사유하게 되었다.

 

- 지난해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장이 작고했다. 녹색평론은 대표적 생태이론 매체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출간 중이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어떠하며,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 김종철 편집장은 먼 발치에서 접했지만, 말을 섞어보지는 못했다. 너무 비관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매체가 아닌가, 라고도 생각했지만, 현실의 절박함을 그렇게 잘 담아낸 책도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김종철 이후의 생태주의는 선배들이 갖지 못한 다양성과 차이의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후배들의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나서는 자도 필요하지만, 판짜는 자도 필요하다. 너른 마당에서 미래세대와 생명이 주인공이 되어 춤추는 세상을 만들어보는데 김종철 편집장의 판짜기 노력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 역시도 판짜는 자의 반열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녹색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녹색에 대한 실천은 여전히 미비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 녹색을 붙인 상품들이 참 많아졌다. 그러나 상품을 사지 않는 것이 녹색이 지향하는 탈성장의 원칙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수많은 녹색의 이미지 속에서 그린워싱 즉 녹색분칠의 자취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녹색은 어떤 영적으로 뛰어나고 확실한 의식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의식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형이라는 말이다. 오늘 조금 모자라더라도 끊임없이 고쳐나가고 노력한다면 녹색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생태주의는 아나키즘과도 연관이 있다. 이 둘은 어떻게 연결되고 관련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생태주의는 아나키즘과 자치와 자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좌파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인 국가주의로부터 자유롭다.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자치행동을 통해서 꼬뮨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크로포트킨 이후의 아나키즘의 모습이었다. 이는 생태주의로 깊게 공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나키즘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서의 이타심, 협동, 선한 본성 등에 대한 호소는 생태주의와 공통의 지반을 만들어내고 있다. 열린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생태주의의 믿음은 분명 아나키즘으로부터 왔다.

 

- 환경, 생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심을 기울이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만큼 현실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진다. 이른바 ‘환경생태적 해이’에 대안이 있다면.

▲ 앞서 말했지만, 모든 것은 과정형이다. 내가 텀블러를 쓴다면 선한 의도가 전달되어 파급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작은 부분부터 바꾸어나가서 전체 생태계에 작지만 큰 파장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을 도토리 한 알이 일으킨 떡갈나무 숲을 이룬 떡갈나무혁명이라고 한다. 작고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것부터 출발해서 생태주의의 기나 긴 여정에 합류하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것의 출발점은 아주 돌발적이며 사소한 것일 수 있다. 이를 테면 분리수거에 나서는 주부들이 생각하는 재생과 순환의 사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도 움틀 수 있다. 우리는 늘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긴 여정이 우리 앞에 기다림을 응시하면서 늘 자신과 대면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깊게 지구와 생명과 자연의 고통과 신음에 대해서 귀 기울려야 한다. 우리는 외롭지 않으며, 온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사소한 일상이라 하더라도 고립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이 온 우주이며 온 생명이다.

 

- 그나마 고무적인 건 과거와 달리 음식물 쓰레기, 페트병 분리수거 등이 일상화 되고,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좀 더 고차원적인 요구사항이 있다면. 물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이다.

▲ 기본적인 생태적 실천이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생명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익혀야 할 것이다. 가족공동체가 와해된 사람을 만났다. 딸과 아내와 자신은 늘 각자의 방에서 먼 데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스마트폰에 열중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유기견을 구조해 오면서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다. 거실에 모든 가족이 모여 유기견이 주인공인 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성공한다. 유기견의 발짓, 몸짓, 소리, 모습 모두가 하나의 축제와 같은 일상이 된다. 개 산책을 가족들이 함께 하면서 이야기구조가 설립된다. 외롭지 않고 강건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생명이 주인공인 공동체의 이야기다. 이렇듯 새로운 미션을 통해서 우리는 늘 생태계와 공동체를 재건하고 구성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좀 어려운 미션이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 흔한 일들이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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