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죽는 병, 살기 위해서는 안대를 써라
보면 죽는 병, 살기 위해서는 안대를 써라
  • 김은영 기자
  • 승인 2021.06.18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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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버드박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영화 ‘버드박스’ 스틸컷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버드박스’ 스틸컷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제공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자살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과거와 같은 평범한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2018년도에 개봉한 영화 ‘버드 박스’는 눈으로 보면 죽음에 이르는 무언가를 피해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영화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괴로운 현실의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갑자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우리의 생활을 지배당했다. 그것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작은 바이러스다. 우리는 바이러스를 피해 코와 입을 막아야 했다. 영화 ‘버드 박스’에서는 눈에 보이면 안 되는 것으로 인해 안대를 둘러야 한다. 생존을 위해 눈을 가리고 생활해야 하는 영화 속 모습은 마스크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영화 ‘버드박스’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버드박스’  포스터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제공

보면 죽는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공포

주인공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임산부다. 하지만 무엇때문인지 사람들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갑자기 자해를 하거나 집단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원래 아이를 많이 원하지 않았던 맬러리는 갑작스러운 재난 앞에서 아이를 낳게 된다. 입양을 생각하기도 했던 그였는데 어느새 맬러리는 자신의 아이를 가장 먼저 지켜는 모성애를 보이게 된다. 이게 다 이상한 현상 때문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보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맬러리는 생존자들과 함께 위기를 타계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맬러리와 출산 동기인 올림피아가 ‘무언가’를 본 것이다. 홀리듯 올림피아는 창가 쪽으로 향한다. 자살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올림피아가 한 일은 자신의 아기를 사람들에게 건네준 일이다. 고통에 일그러져가면서도 아기를 살리려는 올림피아의 모성이 맬러리도 감동시킨 걸까. 이후 맬러리는 올림피아가 남긴 아이와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 그 단어는 ‘어머니’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존재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슬퍼지고 미안해지는 존재다. 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은 효도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어머니로 거듭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이를 낳았다고 다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도 사실은 그저 나약하고 이기적인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라고 다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맬러리도 그저 한 인간이었고 사랑에 실패하며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에 크게 부담을 가진 젊은 여성일 뿐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을 겪으면서 그는 성장한다. 스스로 성장하고 아이를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한다. 생명이 그를 더욱 강인하게 만든 것이다. 아이를 싫어하던 맬러리는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자신의 목숨보다 아이들이 더 소중해진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는 일뿐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못 할 일은 없다. 맬러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 냉정해지고 더 거칠어져도 마음속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생각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직면한 적이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면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바깥에 나가면 아무것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자살을 겪으면서 알게 된 유일한 생존법이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아이에게 가르치는 말이 눈에 안대를 벗지 말라는 말이라니 지금의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 ‘아무리 답답해도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는 말과 오버랩 되어 슬픔을 준다.

 

영화 ‘버드박스’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영화 ‘버드박스’ 스틸컷 ⓒ위클리서울/ 넷플릭스 제공

그냥 우리는 별거 아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맬러리는 아이들과 눈을 가리고 안전지대로 향하게 된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본 사람들은 아주 잠시의 어둠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그 잠깐도 눈으로 보지 않고는 걸음을 떼기 어렵다. 너무 익숙해서 잘 아는 동선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걸을 수 없다. 더듬더듬 손으로 허공이나 벽을 휘저으며 감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눈을 감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발밑에 뭐가 있는지 눈앞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계단을 내려가는 데만 오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보이지 않는데 거리를 걸어간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맬러리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더욱이 그는 혼자가 아니다. 두 아이를 안고 끌고 그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혹시나 자신이 잘못된다면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내 일이라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릴 일이다. 맬러리 또한 새장에서 살다가 야생으로 나온 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게는 희망이 있다. 판도라 상자 마지막에 나온 희망이 있기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계산 없이 선의로 남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영화는 그런 희망을 준다. 톰은 그런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톰이 전해준 이야기는 더욱 심금을 울린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너무나 간절히 꿈꾸는 일상이다. 톰은 과거 이라크에 파병을 갔다. 보통 사람들은 전쟁을 상상하지 않는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당장 먹고 사는 일이, TV 프로그램이 연예인 소식이 더 관심꺼리다. 하지만 지구 어디서인가는 지금도 전쟁이 벌어진다.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는다. 톰은 이라크에 파병 당시 전쟁 중이지만 항상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버지가 있었다고 말을 꺼낸다. 톰은 아직도 남자가 아이들을 여전히 학교에 데려다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희망인가. 세상이 전쟁보다 더 큰 재난을 만났으니 그들 가족이 살아있기란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톰은 그 가족이 떠날 때 준 목걸이를 보며 간절히 믿고 희망한다. 우리도 간절히 믿고 희망한다. 그저 1년 반 전처럼 아이들이 자유롭게 학교에 가고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먹고 노래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기를 그저 바라고 또 바란다. 맬러리가 톰과 만나 희망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고 결국 안전지대에서 만난 이들의 선의로 또 다른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현실에서도 언젠가는 이 모든 상황이 종식되고 예전과 같이 자유롭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꿈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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