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난타에 처음 입문한 장소이자, 강사로서 첫 활동을 시작한 지자체 관할 센터가 올해 초 코로나19 예방 접종 장소로 지정 되었다. 진행되던 모든 프로그램들은 전면 휴강에 들어갔고 같은 교실을 시간대별로 나눠 사용하면서 얼굴을 익히고 안부를 묻고 각자의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보와 홍보를 나누던 강사들, 회원들은 더 이상 만나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방역과 위생관리가 익숙해지고 생활화가 돼서 예전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다. 어느 정도 원래의 시간으로 복귀를 조심스레 시작하려는 찰나에 센터의 갑작스런 휴강 결정은 모두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는 옛말도 있지만 그간 쉬어 온 시간이 차고도 넘치는 바람에 평범한 일상의 그리움은 더더욱 간절했다.

또 다시 기약 없는 만남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던 중 이번 기회에 연습실을 운영해 보라는 중론이 형성되었다.

연습실이란, 곧 나에게는 청사진이다.

그간 연습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창작의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 지금 당장 북을 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절실함이 엄습하는 때가 있다. 애정이 가는 작품에 대한 다듬질을 하고 싶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아쉬울 때도 많았다.

특히 작년의 경우, 출강하는 중학교에서 난타 동아리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라는 지침에 따라 수업 영상을 찍기 위해서 장소를 구걸하러 다녀야 하던 때도 있었다(물론, 학교에서 장소를 제공할 의사가 있었으나 나와 일정이 맞지 않았다.). 연습실에 대한 절실함이 극에 달하던 때이다.

하지만 많은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경영난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폐업하는 사업장도 속출한다는 이 시국에 연습실 운영을 시작한다는 건 쉽게 결정내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 안의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는 욕망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연습실을 갖고 싶어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동안 공간을 알아보고 소리 차단을 위한 나름의 설치를 하는 등 준비를 거쳐서 연습실을 개소한 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다. 연습실은 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희망 사항으로 남아 영원히 사장될 수도 있었을 청사진을 현실에서 추진할 수 있도록 독려해준 회원들의 중론도 한 몫 했지만, 근본적인 시발점은 지자체 관할 센터의 백신 예방 접종 장소 지정으로 인한 프로그램 휴강결정이었다. 오히려 코로나 시국이 기회가 된 셈이다. 게다가 전적으로 나를 믿고 동참해 준 우리 난타 팀 회원들 덕분에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연습실은 곧 나에게는 여러의미의 공간이다.

수업을 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간 후 혼자 연습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하다. 오롯이 나의 영역으로서 모든 사회적 관계와 분리된 채 혼자 춤을 추든 북을 치든 방해받지 않는 공간이 된다. 완전한 나의 공간으로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어떤 분야이든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따르는 고민은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 활동일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 내야 할 때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만큼의 고통이 수반되기도 한다. 쉽게 따라할 수 있으면서 흥을 돋울 수 있는 새로운 장단의 가락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쉽게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창작하거나 기존의 작품을 좀 더 다듬는 과정은 새로운 경험의 탄생이자, 나 자신에서 진행되는 내부의 대화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실에 혼자 있는 시간은 북을 매개로 해서 나와의 내면적인 대화가 가능해지고 내면의 감정표출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감정의 투자는 예술가의 창의적 과정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거나 그간의 작품을 연습하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초월적인 시공간이 된다.

가끔은 그날의 수업 내용을 되짚어 보면서 회원들 개개인의 특성이나 강점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도 한다. 각자들이 서는 위치나 다양한 타법을 연구해 북 앞에서 그들이 좀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는 일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빠질 수 없는 창의적인 과정이다. 그만큼 개인공간이라는 환경은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조합의 과정을 창출해 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이는 나에게 더할 나위없는 소중한 시간이고 공간의 역할이겠지만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회원들 전체에게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창의성이 넘치는 공간에 함께 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자극을 주면서 변화를 이끌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동안만 사용을 허락받고 다음 프로그램을 위해서 교실을 비워야했던 센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 당장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공간의 효력은 언젠가는 그들에게 발전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 공간으로 발휘될 것이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연습실을 꾸린지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성격이 아기자기 하지 못해 뭘 꾸미거나 그런 걸 잘 못하는데 오히려 회원들이 신발장이며 책장이며 옷걸이 같은 집기들을 하나씩 들고 온다. 연습실은 나뿐만 아니라 회원들에게도 절실했던 공간일지도 모른다.

연습실이 내게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언제 어느 때든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곳에서 북을 마음껏 칠 수 있다는 것은 오아시스 같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그로 인해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운영하는 연습실이니 더욱 각별하고 소중한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연습실이 있다는 사실에 예술인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지고 왠지 모를 사회적 책임감도 느껴진다. 예술 활동이란 예술가 혼자만의 만족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빛을 발하고 시너지를 달성하게 된다.

이 공간이 나와 우리 회원들만의 영역을 넘어서 지역의 구성원들과 예술 창작 활동을 공유하고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장소로 활용이 되면 좋겠다. 지역의 사랑방 같은 존재로 각인되어 누구든 공유할 수 있고 소통하고 타 장르와의 협업도 추진하면서 창조적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이 공간의 몫을 다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내 삶의 터전인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 할 수 있다면 예술인으로서는 크나큰 영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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