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점심으로 초밥을 사왔다. 동네에 새로 생긴 초밥집인데 먹어본 사람들이 맛있다는 평을 써놓아서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다. 마트에서 파는 초밥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밥알이 왠지 뚜룩뚜룩 한 게 편의점 햄버거를 먹은 것처럼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에 비해, 신선한 회를 부드럽게 뭉쳐진 밥 위에 올려 정성스럽게 만든 초밥은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해도 먹고 나면 대접을 잘 받은 손님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어쨌거나 얇게 저민 분홍생강과 미소시루 된장국을 곁들여 맛있는 초밥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이런 호사는 누릴 수 있게 된 게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내 입에 맛있는 걸 넣자고 돈을 쓰는 게 왠지 미안했다. 입이 까탈스러운 첫째는 비린 것을 잘 먹지 않았고 둘째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비싼 소고기와 생선회 같은 걸 요구했다. 남편은 아무거나 잘 먹는 것처럼 보였지만 맛없는 건 손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시장을 보러 가면 비린 것을 피하고 고기류와 제철에 나는 입맛 도는 재료를 골라야 가족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지만 나에겐 하염없이 가벼운 주머니만 있을 뿐이었다.

첫째는 두부나 면을 좋아해서 마파두부나 스파게티 같은 것을 해줘야 그릇을 싹싹 비웠고, 둘째는 고기를 버터에 살짝 구워 스테이크처럼 해주는 것을 좋아했는데 호주산이나 미국산 소고기는 귀신같이 알아챘다. 남편은 어린 시절 먹어보지 못한 치즈에 뒤늦게 맛이 들린 데다 아는 수사님이 만들어 선물로 보내준 수제 소시지 맛을 본 뒤론 저렴한 소시지를 은근히 못마땅해 했다.

가족들 입맛이 그러거나 말거나 모른 척 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성격이 그러지 못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맛있고 만족할만한 것들을 먹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이마트나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문 닫을 시간이 되면 30% 혹은 50%까지 값을 깎아놓은 것들 중에 그나마 싱싱하고 퀄리티가 좋은 재료들로 매일 시장을 봐와야 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일수록 가격은 더 저렴했지만 혹시라도 상하지 않을까 싶어 그날 사온 건 냉장고에 묵혀두지 않고 바로바로 조리해서 먹였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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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을 시간에 맞춰 시장을 보러가고 저렴하면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시장을 봐오는 것 말고도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할인 스티커’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시장을 본 다음 무거운 봉지를 들고 버스에 오르고 나면 자리를 잡고 앉아 상품에 붙어있는 할인 스티커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집에 가져가면 혹시라도 아이들이 그걸 볼까봐 손톱으로 살살 긁어 표시나지 않게 떼어냈는데 어떤 건 유독 잘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였다. 하나를 떼어내면 다시 봉투를 뒤져 다른 걸 꺼내 떼어내고 또 떼어내고….

그 일에 집중하다보면 버스 내릴 곳을 지나쳐버려 무거운 봉지를 들고 한 정거장을 걸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뭘 그렇게까지 유별을 떨었나 싶지만 그땐 주머니가 가벼운 부모의 자격지심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시장을 볼 때 나를 위한 것도 하나 정도는 골랐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혼자 식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영화를 틀어놓고 마실 맥주가 필요했다. 안주는 먹태나 오징어를 좋아했지만 그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아 새우깡이나 노가리를 사올 때가 더 많았다. 그러고 보면 맥주와 노가리깡으로 버틴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기 전에는, 아니 그보다 더 젊고 어렸을 때는 엄마가 차린 밥상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고기나 생선이 없으면 밥투정을 하고 나물 반찬은 손도 대지 않았다. 입이 짧고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는 작은언니 때문에 엄마는 시장을 보러 가면 늘 고민이 많았다. 가끔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오늘은 뭘 해먹이냐…’는 혼잣말을 하며 한숨을 쉬곤 했다. 예민한 성격 탓에 위장이 약했던 오빠는 소화가 잘 되는 것들로 골라야 했고 다이어트를 하느라 채소와 과일을 주로 먹는 큰언니를 위해 장바구니에는 비싼 딸기나 셀러리 같은 것들이 담기곤 했다. 그러니 대식구의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 엄마에겐 얼마나 고단했을까.

돈이라도 넉넉해서 사고 싶은 걸 풍덩풍덩 장바구니에 골라 넣을 수 있다면 덜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보니 장바구니와 엄마의 마음은 반비례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무거운 장바구니는 엄마 마음을 가볍게 하지만 가벼운 장바구니일수록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자식 입에다 맛있고 질 좋은 음식을 넣어주고 싶지 않은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밥도 알아서 차려먹고 친구들과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올 때도 많아 예전처럼 시장을 매일 보러가진 않는다. 문 닫는 시간에 맞춰 고기나 생선을 사러가지도, 버스에서 할인 스티커를 뜯고 앉아 있다가 버스 정류장을 놓치는 일도 없다. 오늘처럼 먹고 싶은 초밥을 사오기도 하고 입맛에 맞는 맥주와 비싼 오징어 안주를 고르기도 한다. 그만큼 몸도 마음도 조금은 여유로워졌다는 뜻이겠지.

요즘도 가끔 대형 마트에 가게 되면 습관처럼 세일 코너에 들려본다. 예전의 나처럼, 계산을 마치고 나면 할인 스티커를 떼어낼지도 모를 젊은 엄마들이 그곳에 서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인 예수님의 기적처럼, 가벼운 주머니로도 가족에게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이고 싶어 하는 게 엄마 마음이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Made in 엄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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