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들 목숨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 것인지 정부가 답해야”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들 목숨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 것인지 정부가 답해야”
  • 최규재 기자
  • 승인 2021.07.12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인터뷰] ‘노동자들의 친구’ 권영국 변호사-2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1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권영국 변호사 제공

- 중대재해법처벌 관련 5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제외 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나.

▲ 5인 미만 사업체는 전체 사업체수 중 79.8%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2019년 전체 재해자의 31.6%, 사고재해자 33.8%, 사고사망자의 35.2%, 2020년 전체 사고사망자의 35.4%가 발생해 사망률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높은 재해률 및 사망률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높은 빈도로 재해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들을 법의 적용범위에서 제외한 것은 법의 실효성을 크게 저해할 뿐만 아니라 법의 형평성 원칙에도 반한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제외는 근로기준법의 적용차별에 이어 생명과 안전에서조차 기업규모를 이유로 차별적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부당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죽하면 생명차별법이라고 불렀겠는가? 가장 절실한 곳에서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정부는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들의 목숨은 가볍게 취급해도 되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이에 대한 묘안이 있다면.

▲ 기업의 지불능력을 이유로 사람의 생명과 안전마저 차별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차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정부의 사업주 등에 대한 지원 규정(제16조)을 활용해 5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술과 비용을 우선 지원하는 것으로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제외 규정을 폐기해야 한다.

 

- 권 변호사가 보기에 세월이 지나며 노동 현실이 어느 정도 진전 되었다고 여겨지는지.

▲ 나는 1995년에 금속회사에 기술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발령받은 곳은 온산공단에 있는 공장이었고 노동조합도 없었고 잔업이 일상화되어 있던 시기였다.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과 같은 구분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노동조건이 낮았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성이 별로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투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운동이 대중성을 갖기 시작했고 90년대까지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건 그리고 사회복지를 개선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8년 IMF 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은 노동통제전략을 노동간의 경쟁구도로 바뀌었다. 업무를 핵심부와 주변부로 나누고 이에 따라 고용체계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원화했다. 그리고 자본의 독과점에 따라 중소기업을 하청계열화 함으로써 노동시장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절시켰다. 나아가 자본의 노동법 적용회피와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결합되면서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이라는 노동 밖의 노동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제 노동시장은 공장이나 사무실 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체계에서 정보통신망과 플랫폼을 활용한 불안정 노동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그 결과 노동의 위계화는 고착화되고 노동의 다원화에 따른 차별과 격차, 그리고 고용불안이 이제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노동에서부터 다양한 차별과 건너기 어려운 불평등의 문제에 직면해있다. 과거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거의 모두가 가난한 사회였다면 이제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기득권화와 그 아래로 펼쳐지는 다양한 노동의 위계에 따라 차별을 당연시 하면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적자생존의 사회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더 불행한 사회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들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자본의 집약과 독점화가 비약적으로 이루지면서 자본의 분할지배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정규직에서 그러한 지배전략에 편승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불편하다.

 

-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노동자 처우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 같다.

▲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당시만 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해소, 노동존중 사회 실현 등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계로부터 상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4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이러한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대표적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정책으로 제시됐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은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인해 저임금 노동자의 실제 임금은 오히려 삭감됐다. 건강한 노동과 저녁 있는 삶을 위해 추진되었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주52시간 상한제 입법으로 전기를 맞았으나, 개정법의 시행 유보와 유연근로제 확대 등으로 자본의 오랜 희망이었던 유연화를 완성해주는 것으로 귀결됐다.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해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희망을 불러일으켰으나 정규직 대상의 축소, 자회사 남용, 전환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온존, 민간위탁에 대한 방치 등으로 용두사미가 돼버렸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전환은 아직도 논란 중에 있다.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ILO 핵심협약 비준과 국제적 수준의 노동권 보장을 내세웠으나 핵심협약 비준 과정에서 자본의 대항권이라는 주장에 밀려 노동기본권 보장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노동법 개악을 초래했다. ‘태산명동 서일필’이라는 말이 있다. 수레는 태산을 울릴 만큼 요란했으나 결과는 쥐꼬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동존중사회 건설’이라는 비전은 구호로는 요란했으나 새로운 노동체제에 대한 기대는 시작과 동시에 끝난 셈이 되었다.

 

- 노동 문제와 관련 요즘 심정은 어떤가.

▲ 우리 사회는 노동문제를 늘 경제의 종속변수로 치부해 왔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 되고 무역규모는 7위권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나 성별 고용형태별 임금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최장 노동시간의 나라이고, 산재사망 1등 국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소득의 격차와 부의 불평등 속도가 세계 최고로 내달리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의 목표가 무엇인지 근본에서 성찰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목표는 그 구성원들이 고르게 혜택을 누리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재벌의 몸집만을 키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제 경제목표는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나누고 순환시킬 것인지 배분의 문제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노동이 경제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경제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조국 사태,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 정경심 교수에 대한 혐의사실이 1심 판결대로 확정된다면 부모가 딸의 스펙을 위해 문서를 위조한 것이 되므로 공정한 법질서와 검찰개혁을 외쳤던 조국 당사자로서는 자신의 개입 여부를 떠나 윤리적인 책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직 2심과 3심이 남아있지만 법무부장관 내정 당시부터 이러한 논란이 제기된 상태였던 터라 스스로 장관 내정자를 사퇴하거나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정부와 집권당은 조국 수호 입장을 견지했고 이는 정부의 개혁정책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현 정부의 결정적인 패착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조국 사태를 보면서 든 생각은 우리 사회가 어느 새 부모의 지위와 사회적 신분이 자식의 능력으로 둔갑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었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차 공평하지 않다. 개인의 도덕성으로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넘어서기는 어렵다. 조국 사태를 보면서 돈과 사회적 지위가 성공의 잣대로 평가되는 사회에서는 조국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피할 수 없다.

 

- ‘조국의 시간’ 여전히 화제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 누구든 자신을 변명하고 방어할 자유는 있다. 조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얘기를 한다고 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혼돈의 중심에 섰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고 논란의 여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시비를 주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좀 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필요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3회로 이어집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