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또한 다시 반복될 것을 알았다
기쁨 또한 다시 반복될 것을 알았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1.07.19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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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카트만두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천변풍경

사원으로 향하는 길은 여느 카트만두의 거리들처럼 먼지로 붐볐다. 네팔의 먼지는 회백색에 가까웠다. 공장 연기에서 비롯된 검고 매캐한 먼지가 아니라 흰 가루 섞인 흙먼지 느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와 거리는 대부분 흰 콘크리트 혹은 흙길이었고 사람과 차가 지날 때마다 가볍게 먼지가 풀썩였다. 삼각형 모양의 네팔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이 수더분한 얼굴로 걸었다. 거리 곳곳에는 작은 힌두교나 불교 사원들이 왕왕 있었는데 행인들은 가벼운 의례삼아 종을 몇 번씩 울리고 이마 가운데에 붉은 점을 찍고 갔다. 동아시아인의 얼굴이기도 하고, 인도인의 얼굴과도 닮은 네팔의 사람들. 지리적으로 따지자면 네팔은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있다. 네팔을 둘러싸는 히말라야를 넘어가면 티베트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면 한국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거리의 풍경은 마치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문화가 묘하게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힌두교가 지배적이지만, 여러 사원의 지붕들은 꼭 불교 사원 같다. 하나의 ‘민족’이라고 불리지는 않는 듯 했으나 다양한 계통들에 사람이 있다고 했다. 여러 부족들. 때로 그들의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다만 네팔이라는 이름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 힌두교라는 종교는 우리에게 얼마나 낯설고 어색한가. 그래도 인도의 힌두교와 다르게 네팔의 힌두교는 어딘가 친숙한 느낌이 있다. 사원의 모양이나 사람의 얼굴 때문일까. 네팔의 사원들은 티베트 불교의 사원들과, 티베트 불교의 느낌은 중국-한국의 불교의 느낌과 잇닿는다. 닮은 것들을 사슬처럼 잇다보면 세상에 영 낯선 것은 없다는 것을, 네팔에서 종종 느낄 수 있었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등이 대개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 또한.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파슈파나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중국인 후이와 동쪽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기는 조금 먼 거리였지만 1월 1일이니 몸 움직여 걷고 싶었다. 코로나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불행에 빠질지 아직 알 수 없던 새해 첫 날, 모두가 근하신년의 마음으로 훌훌 걸어 다녔던 2020년의 카트만두의 거리. 공터 근처 줄지어 이어지는 낮은 건물들을 지나 동쪽으로, 계속 동쪽으로 후이와 나는 걸어갔다. 후이는 내가 일전에 친하게 지내던 k형과 얼굴이 닮은, 중국 시안에서 휴가 차 네팔로 여행 온 공기업 직장인이었다. 그녀와 나는 일종의 근하신년을 즐기며 한담 속에서 걸었다.

파슈파티나트 사원이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까닭은 이곳이 네팔 힌두교의 최대 성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도의 바라나시처럼 시신을 태우는 화장장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힌두교 사원들과는 다르게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은 내부로 들어갈 수 없다. 후이와 나는 네팔 힌두교도처럼 이마에 붉은 점을 찍고 또 신발을 벗어둔 채 맨발로 사원 입구로 멋쩍게 다가가 보았지만 카메라를 매고 있는 후이와 나를 그들이 들여보내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주변을 뱅뱅 돌던 우리가 갈 수 있었던 곳은 사원 아래의 천변을 따라 이어진 화장장이었다. 이 하천이 인도의 갠지스 강으로 이어진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화장한다고. 힌두교에서는 신성한 불에 타 신성한 갠지스에 뿌려지면 영혼의 정화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지류에서라도 화장(火葬)하는 걸까? 화장터의 풍경은 묵묵했다. 슬픔도, 슬프지 않음도 없었다.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장에서 느꼈던 것과는 분명 달랐다. 바라나시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했던 어떤 ‘체념’의 정서. 사람을 태우는 장례는 생각보다 잔인하지도,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저 희뿌연 연기들이 사방을 메울 뿐이다.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눈매는 왜 유독 더 쳐져보였던 걸까. 1월 1일의 장례를 후이와 나는 천변에서 지켜보았다. 끝과 시작. 오래도록 반복될, 염원하고 기도하고 애도하는 새해. 그 이후 코로나가 휩쓸고 갔을 화장장에서는, 죽은 이들이 과연 합당한 애도를 받을 수 있었을까. 떠난 사람은 말이 없지만 그들의 영혼이 바라던 곳에 도착해 있기를 바란다.

 

 

보나타트, 지혜의 눈
보나타트, 지혜의 눈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보나타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보나타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보나타트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사자 탈

사람 참 좋은 후이에게 나는 딱 한 번 질투심을 느꼈다. 그녀가 중국인이기에, 자유롭게 티베트에 방문할 수 있기 때문. 외국인이 티베트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꽤 귀찮은 절차가 요구되는 데다 돈도 상당히 든다. 후이는 1년에 한 번 정도 값싼 비행기 표로 티베트를 여행한다고 했다.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에서 그녀의 가족들은 라싸의 포탈라 궁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티베트를 직접 경험한 후이 덕분에 네팔에도 존속되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의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티베트와 한족의 관계를 생각하면 약간 분하기도 했다. 식민과 점령의 역사는 가족 여행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진 역사는 수두룩했으니, 후이의 웃음이 제국주의적 폭력과 완전히 같은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후이는 내가 티베트의 독립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을 특이한 중국인이기도 했다.

네팔이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있다고 한다면 티베트도 빼놓을 수는 없다. 히말라야 산맥을 좌우로 한 네팔과 티베트의 문화는 꽤 닮아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라는 거대한 동양 문화권의 사이를 잇고 있다. 다만 네팔은 국가로 남았고, 티베트는 지역으로 남았다. 유럽의 역사에서 로마 교황청을 빼놓을 수 없듯이, 아시아의 역사에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은 상당히 흥미롭다. 티베트를 그저 중국의 한 부분으로 읽을 때 우리는 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을 읽을 수 없다. 티베트는 인도 문화권과 중국 문화권의 사이에서, 힌두교와 인접한 특유의 불교문화를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와 서역을 남쪽으로 잇는 길목이 되기도 했으며, 티베트 계통의 민족들은 중국 남부에까지 여전히 존재하고, 다시 그들의 문화는 동남아 문화권과도 연결될 수 있다. 티베트불교가 몽골의 종교적 구심점이 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라핑
라핑
모모
모모

티베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사실 후이에게 그녀도 잘 모르던 티베트 음식을 소개했던 순간 때문이다. 사실 네팔-티베트는 음식마저 꽤 유사했다. 면 요리인 뚝빠, 수제비 뗀뚝, 만두 모모. 그리고 부드럽고 얇은 묵 같은 것에 잘게 부서진 튀김을 매운 소스에 곁들여 먹는 ‘라핑’이라는 음식이 있다. 중국 쪽에서는 ‘량펀’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나는 일전에 이 음식을 먹어보고 카트만두에도 파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후이도 잘 모르던 음식이었다. 내가 당당히 소개하며 찾아간 곳은 불교 사원인 보다나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이었다. 그곳에 라핑은 꽤 맛있었던 것을 고사하고, 우리는 예기치 않게 그곳에서 새해 축제를 마주했다. 사원 내부에 따로 조성되어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운데 놓인 불탑-스투파 주위를 사람들이 흥에 겹게 돌고 있었다.

스투파의 거대한 눈 위로 날아가는 비둘기들. 네팔 티베트 불교의 총본산이라는 이곳의 광장은 거대한 새해 축제장이었다. 사자탈을 쓴 젊은 춤꾼들이 현란하게 몸을 움직이며 나타났고 그들은 스투파 주변을 지치지 않고 돌았다. 글자를 못 읽는 사람들을 위해 한 번 돌리면 불경을 읽는 것과 같다는 여러 개의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 스투파 밑으로는 몇 번 절하는 것을 결심했는지 무릎이 까매지도록 절을 하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인파는 계속 스투파 주변을 돌았다. 무엇인가가 반복된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처럼. 혹은 반복 속에서 무언가 깨달을 게 있다는 것처럼. 아니 적어도, 새해 축제에서 빙글빙글도는 것은 그냥 즐거운 일이었다. 사자털을 휘날리며 자리를 도는 춤꾼과 그들이 나아가며 도는 스투파 주변의 거대한 원.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더 나은 날을 염원하는 사람들. 이럴 때 사람의 얼굴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그렇게 2020년이 왔고, 재수 없는 코로나도 같이 왔다. 다들 그걸 알리는 없었지만, 스투파에 새겨진 지혜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이 새해의 기쁨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반복될 것만큼은 알았다. 우리들은 그렇게 계속 돌 것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아주 단순한 기쁨을 유지한 채. 이따금씩 슬픈 얼굴로. 그러나 돌아가는 둥근 춤 아래서 아주 간명한 표정을 남기며. 그것이 인간의 삶이자 노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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