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꽃을 닮은 여인의 생애를 추억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리꽃을 닮은 여인의 생애를 추억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7.30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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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아침의 나리
아침의 나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나리꽃이 피는 계절이면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생각하고자 해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를 연모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혹은 미워해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큰 키에 한들한들 춤을 추는 것만 같은 나리꽃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불쑥, 생각이 나는 것이니 나로서도 어찌해볼 수 없는 생각인 셈이다.

그녀를 실제로 본 것은 한 번이었다. 보고자 해서 본 것은 아니었다. 함께 있던 선배가 턱짓으로 누군가를 “저 여자 말이지.” 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일 뿐이었다. 청보리로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 식당에서였다. 식탁 두 개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우리는 대각선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 본 얼굴인데도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져서 의아했다. 의아해서 그녀를 보고, 또 보았다. 한 번도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맞은편 남자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며 미소를 아주 행복하게 짓고 있는 그녀는 뭐랄까. 자기 자신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누가 죽는다 해도,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자신의 관심사에만 몰두해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저 남자는 저 여자 남편이 아니거든. 남편은 아마 식당에서 장어 뼈 골라내는 일이나 죽어라고 하고 있을 껄?”

“그래요?”

“남편 아닌 남자는 저 남자 말고도 아마 두셋 더 있을 껄?”

“그런 연애 힘들지 않나?”

중얼거리며 그녀를 한 번 더 보고자 고개를 들었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자는 어느새 자리를 떠나 출입문 밖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남자와 바싹 붙어서 팔짱을 끼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익숙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본 그녀가 왜 낯설지 않고 자꾸 친숙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날 그 자리에서는 그 문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선배가 그 여자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하고, 철학의 한 테마 같기도 해서 오, 아, 그래? 이야 그것 참, 하는 식의 감탄사와 의문부호만 연발하다가 헤어졌다.

 

한낮의 나리
한낮의 나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때가 마침 여름의 초입이었고, 우리 집 마당에서는 샤스타데이지가 피었다가 지고 백합도 피었다가 지고 벌개미취와 나리꽃이 한창 새로 피어나는 중이었다. 아침 일찍 마당을 거닐다가 나리꽃에 눈길을 주는 순간 아, 하면서 그녀가 떠올라 왔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나리꽃을 닮았다. 앞에서 볼 때도 나리꽃을 연상시키고, 뒤에서 볼 때도 역시 나리꽃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 그녀의 무엇이 어떻게 나리꽃과 일치하고 있는가 하는 주제로 에세이를 쓰자면 아마 이백 페이지 정도는 거뜬히 써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 그녀를 볼 기회는 두 번 다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근황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여기에 가면 이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저기에 가면 또 저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것이어서, 십 년 너머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그녀에 관한 파일이 기가를 넘어 테라급으로 축적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로 날밤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남편은 남편이고 애인은 애인이지.”하는 문장 하나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리꽃을 닮은 그녀 자신이 언제인가 그런 발언을 해서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 말이 바로 그녀가 ‘미친년’이라는 증거로 간주하고 있었고, 그래서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면 그 ‘미친년’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거였다.

인생이란 정답이 없고, 정답이 있을 수도 없는 것이어서, 우연과 우연이 겹치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필연이 형성되면 ‘인생 뭐 별 거 있겠어, 이렇게 살다가 죽는 거지 뭐,’ 하고 요약해버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녀는 후회라든가 원망, 회한, 자포자기 같은 것들과는 일찍부터 담을 쌓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살아온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제법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훌륭한 화가로 거듭날 것이라 했지만, 그녀의 부모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아니 어쩌면 생각 같은 것이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도박 때문에 감옥을 살고 나와서도 다시 도박에 손을 대는 그 방면으로 완전 전문가였고, 어머니는 다섯이나 되는 새끼들 굶어죽지 않게 하는 일만으로도 정신 차릴 틈이 없는 형편이었다.

 

구름이 많은 날의 나리
구름이 많은 날의 나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사람이 도박에 미치면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말은 진리였다. 그녀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보로 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미술대학은커녕 중학교도 입학하지 못한 채 식당 심부름꾼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녀가 식당 심부름꾼 일을 시작한 뒤로 그녀의 아버지는 사흘이 멀다고 식당으로 달려와서 잔돈푼을 뜯어갔다. 식당 주인은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거부하지는 않고 매번 돈을 내주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계산이 매우 빠르고 치밀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아야 했다. 그것을 알기까지 삼 년이 걸렸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런 기막힌 일이 두 번 다시 그녀를 농락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나이 열일곱 살에 임신을 했고, 열여덟 살에 엄마가 되었고, 열아홉 살에는 식당 주인에 버금가는 신분이 되었고,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는 ‘요사스런 물건’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서른이 채 안 돼서부터 ‘미친년’ 소리를 듣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그녀를 아이 엄마로 만들어놓은 식당 주인은 이제부터 그녀의 노예가 될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녀의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세상살이를 우연한 행운 따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개척해나간 것일 뿐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한 번 속지 두 번은 안 속는다고 자신만만해 하면서도 속기를 되풀이하는 동물이지만, 그녀는 그런 일반상식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았던 셈이다.

노름에 미친 아버지가 자신을 식당 심부름꾼으로 잡힌 정도가 아니라 주인 남자에게 팔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게 아니라 살고자 하는 의지로 치환되면서 영혼에까지 새겨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식당 주인은 여자가 옆에 있으면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결혼도 안 하고 오직 하나 돈 버는 일에만 전력투구해온 사람이었다. 노름 전문가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도 결국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어린 여자애를 심부름꾼으로 데려온 것은 심부름꾼이 딱히 필요해서가 아니라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을 목적에서일 뿐이었다.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을 목적으로 데려다놓은 여자애를 아이 엄마로 만들자는 발상은 글쎄, 돈벌레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아버지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두 사람 외에 다른 누가 알 수 있을까마는,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되었다.

 

해가 진 뒤의 나리
해가 진 뒤의 나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녀는 아이를 낳긴 했지만 정을 주지는 못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아마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이가 젖을 떼자마자 그녀는 아이를 방치하다시피 하고 식당을 마치 공원 산책하듯이 한들한들 돌아다니며 아무에게나 미소를 던졌고, 혼자 들어온 남자에게는 맥주나 음료수 같은 것을 들고 가서 “이거 제가 드리는 서비스거든요.”하며 방긋방긋 웃어주기를 취미처럼 했다.

그래, 그녀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방긋방긋한 웃음. 아이 갓은 웃음. 소리 없이 피는 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입술 가장자리와 양 볼 그리고 눈초리가 부드럽게 춤이라도 추듯이 움직이는 그런 웃음의 기술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이제 그녀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식당 주인은 길길이 날뛰었다. 식당 주인이 날뛰기 시작하면 그녀는 재빠르게 주방으로 달려가서 커다란 식칼을 들고 나왔다.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위협의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다만 커다란 식칼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청년에게 그녀가 최신형 일제 오토바이를 사 주었다는 소문이었다. 둘이서 그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이백 킬로미터로 질주한다는 소문이었다. 곧 이어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오토바이 청년이 아닌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자동차 판매점에 들어와서 중형차 한 대를 계약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주제로 이어져 갔다.

식당 주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은 그녀의 나이 마흔에 근접한 시기의 어느 날이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고 새로운 소문을 만들어서 뿌렸다. 남자가 애달카달 모아온 돈을 여자가 뭉텅이로 빼내 써버렸다는 것을 남자가 뒤늦게 알고 쓰러졌다는 소문이었다. 돈이란 역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기 마련이라는 논평도 옵션으로 붙었다.

식당 주인이 일 년 넘게 투병을 하다가 결국은 저세상으로 떠났을 때, 그때 그녀가 돈을 물 쓰듯이 하고 다녔다는 소문은 명백한 사실이었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장례식장에서의 마지막 날, 마지막 장례절차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소복을 벗어던지고 조의금 들어온 것을 죄다 털어갖고 여행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벌개미취
벌개미취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여행지에서 돌아온 그녀는 남아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워낙 돈밖에 몰랐던 까닭으로 처분할 만한 부동산은 제법 있었다. 여기저기 도처에 논이며 밭이며 택지며 심지어는 공장부지까지 있는 것이어서, 그것들을 모두 처분하는 데만도 일 년이 넘는 세월을 필요로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달랑 하나 식당뿐이었다. 식당뿐이라고 했지만 규모가 제법 커서 돈이 될 만은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마 고민을 좀 했던 모양이었다. 이것을 아들이란 녀석의 생계수단으로 남겨둘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을.

비록 정은 안 붙었지만 아들은 아들이었다. 만약에 아들이 제 아비처럼 돈밖에 몰라서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성격이었다면 그녀는 아마 식당도 팔아 치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은 어려서부터 엄마를 엄청나게 무서워했고, 자발적으로 무슨 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눈앞에 닥쳐 있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했다. 아들의 그런 스타일이 그녀는 아마 고민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식당을 매물로 내놓았다가 취소하고, 또 내놓았다가 취소한 그녀는 결국 식당을 아들 이름으로 등기이전까지 해 주었다.

그녀가 고창을 완전히 떴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아마 오 년인가, 육 년쯤 전일 것이다. 어디로 갔는가는 아무도 몰랐고, 어디서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여름,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허리를 타고 슬슬 흘러내리는 땀이 뱀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계절에 나리꽃을 보면서 그녀를 떠올리고 있는 내 마음의 행로가 나는 궁금하다. 나는 왜 자꾸 그녀를 생각하는 것일까.

보고 싶어서? 술이라도 한 잔 나눠 마시고 싶어서?

아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만은 아닌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긴 어쩌면, 어쩌면 모르는 까닭에 자꾸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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