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저널리즘 아티스트’ 정지영 감독-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정지영 감독은 1990년 분단문제를 주제로 ‘남부군’을 연출해 흥행과 비평에 모두 성공, 이목을 끌었다. 안기부(현 국정원)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고, 이 영화를 반공영화로 봐야 할지, 용공영화로 해석해야 할지 갈등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있다. 정 감독은 이후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로 주목을 받았고, 고 김근태 의원의 이야기 ‘남영동’과 ‘부러진 화살’, ‘블랙머니’ 등을 연출하며 ‘현실참여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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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남부군’으로는 청룡영화상 감독상, ‘하얀 전쟁’으로 대종상 영화제 각색상,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대상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로 백상예술대상 감독상과 청룡영화상 대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런 그가 스스로 아티스트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영화감독이라는 자신의 존재와 아티스트와의 구분을 명확히 하려 한다.

“저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아티스트는 관객이 뭐라 하든 자기 식으로 던지고 해석은 관객에게 맡긴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 자기 식으로 푸는 게 아티스트라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를 던져서 묻는다. 구태여 말한다면 대중영화 감독이다. 그렇다고 상업영화 감독은 아니다. 철저하게 오락적 목적을 갖고 만들진 않기에.”

이쯤 되면 아티스트라기보단 저널리스트에 가깝다. 그는 여전히 ‘고발 정신’에 입각해 작품을 설계한다. 근작 ‘블랙머니’와 같은 작품들은 한 사건을 풀어가면서 관객과 대화했고,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나 ‘하얀 전쟁’은 현대사 속 커다란 기간에 대한 일을 다루었다. 시간의 차이일 뿐이었다. ‘헐리우드’나 ‘하얀 전쟁’ 등은 시간상의 긴 구간 속에서 그리고 그 맥락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것이다. 정 감독에 따르면 자신의 모든 작품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정치사회에 대한 질문이었다. ‘헐리우드’의 경우 우리가 어느새 미국 문화 속에 젖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지배력 속에서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삶에 대한 시간 차이일 뿐이지, 사회고발적 질문에 있어 ‘블랙머니’와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정 감독은 “제 작품은 ‘고발하면서 항상 질문하는 것’ 정도로 규정할 수 있겠다.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이 감상을 하게 되면 ‘그거 아닌데’ 하고 우기는 사람도 있다. 제 말이 맞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채워줬다는 보람으로 작업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모든 관객과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묻고자 하는 작품들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아티스트라면 자기 멋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런 입장에서 작품을 설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정 감독의 그간 작품 얘기를 통해 우회적으로 우리 정치사회 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작품과 정치사회 현실을 다분히 ‘콜라주’ 시키려는 인터뷰 분위기는 전적으로 정 감독의 의도라 봐도 무방하다. 다음은 정지영 감독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영화 '블랙머니' 포스터 ⓒ위클리서울/ 다음영화

- ‘블랙머니’가 근작이다. 근황이 어떤가.

▲ 그 후에도 작품활동은 계속했다. 코로나가 터져 발목이 잡혔다. 설경구, 유준상 등이 출연한 ‘소년들’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직 개봉을 못했다. 실제 사건을 극화한 영화다. 동네 구멍가게 할머니가 살해당한 내용을 영화한 것이다.

 

- 코로나 시대, 작품 활동에 지장이 많을 것 같다.

▲ 저야 이미 촬영을 마친 상황이어서 후속 작업을 하고 있지만, 대다수 영화인들은 코로나 때문에 활동을 못하고 있다. 이미 투자된 영화들도 개봉을 못하고 있다. 뭔가 새롭게 촬영을 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언제 개봉될지 모르니 투자체에서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봉작들이 많이 밀려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자체로서는 돈이 회수되어야 하는데, 회수가 안 된다. 특히 몇 백억 투자한 대작들은 개봉할 엄두를 못낸다. CJ의 경우 안중근 얘기를 뮤지컬로 다뤘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봉을 미루고 눈치만 보고 있다. 투자가 많이 들어간 대작들은 지금 당장 본전을 뽑기 힘든 상황이니 말이다.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하얀 전쟁’ 등 주요작들은 안정효 작가의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안 작가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는지.

▲ ‘하얀 전쟁’으로 인연을 맺었다. 마침 하얀전쟁이 극장서 내려왔을 때 안 작가가 곧바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다음 소설로 썼더라. 그 상황에서 연속으로 안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 했다. 제가 안 작가 작품을 연속으로 한 데에는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 보통 작가들은 원작을 훼손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얀전쟁을 영화 시나리오를 바꿀 때 각색을 많이 했다. 안 작가가 서운해 하면 어쩔까 하고 고민을 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먼저 보여줬다. 그런데 안 작가에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감독한테 밀가루를 줬을 뿐입니다. 그 밀가루로 빵을 만들든 국수를 만들든 그건 감독의 몫입니다.” 그때 감동했다. 대개는 원작이 흐트러지는 걸 싫어하는데 알아서 하라 길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도 영화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영화화 하기 좋은 소설은 아니었다. 근데 어떤 힌트(?)를 얻어서 원작을 영화화하겠다고 말했고 안 작가에게 승낙 받았다. 라스트씬이 많이 각색되었던게 힌트라면 힌트랄까. 어쨌거나 안 작가와 좋은 콤비네이션을 이루게 되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옛날 헐리우드 영화를 콜라주해서 시나리오 쓴 것에 대해 왜 그랬었는지 답도 없이 사라지는데, 저는 제 영화에서 주인공 스스로도 미국의 영향을 받아 세뇌되었다는 식으로 각색했다. 라스트씬이 마음에 들었었는지 안 작가는 이 소설을 영문소설로 번역하고 출판할 때 영화에 있는 대사와 내용을 넣었다. 반미 정서가 반영된 작품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과한 해석이다. 해방 이후 우리는 미국문화의 융단폭격 속에서 자랐다. 모든 문화는 미국으로부터 들어왔지, 다양한 문화를 섭취할 수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점검한 작품일 뿐이다.

 

- ‘남부군’, ‘부러진 화살’, ‘남영동’도 그러했지만 그간 작품들은 주로 사회고발적 성향을 띤다. 감독으로서 어떤 철학을 갖고 있나.

▲ 저는 영화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고정관념 혹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편적 이야기가 있다면, 과연 그것이 맞는가, 그 보편성이 우리에게 왜곡되어서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등등의 의문들을 점검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 하얀전쟁의 경우 월남전은 대한민국이 월남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도와준 것인가, 과연 그런가, 진짜 그런가, 그 안에 무엇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월남에서 우리는 돈을 벌었다. 그것이 포장지 같은 것인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려 했다. 대부분 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제 의견을 던지고 질문해서 소통을 유도하려는 작업 같은 것이었다. 저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아티스트는 관객이 뭐라 하던 자기 식으로 던지고 해석은 관객에게 맡긴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 자기 식으로 푸는 게 아티스트라면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를 던져서 묻는다. 구태여 말한다면 대중영화 감독이다. 그렇다고 상업영화 감독은 아니다. 철저하게 오락적 목적을 갖고 만들진 않기에.

 

- 시인으로 치자면, 김수영이나 송경동 같은 인상이다.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나.

▲ 참여예술을 한다고 보면 된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참여예술 지향적인 사람이다.

 

- 어떤 작가와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았나.

▲ 감독으로 치자면 히치콕한테 영향을 받았다.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미스터리 기법을 사용해야 재밌게 소통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말이다. 정치사회 문제에 깊이 빠지기 전엔 영화 쪽 보다는, 문학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 세계문학에 깊이 빠졌다. 일본, 유럽, 미국 등의 희곡들을 많이 접하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서 사회를 보는 눈이나 삶을 보는 시각이 성장했다. 한국 문학에서는 최인훈 등을 좋아했고 사회 문제 접근하는 방법도 그쪽 진영에서 영향받았다. 한국영화계에서는 유현목, 김기영, 이만희 감독 등에게 영향 받았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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