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저널리즘 아티스트’ 정지영 감독-3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정지영 감독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사회고발 작품을 주로 해온 만큼,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다. 요즘 마음에 들거나 눈에 들어오는 정치인이 있다면.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정치의 영향을 너무 받고 산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산다. 실제로는 정치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 제가 누구를 콕 집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정치인 중에 지지하는 사람은 있지만, 지지하는 건 100프로 지지한다기 보단 비교적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재하는 정치인들 중에선 노무현, 노회찬 같은 분들이 괜찮았다.

 

- 문재인 정부를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 단점이라면 문재인 대통령, 사람이 너무 좋다. 야망이 없는 사람 같다. 대통령도 떠밀려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일들을 제대로 못해 못마땅하게 보이는 것 같다. 현 정부는 촛불로 세워진 정부다. 국회의석도 많이 가져가지 않았나. 좀 열심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한번 제대로 해봤으면 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

 

- 차기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가.

▲ 아무튼 추진력 있었으면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과감하게 점검하고 받아들여서 추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소수가 반대한다고 그들까지 맞춰주기엔 우리가 할 일이 너무 많다. 대한민국, 상당히 객관적으로 수치적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었다. 그 동안 다른 롤모델인 미국이나 유럽을 뒤좇았다. 이제 우리가 앞서나갈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다른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데, 그건 추진력 없으면 불가능하다. 머뭇머뭇 하면 안 된다. 이를테면 유투브 활성화 통해 가짜 뉴스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가 가장 많이 부작용을 느끼고 있다. 그 부작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건 대한민국이 만들어내고 착안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이 대한민국으로 따라오게 해야 한다.

 

- 80년대 후반 ‘남부군’ 촬영할 당시, 분단 현실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다. 그 때와 지금의 분단 문제 비교하자면.

▲ 우리사회는 레드콤플렉스에 찌들어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레드콤플렉스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당히 심한 좌우갈등이 있는 것 같다. 남부군을 만들 때 첫 기자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영화 어떻게 만들거냐는 질문에 “반공영화를 만들거나 용공영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영화 개봉 이후 빨치산 생활을 잘 그렸다고 해서 빨치산을 미화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좌파 진영에서는 빨치산을 감상적 휴머니스트로 표현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양쪽에서 비판받은 것이다. 근데 그건 제가 바라던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분단비극을 들여다 보자라는 취지로 만든 영화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상당히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그동안의 대부분 분단영화가 반공영화였는데 그 당시는 금기를 건드린 영화였다. 이제는 그런 영화 나와서 획기적일 수 없다. 다만 아직도 일부 정서가 제가 남부군을 만들 그 당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족이 북으로 가서 그리고 좌파 지식인 때문에 연좌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여전히 극복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직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영화 '남부군' 포스터 ⓒ위클리서울/다음영화

- 남부군 촬영 당시 여러 제약이 있었을 것 같은데.

▲ 1988년부터 찍기 시작했다. 87년에 6월 항쟁이 있었고 남부군을 만들 수 있었던 현실은 87년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노태우 정권은 당연히 이 영화를 싫어했다. 투자는 다른 사람이 했지만 제작자는 제 이름으로 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영화를 만들면 87년 경험이 있으니, 검열에 걸리면 내 뒤에는 국민들이 있다고. 검열당국에선 상당한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한 쪽에서는 ‘이게 무슨 위험한 영화냐, 오히려 반공영화다’라고 했단다. 상당한 논란 끝에 무사히 통과되었다고 한다. 영화가 개봉하고 안기부(현 국정원)에서 매주 주말에 단체로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토론을 했다고 한다. 토론할 때마다 안기부의 젊은 직원들과 기성 권력자들의 입장이 확연히 구분되었다고 한다. 계급 높은 사람들은 큰일 날 영화라 그러고 젊은 직원들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맞섰다고 한다.

 

- 과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부터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까지, 언제부턴가 세계에서 한국영화를 주목해왔다. 현재 우리 영화 위상에 대해 논하자면.

▲ 옛날부터 잘 만들었다. 다만 기술적 결함 때문에 영화가 거칠었다. 연기력도 부족해 보였다. 이런 점 때문에 못나보였지 실제로는 한국사람들이 영화를 잘 만든다. 김기영, 이만희, 김수용, 유현목 영화들을 보면 상당히 잘 만든다. 헐리우드 등 영화선진국처럼 완벽한 조명 등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었다. 실제 외국평론가들 중에 한국영화 연구하는 사람 많다. 한국의 고전 B급영화 만든 감독들을 연구한 평론가들도 있다. 그들은 늘 그렇게 평가한다. 영화 만드는 한국 사람들 뛰어나다고. 그 하찮게 보이는 영화 보면서 그걸 느낀다고 한다. 평론가들은 세르지오 레오네(60~70년대 ‘황야의 무법자’ 등 연출)의 영화에게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렀고, 한국의 당대 영화에게 ‘만주 웨스턴’이라고 평했다. 요즘 한국기술력이 최고수준이 되어서 헐리우드 영화 가깝게 만들어내지만, 그전에 우린 물량과 기술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여기면 된다. 지금도 물량 부족해도 웬만큼 만들어낸다. 부족한 물량으로 지금까지 온 건 한국영화의 저력이다. 앞으로 한국영화나 많은 콘텐츠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시대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많은 작품을 했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 김산의 ‘아리랑’(님 웨일즈 저)을 영화화 하려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촬영하려면 중국 정부가 촬영을 허락해야 한다. 중국은 자신의 혁명과정을 논하는 것을 싫어한다. 김산 얘기를 꺼내면 분명 검열을 당하게 되어 있다. 김산의 행적에서 중국 공산당의 치부가 드러날 수 있어서다. 그래서 보류 중이다. 대안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조선희 작가(전 한겨레신문 기자)의 소설 ‘세 여자’ 시나리오 작업이다. 192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 일어나는 20대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독립운동을 하고 공산주의 활동하면서 해방 때까지 이어지는 소설을 영화화 하려 한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들이었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다. 그 이야기를 8부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영화 작업은 분단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싶어서 1947년도에 즈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해방과 전쟁 사이 38선이 외부의 힘에 의해 그어지고 그때 우리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비극을 다루려 한다.

 

- 문화예술인으로서 목청을 높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다. 제발 문화예술적 마인드 좀 가져달라고. 이것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알아 달라고. 문화예술 예산이 너무 형편이 없다. 문화예술의 인재들 나올 수 있는 인프라가 되면 그 사람은 위대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민주당이나 정의당도 요즘 통 마음에 안 든다. 물론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아니라고 여겼기에 논외다. 논의할 가치가 없는 당이다. 그저 한국에 정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 둘 중에 하나 골라서 선거하라는 건 폭력이다. 여러 당이 생겨서 정책 연대해야 정치가 산다. 정치든 문화예술이든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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