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해야 했던 어떤 일에 대해
감당해야 했던 어떤 일에 대해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1.08.2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생 탐방기] 2회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정다은기자

※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주의를 요하는 글입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시기도 있었고, 마음을 다잡고 한 줄씩 쓰다 다시 좌절하는 시기도 있었으며, 완성된 분량의 글을 써놓고도 죄다 지우기만 하는 시기도 있었다. 엉망일지언정 뭐라도 쓰는 게 낫다는 좌우명이 맥없이 꺾인 날들이었다. 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증만 자극할 일은 아니기에, 본론부터 급히 들어가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지난 6월에 친구를 떠나보냈다. 감히 친구라 불러도 되는 것인지, 여전히 많은 걱정과 망설임이 앞선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에 밝지 않은 글을 쓰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이런 일에 관해서는 정해진 규칙이나 정답이 없어 무한정 덮어놓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미루고 미루다, 그 친구를 생각하고 말하고 글로 쓰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6월, 그때는 한 영화제에 출근을 시작했었다. 경력이 전무한 사회초년생으로서 하루하루 무사히 출근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만 몸과 마음의 체력을 기르기 위해 퇴근 후 지친 몸을 억지로 끌고 필라테스 운동을 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스튜디오 앞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친구 M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를 자주 하는 사이라서 운동이 끝나고 연락을 받아도 됐지만,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똑같은 전화벨인데도 급하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반신반의하며 전화를 받았다. 별 일이 아니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발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M이 친구의 부고를 전했다. 아직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하고 소화하기도 전, 계단을 오르던 발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얼어붙은 상태였지만, 몸은 상황에 지배된 듯 눈물이 흘렀다.

M은 말을 하면 할수록 호흡이 가빠지고 울음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잔뜩 우는 사람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날은 모든 말이 정확히 몸을 관통했다. 지난 밤 친구 H가 투신을 했고, 시신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반으로 갈라졌다. 한 쪽은 저 아래로 내려앉았고, 한 쪽은 괜한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H는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아직 모르는 거잖아. 살아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M은 조금의 긍정도 없이 이번에는 아니라고. 희망도 가능성도 없다고 구체적인 정황을 말했다. 그 순간 갈라졌던 마음들이 무너져 내렸다. 가장 잔인한 것은, 내가 온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을 예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구도 H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판단은 지독했고, 이기심은 섬뜩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소식과 사실을 전한 M은 죽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며 울었다. 너는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며 오열하는 M의 말이 너무도 송구스러웠다. 나는 제멋대로 울고는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H의 곁에 있었던 친구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있었다. 마치 가벼운 감기에 걸린 상황에서 지극한 걱정의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너를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한 채 M의 조각난 마음을 주워 모았다. 또 부서지면 다시 주워줄 테니 꼭 언제든 연락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을 돌봐줄 이의 집에 도착한 M은 전화를 끊었고, 나는 스튜디오 앞에 덩그러니 남았다.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뭘 어떡해야 하지. 그냥 울어야 하나.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갑작스레 들은 소식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계단을 마저 올라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을 지나쳐 탈의실로 들어가고, 눈물을 흔적 없이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자리에 서서 선생님을 따라 필라테스 동작을 수행했다. 다행히 어려운 동작들을 따라하다 보면 머릿속이 비워져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눈물샘이 제 자아를 지닌 것처럼 이따금 눈물이 흘렀다. 그럼 속으로 또 물었다. 이 와중에 정말 슬프기는 하냐고. 마치 나에게 벌을 준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했다.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어려운 동작을 무리해서 수행했다. 운동이 끝나면 늘 그렇듯 마음과 사고가 명쾌해질 줄 알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꼭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이 일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출근을 했다. 아직 H가 발견되지 않았고, 발견까지 수일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출근을 해야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강의 북쪽이고, 출근하는 영화제는 강의 남쪽이라 버스와 지하철 모두 반드시 강의 다리를 건너야 했다. H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그 다리는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아직 발견되지 못한 채 깊고 넓은 강 어딘가에 있었다. 그 강 위의 다리를 지나 출근을 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무언가를 꾹꾹 눌렀고 잔인한 현실을 숨죽여 받아들였다. 아직 얼굴도 낯선 팀장님께 소식을 말씀드리며 어느 날 일을 하던 도중 장례식장에 가야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렸고, 며칠 내내 상복을 입었다. 동료들에게 감정을 전이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상복의 짙은 묵색은 강한 전파력이 있었다.

또다시 마음이 반으로 갈라졌다. 한쪽은 옆의 동료들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어떻게든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고민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모든 것이 멈춰진 채 그저 울고만 있는 친구들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내 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들이 무거운 부담으로 혹은 마음을 외면할 방패로 쓰였다. 주변 사람들은 남을 걱정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주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간을 다시 돌린다 해도 다른 선택지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 역시 주변 친구들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었다. 지금은 남을 걱정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나도 그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강조해서 말하고 다녔다. 사실 모두가 이것이 정답임을 알아도 실천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그 방법을 고민하고 고안해야 하지만 지금까지도 별 수는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것,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작은 행복이라도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것만 간신히 실천해왔다.

6월에 있었던 일과 그로인한 파장을 담은 이 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다. 앞으로 더 쓸 수도 있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며 덮어질 수도 있다. 부디 바라건대, 또 다른 비슷한 일로 글을 쓰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에겐 이 글도 어려움으로 다가오겠지만, 적어도 혼자 겪어내는 감정과 상황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작은 역할이라도 된다면 좋겠다. 우리는 계속 말해야 한다. 그리고 같이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