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쯩’은 일단 까고 봐야 할 일
‘쯩’은 일단 까고 봐야 할 일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08.2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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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운전면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남편 험담하는 글이다.).

요즘은 운전면허 미소지자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이 면허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운전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또는 차량을 소지하거나 소지하고 있지 않거나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그만큼 운전면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요건이 되었다. 예전에는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할 때에도 운전면허 소지 여부를 기재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생략한다고 한다. 그 정도는 당연히 소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30년여 년을 대중교통과 두 발로 뚜벅거리며 살다가 밀레니엄 시대가 오기 직전에 면허를 취득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출퇴근을 하던 때였는데 회사가 있던 동네가 지금은 개발이 되어 번화가를 이루고 있지만 그 때는 버스 배차시간도 길었고 무엇보다 천재지변에 취약한 곳이라 폭설이나 태풍이 오면 기사님의 안전을 위한 배려의 차원인지 운행 자체를 아예 접어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본인소유의 차량을 운전하거나 회사 차량을 이용하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마 그 때부터 면허를 따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매번 도움을 받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특히 회사 소유의 차량인 화물차가 그렇게 멋져 보이는 것이다.

강렬한 햇볕아래 반짝거리는 백사장 모래알처럼 눈부시게 만드는 까만색 승용차도 아니고, 행여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머리카락이라도 휘날리고 싶을 때는 창문 대신 차량의 천정 뚜껑을 열어젖히는 빨간색 스포츠카도 아닌, 차량 몸체의 짐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물차에 괜히 꽂혀버렸다. 일반 승용차와는 달리 운전석의 높이가 시야를 넓게 확보해 주었고 사람이 아닌 화물을 실을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덤프트럭의 거대한 몸짓, 높은 차체, 그리고 화물칸의 문이 열리면서 쏟아내는 모래를 보고 있으면 묘한 남성미가 느껴지곤 했다. 투박한 화물차를 운전하며 차창을 열어젖힌 채 팔 하나를 걸치고 바람결에 긴 머리 한 번 휘날려 보자고 결심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된 것이다.

면허를 취득하고 난 후 나의 꼴불견은 하늘을 찔렀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면허 소지 여부부터 확인했다. 더불어 나는 1종 보통 운전면허가 있다고 굳이 강조했다. 그 누구도 궁금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은행 업무를 볼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면 운전면허증을 꺼내 들었다.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는 필요 없는 거짓부렁과 함께 말이다. 신분증이 필요 없냐고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시때때로 운전면허증을 자랑하고 돌아 댕기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던지 사장님은 회사 소유의 화물차 한 대를 출퇴근용으로 내어 주었다. 처음 로망대로 차창을 내린 채 팔 하나를 걸치고 바람결에 머리카락을 내 맡기는 운전을 해봤다. 차창에 올려놓은 팔은 뻐근했고 머리카락은 얼굴을 휘감아서 운전에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 즈음 남편을 만났다.

우리 회사의 모기업 직원이 업무 차 가끔 회사를 방문했는데, 그 때마다 사장님 이하 여러 상사들은 나와 그 직원을 어떻게든 엮어 보려고 애를 썼다. 서른 언저리에 있는 여직원이 결혼도 하지 않고 화물차에 꽂혀 있는 모습이 제 정신이 아니라 여겼는지 아니면 같이 근무를 하던 동갑내기 여직원은 다섯 살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비교가 되어서인지 특히 사장님은 회사의 매출을 올리는 일보다 나와 그 직원을 성공적으로 엮어 내는 일이 매출 신장보다 더 중요한 업무라고 착각 하신 것 같았다.

어느 날 직원 회식을 겸한 식사자리까지 성사되었는데 내가 화물차 다음으로 꽂히게 된 것이 있었으니 그 직원이 1종 대형면허가 있다는 것이다.

1종 대형 면허란 것이 우선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응시를 할 수 있는 면허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연배였던 그 직원은 면허도 일찍 땄겠지만 꾸준한 자기 개발을 위해서 1종 대형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는 것에 그 성실함이 숭고해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 면허증 구경 한 번 시켜줄 수 없냐고 했을 때에도 별거 아니라며 손 사레를 치는 모습에 사방팔방 면허증을 공개하기 바빴던 나와 달리 겸손하기 까지 하구나 싶은 생각에 콩깍지가 덮여져 하트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던 것이었던 거시다.

사장님 이하 여러 상사들의 바람대로 나는 1종 대형면허를 가지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직원과 결혼을 해버렸던 것이었던 거시다.

그러나 참 희한한 일은 한 번도 남편의 면허증을 구경한 적이 없거니와 운전대를 잡는 모습조차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출산 예정일을 약 한 달 정도 남긴 어느 날, 시댁에 일이 있어 시골을 내려가야 할 때에도 남편은 조수석을 고수했다. 만삭인 내 배가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벨트에 집게를 꽂아 주는 다정함은 기본이었지만 결코 운전석과는 적절한 거리두기를 잊지 않았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그러다 보니 가까운 거리는 물론이고 장거리를 갈 때도 운전석은 항상 내 차지였고, 아이들에게 엄마는 운전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돼 버린 듯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온 식구가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신호에 걸려 잠시 정차하고 있을 때였다. 옆 차선의 차량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들이 갑자기 혼비백산 기겁을 하며 5년 갓 넘긴 인생살이 중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인 듯 격양된 목소리로 목격담을 전해주었다.

“엄마! 엄마! 엄마! 옆에 차는 남자가 운전을 해! 남자도 운전을 할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아들아. 대게는 온 식구가 이동할 때 아빠들이 운전대를 잡는 것이 흔한 풍경이란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양성은 평등해졌단다. 누가 운전을 하든지, 자신 있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된단다. 그렇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전면허는 필수이니, 얘들아 너희들도 성인이 되면 꼭 운전면허는 따 두어라. 아빠는 왜 운전은 하지 않으시냐고? 글쎄다. 제발 여쭤보고 대답을 좀 들어 봤으면 좋겠구나. 있지도 않는 면허증을 왜 들먹였는지 나도 꽤나 궁금하단다. 있어 보이고 싶었으면 차라리 특수면허나 원동기 면허나 있다고 할 것이지 왜 1종 대형을 들먹여서 뿅-가게 만들었냐 말이다.”

들릴 듯 말 듯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는 남편의 구구절절한 변명과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제 와서 따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덤프트럭에 묘한 남성미를 느낀 변태 같은 나를 원망하기에도 이미 시간은 많이 흘러버렸다.

요즘 딸아이는 한껏 흥분된 상태이다. 8월이 지나가면 운전면허의 초보기간이 끝난단다.

강요하지 않았지만 딸아이는 성인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운전면허 취득에 박차를 가했고 1종 보통을 취득했다. 간간이 운전을 시키면서 요령을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딸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안전운전을 지향하고 있었다.

조수석을 애용하던 남편은 그 자리마저 나에게 떠넘기고 뒷자리 상석으로 물러났다.

딸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기분은 어떠할지 참 궁금하다.

이제 곧 초보기간을 졸업하는 딸아이에게 교통 신호를 준수할 것이며 보행자를 우선으로 여겨야 하며 규정 속도를 지키는 등의 잔소리보다 1종 대형 면허가 있다고 큰 소리 치는 남자를 특히 조심할 것이며 무슨 쯩(증證)이든 일단 까고 보라는 말부터 하고 싶은 건 왜일까.

지금 한창 연애중이거나 곧 연애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는 모든 청춘들이여, 무슨 쯩이 됐던 쯩이 있다고 큰 소리 치는 이성을 각별히 조심하게나.

특히, 실물을 확인할 수 없게 겸손을 앞세우는 쯩일수록 그 쯩은 일단 까고 봐야 할 일임을 명심하게나.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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