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문명이 만들어낸 최악의 야만
화려한 문명이 만들어낸 최악의 야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1.09.03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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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옥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옥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순백의 옥잠이 핀다. 옥으로 만든 비녀를 연상케 하는 이 꽃을 넋 놓고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숨이 컥 막히는 순간이 온다. 다른 색깔을 일 점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 순백의 그 무슨 결벽증 같은 이미지에 압도당했음이리라. 결벽증이 깊어지면 원리주의 내지 근본주의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일십일 세기 초현대 글로벌 사회에서 원리주의 내지 근본주의를 찾기로 하자면 아무래도 극단적인 종교, 중에서도 이슬람 문화권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그리고 아이에스 그룹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야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화가 잔뜩 나 있고, 같은 편이면서도 같은 편이기를 부정하며 이중 삼중의 복잡한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이른바 ‘미라클 작전’의 성공으로 사백 명 가까운 이슬람교도들이 새로 대한민국에 들어왔다. 그 중에 절반 가까이가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바는 매우 깊고 크다.

너무도 슬퍼져 버린 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기로 결정한 진천 주민들이 거리에 내건 아랍어 문자 현수막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지구상에서 가장 멋들어진 글자를 들기로 하자면 아마도 아랍어 문자를 건너뛰지는 못할 것이다.

연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오늘날의 아랍어 문자가 완성되기까지는 적어도 수백 년이 걸렸다. 그것은 의미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글자가 아니다. 심미안이 풍부한 작품이다. 고도의 집단 지성이 응축된 서예작품이다. 붓으로 한 자, 한 자,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각자 쓴 것을 서로 비교하며 토론하고 다시 쓰기를 되풀이해서 이것으로 하자, 하고 어렵게 결정을 보았을 그 시대 사람들의 흉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해도, 막연하나마 추론은 가능하다.

‘아랍인의 역사’를 쓴 중동 사학자 앨버트 후리니 교수에 따르면 이슬람교가 창시되기 훨씬 이전 시절 고대 아랍어 문화권에 이런 시가 유행했단다.

나는 삶의 무거운 짐에 지쳤다. 착각하지 말라. 누구든 80년 세월을 살아가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또한 어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운명이 어둠 속의 낙타처럼 발을 쿵쿵 구르는 것을 보았다. 운명은 자신과 마주친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운명을 피한 자들은 살아가지만, 점차 늙어간다.

연치 팔십에 이른 노시인의 견결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림 같기도 하고 서예작품 같기도 한 아랍어 문자는 아마도 이런 시인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조금씩 완성돼 갔을 것이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는, 이제 곧 죽게 되어 있다는 것을 명징하게 의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생의 무상함을 격렬하게 노래할 수 있었던 시인의 시대는 차라리 오늘날보다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어쩔 수 없다. 그 시절에도 종교는 있었겠지만 삶의 모든 부분을 간섭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는 협박을 신의 이름으로 남발하는 무도함은 없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아니 탈출해야만 하는, 탈출에 실패하면 살해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땅 아프가니스탄, 마오쩌둥 당시의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신학생 그룹 탈레반이 각종 무기를 들고 다니며 승리를 외치는, 승리를 외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돼버린 이 땅이 지구상에 존재함을 내가 처음 안 것은 아마 내 나이가 지금의 탈레반 청년들과 비슷한 시기의 어느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소설가 유현종씨의 작품 ‘천산북로’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일간지에 연재되는 소설이었다. 세상을 사는 이유가 오직 하나 그것인 것처럼 날마다 신문이 나오는 시간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었고,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낯선 땅 낯선 사람들의 특이한 생활패턴에 대해 아는 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천산북로’의 연재가 끝난 뒤에는 그 인기를 발판 삼아서 다시 ‘천산남로’가 연재되었다.

천산이란 힌두쿠시 산맥을 말함이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을 차곡차곡 포개놓은 것만큼이나 높은 산이고, 한라산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험준해서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도 어려운 바위산으로 소설은 묘사하고 있었다. 새들도 감히 넘어갈 엄두를 못 낸다고 하는 이 산을 사람들이 넘어갈 수는 당연히 없었지만, 산맥의 남쪽과 북쪽으로 낙타와 사람이 동시에 다닐 만한 정도의 길이 있었다. 실크로드로 알려져 있는 이 길이 처음부터 길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농사도 어렵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는 사막이나 산악지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양떼를 몰고 다니며 풀을 찾거나 장사를 하는 것뿐이었다. 장사도 자기 나라에서만 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웠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그들의 여정은 한 번 나섰다 하면 적어도 몇 개월이고, 길면 몇 년씩이나 걸리기도 하는 까닭에 얼핏 낭만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따져보기로 하자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은, 목숨을 허공에 걸어놓고 있어야만 하는 아슬아슬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맹독을 품은 전갈이나 뱀에 물려 죽은 사람은 그나마 동료들이 땅에 묻고 막대기라도 꽂아줄 수 있었다. 강도단의 습격을 받은 경우에는 속절없이 독수리의 먹이가 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상인들은 강도를 방어하고자 양떼들처럼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서 다녀야 했고, 간단한 무기 정도는 기본으로 휴대하고 있어야 했고, 상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무기사용 기술을 먼저 익혀야 했다.

하지만 강도가 누구인가. 그들은 무기 사용의 전문가들이었고, 언제 어디서 어디를 어떻게 치고 들어가면 대열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밤낮으로 연구하는 전략 전술의 달인들이었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인단 강도단의 눈에 띄었다 하면 상인들의 목숨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었다.

가족의 윤택한 미래를 약속하며 집을 나선 남자가 노상에서 죽어 독수리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 남은 가족들은 어찌될 것인가. 울어도 소용없고 뒹굴어도 소용이 없다. 전체 인구의 칠십 퍼센트 이상이 절대빈곤으로 허덕이는 세상이고 보니 구걸조차도 어렵다. 사람이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 다닐 정도의 용기를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진천거리의 아랍어현수막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진천거리의 아랍어현수막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도 그런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심지어 그는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보았다.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강도 살해를 당했고, 어머니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느라 모진 고생을 하다가 무함마드의 나이 여섯 살이 채 안 됐을 때 그만 운명하고 말았다. 이때의 처절한 삶의 체험은 아마 무함마드의 뼛속에까지 아로새겼을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를 받고 ‘꾸란’을 완성했을 때, 이슬람교를 창시해서 어지간히 세를 확보하게 되었을 때 무함마드는 남편이 있었으나 이제는 없게 돼버린 상태의 여인들을 가세가 넉넉한 남자들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의 아내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관행을 알라의 이름으로 확립했다. 그리고 또한 고아가 되었거나 가난한 집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서 먹이고 재우며 ‘꾸란’을 가르치는 일종의 기숙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으로 이름 붙여진 이 기숙학교의 학생들이 천이백 년쯤 뒤에 무시무시한 폭력집단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될 줄이야. 당시의 무함마드는 아마 상상도 해보지 못 했으리라.

얌전하게 가난한 신학생 그룹 탈레반을 맨 처음 거친 싸움닭으로 만들어놓은 집단은 스스로를 신사라고 여기는 영국이었다. 훗날 아편전쟁이라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영국 사람들은 그 당시 인도의 향신료와 중국의 비단에 미쳐 있었다. 그들에게 향신료와 비단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알라를 신으로 모시는 이슬람교도들이었다.

영국인들은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자기들이 직접 필요한 물품을 값싸게 구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무역업자들은 어느 쪽으로 가든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야만 했다. 이것을 간판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통째로 집어삼키면 되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피 끓는 젊은 학생들이 영국 신사들의 침략을 보고만 있을 까닭이 없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속담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섬나라 영국인들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 익숙하지 않았다. 치고 빠져서 계곡으로 달아나고, 또 치고 빠져서 험준한 산비탈로 숨어드는 탈레반의 게릴라 전술을 그들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하긴 알렉산더가 도전했다가 물러섰고, 징키스칸의 군대 또한 의기양양 들어왔다가 도망을 친 곳이었다. 섬나라 영국이 비록 현대식 무기를 갖추었다고는 해도 바위까지 뚫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국군이 물러간 뒤에는 엉뚱하게도 소비에트연방 공화국 군대가 교통의 요충지를 집어삼키겠다고 들어왔다. 십여 년의 지루한 전투 끝에 소련군을 몰아내고 한숨을 돌리고 있자니 이번에는 미국 군대가 초현대식 무기를 앞세우고 들어왔다. 명분은 그럴싸해서 미국의 금융 빌딩을 비행기로 치받은 오사마빈라덴을 잡는다는 것이었지만, 오사마가 죽은 뒤에도 미군은 나가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거치는 동안 탈레반은 아주 자연스럽게 싸움꾼이 되어 갔다. 예전에는 기숙학교를 나오면 각자 소양과 취향에 따른 직업을 선택해서 뿔뿔이 흩어졌지만, 싸우고 또 싸워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싸움 상대가 등장하고 보니 탈레반은 무기를 놓을 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나이 서른을 넘어도 탈레반이요, 마흔을 넘어도 탈레반, 쉰 살 예순 살을 넘어도 탈레반 딱지를 떼어낼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원한이 사무친 탈레반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협력한 자들은 반역자이고 따라서 처단의 대상일 수밖에 없으리라. 아버지의 적은 나의 적이고 내 친구의 적은 나의 적이며 적의 친구는 나의 적이라는 명제는 이슬람 율법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미군은 전 세계 도처에 주둔지를 두고 있으면서 물량공세를 펴는 것으로 유명했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이든 회전목마처럼 돈이 잘 돌았다. 돈으로 현지인을 고용해서 막사 손질이며 보일러 수리며 통역이며 등등 온갖 편익을 도모하는데 그런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켜 카투사라고 불렀다.

절대빈곤이 극심했던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도 카투사는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직군이었다. 누가 카투사에 들어갔다 하면 저거 양놈과 붙어먹는다 해서 은근히 경멸하고 비웃으면서도 내심으로는 부러워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도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과 그 우방국들은 자기들에게 협력하는 사람의 신원을 죄다 공개해놓고 있었다. 천 년이고 만 년이고 그 땅에 붙박여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랬던 미국이 느닷없이 그만 손 털고 나간다는 선언을 해 버렸다. 무책임도 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느냐고 나무라야 할 일이지만, 책임이나 묻고 있기에는 이미 벌어져버린 일의 예상되는 후과가 너무 크다. 미국의 철군 선언은 곧 사람의 핏물로 강물을 만들어도 좋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다.

탈출이 가능한 사람은 그나마 운이 좋다고,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린 오늘의 아프가니스탄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사람들의 전체 숫자는 실상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알카에다와 아이에스가 각각 수천 명씩이고, 탈레반이 가장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그래봐야 이만여 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그들의 수중에 떨어질 살상무기이다. 이 살상무기의 태반은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내부 교란용으로 공급했던 것이고, 나머지는 미군이 남기고 간 것들이다. 그 물량이 대략적인 추산만으로도 백조 원어치가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런 엄청난 살상무기를 각자 나름의 원한에 사무친 아이에스와 알카에다 그리고 탈레반이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된다면, 그 야만의 끝은 어디일까. 금세기 내에 그 끝이 보이기나 할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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