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시대의 간첩조작
군사독재시대의 간첩조작
  • 박석무
  • 승인 2021.09.14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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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박석무 ⓒ위클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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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석무] 어떤 사실이나 현상이 최악의 수준에 이르는 경우, 우리는 쉽게 ‘제악(諸惡)의 근원이다’라고 강도 높은 비난을 합니다. 우리 민족과 국가가 처한 현상에 ‘민족분단은 제악의 근원이다’라고 말한다면 틀린 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민족이 체제를 달리하며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보니, ‘분단’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가장 큰 비극은 분단장사를 하는 독재권력이 일으키는 간첩조작의 문제입니다. 부당한 정권유지를 위해 체제수호라고 위장된 명분을 내세워 수많은 조작 간첩을 양산하여, 그로 인한 개인과 한 가족을 파멸에 이르게 하여 하늘을 찌르는 억울함이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진 이유로, 50년 40년 전의 억울한 조작된 간첩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 보도를 보면서, 이것만이라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신시대 독재권력 아래서의 동백림간첩사건, 재일동포간첩단사건, 인혁당재건사건, 구미간첩단사건 등 그렇게도 많은 조작 간첩으로 목숨을 잃고 모진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이 얼마이던가요. 80년 이후 신군부 독재정권에 의해 멀쩡한 일반인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고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죽어가고 옥살이를 했던 경우는 얼마나 많았던가요.

물고문, 전기고문, 성고문 등 셀 수 없이 많은 수법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으로 억지 간첩으로 조작했던 것을 우리는 대부분 기억합니다. 야만적인 고문 때문에 허위진술로 범죄가 성립되어 죽임을 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고문’이라는 비인간적인 악행입니다. 『목민심서』 단옥(斷獄) 조항에는 다산 시절에 고문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말했습니다. “옥사는 체통이 극히 중대한 일이다. 검장(檢場)에서 공초를 받을 때에는 본래 고문을 가하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날 재판관은 법례에 통달하지 못해 고문을 남용하고 있으니 크게 잘못된 일이다.”라고 하여 수사와 재판에 고문은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엄하게 매질과 곤장질을 하고 몽둥이로 갈비뼈를 내리친다. 고통이 극심한데 누가 감히 참아 내겠는가.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허위를 얽어 사실로 만들어 억울한 옥사를 이루니 이것이 이른바 단련성옥(鍛鍊成獄;고문으로 옥사를 성립시킴) 이다. 나라의 법전에도 위배 될 뿐만 아니라 반드시 귀신의 화를 입을 것이니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다산은 고문 금지의 경고를 간절한 내용으로 말했습니다.

2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고문이라는 악행이 근절되지 않았다면 어찌 된 일일까요. 근래에는 조작된 간첩이 나왔다는 보도는 없으니, 다행한 일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단 장사를 위해 가짜간첩을 만들어낸 사례가 있었고, 옛날 가짜간첩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로 확정되는 사례들이 속속 보도되면서, 그 끔찍한 시절의 비극을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죄를 받고 누명을 벗어났음을 다행으로 여기는 가짜간첩피해자들의 소감을 밝히는 기사에서, “교실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이유 없이 끌려가서 지하실에 들어가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 무조건 실컷 두들겨 패고는, 실신 상태에 이르면, 첫마디 질문이 김일성 몇 번 만났느냐, 평양에 몇 번 갔다 왔느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라는 내용을 읽으면 가짜간첩 만드는 유치한 수법을 그냥 알게 됩니다. 유신 시절 저도 그런 고문을 당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가짜간첩피해자들의 재심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이제, 법원은 그런 재판에도 관심을 기울여 억울하게 당한 그분들이 쉽게 무죄를 받아 억울함을 풀게 해주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이기 기대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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