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검사 출신 국회의원 곽상도는 남의 자식 뒤를 캐고 다니는 쪽으로 특화된 정치인이다. 사람의 뒤를 캐고 다니는 음험한 짓은 흥신소나 하는 것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그는 그런 쪽으로 자신의 국회의원 직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물론 자식은 있다.

일단 수면 위로 떠오른 국회의원 곽상도의 자식은 아들이고, 나이는 서른한 살로 돼 있다. 듣기만 해도 팔팔한 생기가 전해 오는 것만 같은 나이 서른한 살, 그 젊으나 젊은 남성의 이력을 살피다 보니 문득, 불현 듯 중국의 천재소년 왕필이 생각난다.

왕필은 약관 십팔 세의 나이에 노자의 도덕경을 이해하기 쉽게 해제해서 세상을 경천동지하게 만들었다. 평생을 바쳐 공부해도 도달하기 어렵다는 노자의 철학을 열여덟 살 청춘이 ‘이것은 이것이다’하고 정리해 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필은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확실하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노자 철학 못지않게 난해하기로 유명한 주역 또한 일목요연하게 풀어내 버렸다. 이후 왕필은 당대 사회의 내로라하는 석학들과 함께 중국의 형이상학을 완성해 나가다가 이십대 초반 나이에 요절했다.

국회의원 곽상도의 아들은 주역의 최상위 궤인 ‘화천대유’라는 아주 작은 회사에서 육 년인가 칠 년을 근무하고 퇴직금 플러스 위로금 명목으로 오십억 원을 받았다는데 역산해 보면 그의 나이 이십대 초반에 입사했다는 얘기가 된다. 병역의 의무가 엄연한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남성이라면 이십대 초반에 한참 군복무를 하고 있는 중이거나, 군복무를 마치고 이제 막 복학을 했거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나이에 곽상도의 아들은 군필을 마치고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까지도 마치고 부동산개발 회사를 다녔다.

이 대목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국회의원 곽상도의 재산은 은행에 묻어둔 예금만 이십억 원이 넘는 걸로 돼 있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아들이 그 팔팔한 나이에 굳이 작은 회사를 직장으로 선택했던 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혹시 세상 경험을 쌓을 목적의 아르바이트 개념이었던 것일까?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직금 플러스 위로금을 받는 경우도 이 땅에 있는가? 그것도 오십억씩이나?

못난 생각으로는 의문표가 너무 많아서 어리둥절하지만, 눈 딱 감고 생각을 좀 더 대범하게 확장시켜 보기로 하자면 답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에 검사 출신 국회의원 곽상도의 아들이 천재소년 왕필에 버금가는 천재라면?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 재테크의 신기원을 열어젖힐 만한 정도의 천재라면 그 나이에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도 있긴 있었을 것이다. 곽상도의 아들 자신도 자기가 천재임을 주장하는 요지의 발언을 하고 다녔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국회의원 곽상도의 아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성남시 대장동 개발부지 내에서 문화재와 멸종위기 동식물이 발견됐었던 모양이다. 대한민국 법률에 따르면 문화재나 멸종위기 동식물이 발견되면 개발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관계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관계당국의 면밀한 검토와 분석이 끝날 때까지 개발은 보류되거나 최악의 경우 정지될 수도 있다. 개발자 측에서 보자면 손해도 그런 엄청난 손해가 없다. 그런데 곽상도의 아들이 천재적인 지혜를 발휘해서 예견되는 손해를 막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오십억 원의 퇴직금 플러스 위로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기성언론들은 문화재나 멸종위기 동식물에 관해서는 아직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아들 자신도 가볍게 넘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도시가 싫어서 시골살림을 시작한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이 문제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하긴 기운이 생동하는 청년의 눈으로 보자면 문화재나 멸종위기 동식물 따위 하나도 중요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천재적인 아들은 예견되는 손해를 어떻게 해서 막았을까. 발견된 문화재와 멸종위기 동식물들을 아무도 모르게 땅속 깊이 파묻는 무지막지한 행위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한밤중에 몰래 통째로 헬기 같은 것으로 실어다가 저 멀리 남태평양 어딘가에 수장해 버렸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혹시,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했을 정도로 수완이 좋은 아버지의 법기술이 작동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아들이 받은 오십억은 퇴직금 플러스 위로금이 아니고, ‘화천대유’ 대표가 나중에 주장하고 나선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은 더더욱 아닌, 일언이폐지하고 아들의 주머니를 빌리는 방식의 사후뇌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영원히 묻혔을 이 문제는 짐작컨대 이제 겨우 첫 걸음을 떼었다. 관계자들의 면면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상상조차 해보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단한 판도라의 상자를 흔들어대기 시작한 게 국회의원 곽상도가 소속된 정당과 그 주변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화천대유’가 누구 거냐고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 입을 어떻게 다물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니, 지구는 역시 둥글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일찍이 어떤 사람은 말했다. 크던 작던 선거가 임박하면 관계자들은 일종의 정신착란증을 겪게 된다고, 그래서 앞뒤좌우 분간을 못 하고 헤매다가 자기 도끼로 자기 발등을 콱 찍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못난 함정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남의 자식 뒤나 캐고 다니는 짓을 정치활동이라 주장하며 국민 세금을 열심히 축내온 자에게서 그런 큰 그릇을 기대하기는 어차피 어렵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인들의 정신착란이 심하면 심할수록 좋다. 우선 보는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듣는 귀가 토끼처럼 쫑긋해져서 온갖 상상에 추리를 해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거짓말 기술이 날로 달로 진화하고 있어서 유권자들의 혼란이 심화된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유권자의 추리력 향상과 지적 능력의 심화로 이어지는 것이니 뭐 그리 나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면 인류가 창안한 제도와 문화 가운데 사람을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무쌍하게 만들어놓는 것을 추리기로 하자면 직접선거로 상징되는 민주주의를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커다란 체육관에 삼만 명쯤의 사람을 모아놓고 대통령을 선출하게 하는 간접선거 혹은 가짜 민주주의에서는 죽었다가 깨난다 해도 누릴 수 없는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등등 오만 가지 맛이 진짜 민주주의에는 녹아들어 있다.

무엇보다 직접선거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과의 돈독한 친교가 하루아침에 맺어지기도 하고, 피를 나눈 형제자매와 이웃사촌이 하루아침에 철천지원수처럼 갈라서서 눈을 부라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딸 하나에 아들이 다섯, 우리 육남매는 기록할 만한 싸움 한 번 없이 잘 지내 왔었다. 친형제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다리 건너 사촌들과도 마음 상하는 분쟁 한 번 없었고, 두 다리 건너 육촌들과도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다툼은 없었다. 네 마음을 내가 알고, 내 마음을 네가 아는 이른바 이심전심이 제대로 잘 작동해서 싸움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훌륭한 우리 형제자매의 지혜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이란 이름 석 자가 떠오르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그 이전에도 추석이나 설 명절 밥상에 정치가 소재로 올라서 큰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언제나 그날 그 시간뿐이었다. 정치란 사실 그런 것이기도 했다. 내 자신이 정치에 몸담고 있지 않는 한 아무리 험악한 고성이 오갔어도 그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이 잊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의 경우는 달랐다. 근본적인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고나 할까. 복기해 보면 2021년 지금의 상황과 유사한 어떤 흐름이 그때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제시한 수많은 개혁 과제들이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해 버렸다. 특히 민감한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는 것 같다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정의는 개뿔이나 무슨, 적당히 어떻게 돈이나 벌고 말지, 하는 패배의식이랄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나 할까, 하여튼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호명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 해의 추석날 아침 우리 집 밥상 앞에서 일대 격론이 벌어졌다. 모든 형제들이 논쟁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제일 맏이인 나와 남동생 하나가 논쟁을 벌였고, 반수 이상의 형제들은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사실 나의 패배가 예정된 논쟁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형제간 논쟁도 나이 차가 한둘 살 정도일 때 가능한 것이지 십 년 이상 나이 차가 나면 형이 동생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슬그머니 빠져나갈 틈을 찾기 마련이었다.

동생이 이명박을 적극 지지하며 큰형한테 삿대질까지 해댄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이명박의 출신성분이 서민에 가깝다는 것, 서민 출신으로 국내의 최대 기업 현대에서 사장을 지냈고, 그 이력을 인정받아서 대통령 후보까지 됐다는 것, 이런 사람이 실제로 대통령을 하게 된다면 우리처럼 출신성분이 보잘 것 없고 가난을 직업처럼 살아온 사람들도 미구에 부자가 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거였다.

내가 듣기에 동생의 그런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어도 한참 없는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십대 후반 나이에 일당 이천사백 원짜리 건설현장 잡역부 노릇을 하면서 이명박을 직접 목도한 바도 있었다. 사장 자격으로 현장에 나타난 그가 어느 하루 화가 잔뜩 나서 현장 소장 이하 직원들을 공터에 모아놓고 차례차례 정강이를 뾰족한 구둣발로 힘껏 걷어차는 모습은, 그것은 정말이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구둣발에 정강이를 걷어차인 사람이 그대로 서 있는 경우는 당연히 거의 없었다. 모두가 픽픽 쓰러졌고, 걷어차인 정강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뒹굴었다. 그러다가 깜짝 정신이 돌아와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명박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그는 지휘봉으로 눈물이 글썽글썽한 남자들의 가슴팍을 쿡쿡 찔러가며 “기분 나쁘냐? 나쁘면 당장 그만둬 인마”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의 인성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으냐? 인성이 엉망진창인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으냐. 나는 동생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러자 동생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사람이 사람의 정강이 몇 번 걷어찬 게 뭐 그리 큰 사건이냐. 중요한 건 나도 이명박처럼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런 논리로 나를 공격하는 동생이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다시는 동생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는 일 년이 넘도록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세월은 약이었다.

이 년이 채 안 돼서부터 이명박에게 대통령 직위란 개인적인 수익창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중소기업을 다니던 내 동생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동생과 나의 관계는 예전처럼 화기애애해져 갔다. 그리고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의 불문율이 생겼다. 이명박이란 이름 석 자는 가능한 한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그래서인지 이번 추석 우리 집 밥상 앞에서는 특정 정치인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관련 얘기를 진지하게 꺼내는 사람도 없었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 동생이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되면 자기도 부자가 될 거라는 그때의 희망처럼 정말로 부자가 됐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자기 생각이 맞았다고, 형 보기를 바보 같이 하며 큰소리 땅땅 치고 있을까? 아하, 이런 질문에는 그저 실소나 터뜨리는 것밖에는 답이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국회의원 곽상도는 저 유명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해낸 검사 중에 한 사람으로 오래 전에 이미 정리가 돼 있다. 아들의 오십억 원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그는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 시대를 소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되면 아들의 오십억 원 건도 홍수 끝난 뒤의 시냇물처럼 잔잔해질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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