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
청소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10.07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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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일러스트=정다은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친구와 저녁을 먹고 밤늦게 집에 들어오니 남편이 툴툴 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 세 마리와 진돗개 한 마리가 있는데 한 마디로 개판 5분 전이다. 아무리 치워도 깨끗해지긴 글렀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나는 허튼 짓에 용쓰며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옷도 갈아입기 전에 청소기부터 돌리는 사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집에서 나와 대학 기숙사에서 살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도 자기 스스로 빨래와 방 정리를 하면서 살았으니 어찌 보면 청소와 집 정리가 습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내 방 하나도 내 손으로 치워본 적 없는, 순전히 엄마의 노동력으로 삶을 영위한 철없는 딸이었다. 거기다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가 생겨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고 정신 좀 차릴만하니 둘째가 들어서 또 다시 애를 키우느라 하루에 한번 세수하기도 벅찬 생활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먹이고 씻기고 가르치느라 또 눈코 뜰 새가 없었고 그 와중에 돈까지 벌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는 일은 나에게 벅찬 노동이었다. 하루 종일 밖에 있다가 들어온 사람 눈에는 집안이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질러져 있는 게 못 마땅할 수도 있을 테고 물 먹은 솜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내 모습이 게으른 여자의 전형처럼 보이기도 했겠지만, 내 딴에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청소에 새로운 재미를 붙일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남편은 필사적으로 고양이털을 찍찍이 테이프로 떼어내고 진돗개가 잘근잘근 씹어놓은 것들을 쓸어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표정을 보니 집안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개와 고양이보다 나에 대한 불만과 원망으로 화가 나 있는 듯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모른 척하고 방에 들어와 버렸다.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나도 처음엔 나름 집을 좀 치워보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또다시 세 마리로 늘어나고 개가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많게는 세 마리까지 늘어났다가 다시 두 마리가 되는 동안 나는 집안 치우기를 포기해 버렸다. 치워봤자 표도 나지 않는 일에 내 하루를 다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권리가 나에겐 있다. ‘더럽게 살 자유’ ‘고양이털을 묻히고 다닐 권리’ ‘개가 물어뜯은 것들을 나 또한 발로 툭 차버리고 돌아다닐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남편이 스스로 원한다면 집을 깨끗하게 치워 쾌적함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아내인 나에게 그 어떤 의무도 강요하거나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 된다. 집을 개판으로 만드는 장본인 즉, 개와 고양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개선해나갈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든지 말든지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집안이 더럽다고 해서 나에게 툴툴거리면 안 된다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잔소리’다. 얼굴에 대놓고 소리를 지르거나 삿대질을 하는 거 보다 더 싫은 게 궁시렁 거리는 잔소리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같이 산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하루 24시간, 잠자는 시간만 빼고 잔소리를 하셨다. 큰언니는 첫 손녀라 그런지 애지중지 하셨고 오빠는 아들로 태어나 준 게 고맙고 공부까지 잘하니 나무랄 데가 없다며 귀하게 여기셨다. 내 위에 작은 언니는 어려서부터 할머니 젖을 만지고 자랐으니 미운 짓을 해도 그냥 넘어가 주는 편이었다. 언제나 할머니 잔소리의 타깃이 되는 건 나였는데 이유가 더 기가 막혔다.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것. 그게 내가 할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이왕에 태어날 거 고추 하나 달고 태어났으면 좀 좋아.”

“쟤는 누구 닮아 고집이 저렇게 센지 몰라. 사내도 아닌 것이.”

거기다 나를 낳은 엄마도 나 못지않게 할머니 잔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그 이유 또한 기가 막혔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에 사는 엄마 친구가 집에 놀러왔다가 농담처럼 날 데려가 키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변호사하고 결혼해 미국에서 떵떵 거리며 살고 있던 엄마 친구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다 가진 사람이었지만 딱 하나,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입양을 하러 한국에 들어왔다가 우리 집에 놀러와 나를 본 거였다. 그때 외할머니가 자식 없으면 우리 막내 손녀딸 데려다 키우라는 농담(아니 진담) 비슷한 말을 하셨고 그 말에 엄마 친구는 반색을 하며, 누구보다 예쁘게 잘 키울 수 있으니 혹시라도 그럴 마음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는 거다. 물론, 엄마는 나를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아빠가 알면 집안이 뒤집어질 일이었다. 아빠는 자식 중에 막내딸인 나를 제일 예뻐했으니까. 하지만 할머니 생각은 달랐다. 아들이 아닐 바에야 딸자식 죽어라 키워봤자 별 소용없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으니.

아무튼,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어마무시하게 부자인 엄마 친구에게 입양 되지 못했고 그 탓에 엄마와 나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질리도록 들으며 살았다. 오죽하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시며 “할미가 정말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셨을까.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잔소리’다.

그럼 다시 청소 이야기로 돌아와서. 개 두 마리, 고양이 세 마리가 판을 치고 어질러대는 집을 내가 아무리 열심히 치워본들 표도 안 나는데 뭐 하러 죽어라 쓸고 닦겠냐 말이다. 청소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 째려보고 툴툴거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사람은 각자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갈고 닦으며 살면 된다. 내 주특기는 요리와 책보기이며 정리정돈과 청소에는 애당초 소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노력하며 살고 있음을 기특하게 여기고 잔소리는 절대 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자면.

찔리라고 하는 말이지만 당신도 돈 버는 데 소질 없잖아. 그러니까 ‘각자 소질 없는 건 포기하고 살자’ 이 말이다. 죽을 때 까지 남의 탓이나 하면서 불평불만 속에서 살다 가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남이 못 하는 거 내가 대신 해주고 내가 못 하는 거 남이 대신 해주면서 사는 게 진정한 상생이다. 세상에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 자신이고 둘은 내 자신이며 셋은 바로 내 자신이다. 결국 내가 바뀌어야 남들도, 세상도, 행복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는 거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그건 자유지만 남에게 그걸 강요할 때 그건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결론은…

청소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된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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