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라스트 데이즈(The Last Days, 2013)’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루었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태양은 지구의 생물에게 있어 기본 생존 조건이다. 태양을 통해 광합성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식물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살아가기 어렵다. 물론 인간은 당분간 태양 없이도 힘겹지만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식물과 초식동물, 육식동물, 인간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는 파괴될 것이고 인간의 생존 또한 위태로운 상태가 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모든 생명체의 멸종이 올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태양이 바이러스의 원인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2013년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라스트 데이즈(The Last Days, 2013)에서는 햇빛에 노출되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 기가 막힌 상황을 그려낸다.
 

햇빛 바이러스? 태양에 노출되면 피를 흘리며 죽는다

한 남자가 건물 밖으로 육중한 유리문을 밀고 광장으로 나온다. 그는 몇 발자국을 걷지도 못한 체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힘없이 퍼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로 또한 아수라장이다. 차들은 온통 뒤엉켜 추돌사고를 일으켰고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한 체 속절없이 죽어갔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들, 산책하던 사람들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바이러스의 정체는 화산 폭발 때문에 생긴 미지의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햇빛에 노출되면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람을 죽게 만든다. 데이비드 파스토르, 알렉스 파스토르 두 감독이 만들어낸 바이러스 영화 ‘라스트 데이즈(The Last Days, 2013)’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태양’을 바이러스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신박한 상상력이다. ‘햇빛 바이러스’라니? 식물의 생장에 있어 절대적인 생존 조건인 햇빛. 하지만 인간이 그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사람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사람들은 앞을 다퉈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와 건물로 숨어 들어간다. 여기에는 주인공 마크(쿠임 구티에레즈 분)도 있다. 그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하수도를 통해 지상세계로 나가려 한다. 그는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지하도를 탈출해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와 강제로 동행하게 된 회사 직원 엔리케. 그는 방향을 알 수 있는 GPS를 소지하고 있다. 엔리케 또한 아버지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만 한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선다. 이들의 앞에는 햇빛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적이 있다. 바로 ‘인간’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갈등구조에 직면하게 된다. 지상세계의 법과 제도가 무력화되기 시작하자 지하 공간에서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진다. 힘 있는 자가 왕이다. 동물의 세계와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서로 자신이 살기 위해 이웃의 물건을 빼앗고 살육이 자행된다. 이러한 전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해 각 국가의 기존 행정 및 의료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지상 세계의 군대와 경찰 등 법과 질서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인간은 언제라도 국가 설립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유리창을 깨서 상점에 무단침입한 후 물건을 약탈하고 화염병을 던지며 제도권에 폭력 시위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살육 파티는 바이러스라는 촉매제를 던져주고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려 하는 듯하다.
 

위드 코로나? 위드 바이러스의 시대에 직면하다

하지만 결국 감독이 선택한 메시지는 희망이다. 마크는 산부인과에 있는 아내를 만나고 무사히 그들의 아이도 출산한다. 마크는 결국 아내가 있는 반대편 건물까지 도달한다. 그 건물은 산부인과였다. 마크는 아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마크는 유리문을 박차고 햇빛 가운데 광장으로 나선다. 광장만 가로지르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는 바이러스 감염을 무릅쓰고 광장을 가로질러 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어렵다. 그는 바이러스로 인해 쓰러져 코피를 흘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반대편 건물에 다다른다. 그리고 아내와 재회. 아이도 무사히 출산한다.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일 최대치인 3000명이 넘었다. 현실 속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코로나 19를 영원히 종식시킬 수 없으니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도 백신 접종률이 70%가 완료되는 9월 말~10월 경 이 정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영국과 미국, 독일 등 접종 완료율이 60%가 넘은 국가들은 ‘위드 코로나’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치명률이 최초 발생 시기보다 줄어들었고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확산세는 몇 배나 커진 까닭에 지금과 같은 격리와 봉쇄 중심의 바이러스 억제 정책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비단 코로나 19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치명률이 낮아졌다면 중증감염자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체계 재편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들과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의료 시스템을 필요로 하고 있다. 경증이나 무증상이 많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의료 재원을 소모하다 다른 병증의 환자들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더 큰 의료 붕괴가 올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위드 코로나를 실시하기는 어렵다. 백신 접종이 70% 이상 완료되는 시점에 또 하나의 대안으로 위드 코로나 정책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계와 과학계에서는 코로나 19가 풍토병으로 안착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19가 위드 코로나로 존재하게 된 후에 또 다른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온다. 한때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던 사스 바이러스, 메르스 바이러스는 완벽히 퇴치되지 않았다. 코로나 19 역시 완벽히 종식되지 않고 우리에게 ‘위드’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찾아올 것이다. 아마도 또 다른 바이러스가 인간을 숙주로 삼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코로나 19만으로도 힘겨운데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다행히 영화는 아이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재난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생명은 잉태되고 아이들은 태어난다. 생명의 탄생은 이처럼 경이롭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더 큰 희망을 선물한다. 미지의 바이러스 사태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바이러스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은 그렇게 살고자 했던 인류가 꿈꾸던 미래였다. 그리고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과의 인류와는 다른 또 다른 인류의 시작을 나타내는 ‘신인류’ 일지도 모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다. 앞으로 세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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