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와인이야기-4]

ⓒ위클리서울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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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박재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와인을 이야기할 때 왜 사람에 비유할까?’ 무슨 말인가 하면, 주변의 손에 잡히는 아무 와인책이나 한번 펴보자. 그리고 이런 표현들을 찾아보자. ‘와인이 영 (young)하다', '어린 와인', '에이지드 와인 (aged wine)'. 쉽게 찾을 수 있는표현들이고 그만큼 자주,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왜 그럴까? 혹시 와인도 우리처럼 나이를 먹는 걸까? 

간단히 말해서 그렇다. 서양의 술이다 보니 서양의 표현을 빌려서 사용하는데, ‘에이징 와인 (aging wine)', '와인 에이징(wine aging)’이라고 흔히 표현한다. ‘Age (나이)' + 'ing (진행형)’, 직역하면 ‘나이가 들고 있는 중’인데, 알코올 음료인 와인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이가 들기까지 기다려서 마셔야 더 맛이 있다는 말일까?

와인은 대개 포도껍질과 포도즙을 사용해서 만든다. 여기에 단맛, 신맛, 쓴맛, 향미가 다 들어있다. 당분에서 알코올도 만들어진다. 혹시 기회가 닿아 갓 만들어진 (이제 막 알코올 발효가 끝난) 와인을 마셔보면 알게 된다. 뭔가 엉성하고 시큼 털털하고 마구 뒤섞인 느낌이다.

더 맛있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때 시간의 힘을 빌린다. 와인마다 제 각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단맛, 신맛, 쓴맛,일차적인 과일 향이 정제되고 세련되게 발전한다. 더 다양한 맛이 난다. 이 때문에 와인을 숙성시킨다. 

고기에 비유해보자. 같은 쇠고기라도 도축 후 사후경직이 풀린 쇠고기가 더 부드럽고 맛이 있다. 더 맛있는 쇠고기를 먹고 싶은 우리는 ‘드라이 에이징’이나 ‘웨트 에이징’과 같은 에이징 (aging) 방법을 고안해낸다.

일반적으로 같은 와인의 경우 시간이라는 비용이 더 들어간 나이 든 (aged) 와인이 더 비싸게 팔린다. 필자의 경우 해외의 와인 양조장 또는 중개상에게 와인을 사오는데, 어떤 와인들은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더 오래 숙성된 와인의 가격이 더 높다.

여기서 생기는 자연스런 궁금증. 그럼 모든 와인들은 오래되면 더 맛있나요?

간단히 말해서 그렇지 않다. 우선, 무수히 많은 와인 중에서 숙성하면 더 맛이 깊어지는 와인보다 그렇지 않은 와인이 훨씬 더 많다. 대개는 시장에 출시된 후 2-3 년 이내에 마시면 더 맛있는 와인들이다.

복합적이고 깊은 맛 보다는 화사하고 밝은 느낌으로 마시면 좋은 와인들이다. 다시 한번 고기에 비유하자면 우리가 드라이 에이징해서 더 맛있게 먹는 부위가 주로 채끝이나 등심, 안심 같은 부위인 것처럼 숙성해서 더 맛있는 와인이 따로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세상의 그 어떤 와인도 영원히 그 맛을 유지하지 않는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레드 와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어떤 시점에서 좋았던 맛을 잃게 된다. 풍성하고 농밀했던 향은 희미해지고 맛은 흐릿해진다. 직업적으로 와인을 평가하는 와인 전문가들은 와인이 최고의 맛을 보이다가 하향세를 그리는 이 과정을 ‘시음적기’라고 표현한다.

와인마다 이 시음적기는 다를 수 있다. 사전에 오해를 방지하자면, 그 아무리 유명한 와인 평론가의 시음적기라 하더라도 결국은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추측일 뿐 결코 과학은 아니다.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개인차가 다분히 존재한다.

집안을 한번 둘러보자. 너무 시간이 흘러서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와인 선물 세트가 있진 않은 지. 혹시 여태껏 ‘와인은 오래 묵히면 좋다더라’라는 말만 믿고 고이 모셔두었다면, 아마도 지금이 그 와인의 시음적기 일수 있다. 아니면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 수도.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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