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뭄바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참아내는 기억

누구에게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잊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잊히지 않는 기억이나, 잊고 싶지 않아서 꽉 붙들고 있는 기억 같은 것들. 좋든 싫든 간에 한참 동안 남아 마음속에 맴도는 기억들. 때로 인간이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추억들은 누구에게나 삶의 좋은 연료가 된다. 그중 하나는 바로 여행의 기억. 일상에 비하면 여행의 시간은 짧지만 또 그만큼 강렬하게 남아 하루와 내일을 굴리는 작은 힘이 된다. 너무 흔한 이야기인가. 실은 영화관에서 홀로 외롭게 소변을 참다가 내 기억의 목록을 뒤적이게 되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순간의 목록들.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순간들 중 하나에는 분명히, 내가 온갖 힘을 담아 화장실을 참았던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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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나 슬픔의 기억이 아니라 화장실을 참았던 기억이라니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화장실을 참아야 했던 순간들은 하나하나 너무나 선명하다. 상황 상 억지로 참아야 했던 적도 있고, 좋아하는 영화의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적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서 필사의 힘을 다했던 순간도 있다. 대개는 늘 중요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화장실을 참아야 했던 순간만을 추린다면 분명 그의 삶에서 중요한 상황들을 건져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필사의 기억은 쉽게 잊히기 힘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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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여행과 화장실이 겹치는 순간은 기억의 관점에서 충분히 극적이다. 내 요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은 바로, 내가 슬리핑버스를 타고 뭄바이에 막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주로 10시간을 넘게 밤낮에 걸쳐 운행하는 슬리핑버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그 긴 시간 동안 버스에 타면 화장실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었다. 역시 별 다른 획기적인 방법은 없고 휴게소에 정차하면 해결하거나, 간혹 버스 안에 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이 있었지만 상태는 처참했다. 그저 버스에 오르기 전 적당히 해결하고, 적절한 휴게소에서 적절한 용변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은근한 긴장감 때문인지 의외로 우려스러운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뭄바이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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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에 도착하기 3시간 전쯤 슬리핑 버스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가벼운 요의를 느꼈다. 그다지 버겁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방심 속에서 버스는 휴게소에 한 번 멈추지를 않고 뭄바이에 곧장 진입할 요량이었고, 나는 조금씩 나를 참아내야 했다. 다급하게 버스를 세울 수도 있었겠지만 거의 차가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였고 다와 갈 즈음엔 너무나 북적이는 도심이었다. 인파 속에서 오줌을 지리는 상상은 끔찍했다. 마침내 내렸을 때 나는 10차선 도로 위에 10kg의 짐을 메고 서있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사이로 간이 가판대가 보였고, 도무지 화장실이 없을 것 같았고, 결국 가판대에서 제일 싼 음료를 시키고 화장실을 물어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나를 기다리는 것은 바닥이 온통 젖어있는 미로 뿐. 이게 화장실은 아니겠지 하며 사색으로 미로를 돌다가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멀리 보이는 화장실 비슷한 건물. 인도의 이 유명한 대도시의 첫인상은 그렇게 기억된다. 황토색으로 빛나는 건물들, 붐비는 사람들, 교통안내판처럼 노란색과 검은색 번갈아 칠해진 릭샤, 그리고 필사적인 참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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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의 도시

뭄바이는 어쩌면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일지도 모르겠다. 영국 점령기에는 ‘봄베이’라고 불렸던 이 도시는 현재 인도의 수도 델리만큼이나 유명하다. 델리의 다음을 잇는 인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국 점령기 시절에 세워진 많은 영국식 건축물들도 유명세다. 거대한 인도의 중간 쯤에 위치한 상징적인 대도시라고 할까. 인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을 때에도 분명히 뭄바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 인도 어디를 가도 뭄바이 혹은 봄베이라고 적힌 가게나 숙소들이 있었고, 다른 도시에 있는 ‘봄베이 호스텔’에서 묵으며, 이왕이면 직접 뭄바이를 겪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해온 참이었다.

내게 뭄바이는 무언가를 참아내야 하는 도시였다. 이 큰 대도시는 사실 서쪽으로 살짝 튀어나온 작은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가장 아래쪽이 가장 부유한 도심, 그곳에서 벗어날수록 주거지나 교외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아래쪽의 중심부는 숙소값이 유독 비쌌으므로 나는 도심에서 적당히 먼 거리의 숙소를 잡았다. 내가 이곳에서 우선 버텨내야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뭄바이는 내가 다녔던 어느 도시들보다 붐볐다. 인구 밀도가 유달리 높게 느껴졌다. 다른 대도시의 느낌이 사람들의 숲을 헤치고 다니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수많은 이들에 쓸려 이동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어디론가 향하고 돌아오는 거대한 인파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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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마도 ‘기차’의 기억 때문인지도. 이 도시의 수많은 시민들은 집값이 저렴한 교외에서 붐비는 도심으로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한다. 기차의 노선은 간단하다. 북쪽과 남쪽을 오간다. 마치 상하가 확실한 관계처럼. 사람들을 태우고 도심으로 나아간 기차는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돌아 온다. 도심으로 가기 위해 나도 그 기차 대열에 합류해야 했다. 말이 기차지, 사실상 전철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전철은 문을 그대로 다 열고 다녔다. 실은 아예 문이 없었다. 그때는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많은 사람들 틈에 문이 있다면, 그야말로 전부 압사당했을 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에 사람들은 기차에 말 그대로 매달려 갔다. 배차 간격을 늘리면 되지 않나 싶지만 분명 우리는 모를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인파를 뚫고 내리지 못해 세 정거장이나 더 가야했고, 몇 시간 걸어 돌아왔다는 것에 남모를 사정 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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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이 유동하는 인파들, 그 속에서 도심과 교외를 지나며 만난 이 도시는 그야말로 특이한 ‘격차’를 지니고 있었다. 비대칭적이라고도 할 만한 어떤 위계를. 람보르기니와 진짜 황소가 옆에 서있는 광경을 길거리에서 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뭄바이에서는 충분히 가능했다. 남쪽과 북쪽을 나누는 도심과 그 바깥의 영역, 슈퍼카와 명품샵들과 그 옆을 지나는 헐벗은 노점상. 남쪽의 세련된 거리들, 영국이 지어놓고 떠난 화려한 건물들과 다 쓰러져 가는 건물들. 멀끔한 멀티플렉스와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찬 전철역. 한때 불가촉천민으로 사람들의 빨래를 도맡아서 했던 ‘도비가트’의 사람들. 신분제도가 명목상으로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대를 이어 빨래를 하고 있다. 한 곳에 모여서. 그들의 집과 빨래터 위로 선 고층의 건물들.

관광객들은 도비 가트 위에 설치된 전망대 같은 곳에 서서 그들의 삶을 내려다본다. 시선이 익숙한지 가트의 사람들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물 사이를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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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 가트를 지나 더 남쪽으로 향했을 때, 해안가 근처에는 꽤 부촌으로 보이는 단독주택들이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따라 그곳에 찾아갔을 때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행사 복장으로 차려 입은 악단들이 연주하고, 친지들의 환호로 가득 차 있는 상류층의 결혼식. 그들을 따라 나도 해안가를 따라갔다. 악기 소리에 발맞춰, 마치 풍속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 함께 담겨 있는 듯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 뒤로 아름다운 음악이 계속 되었다. 모두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무리의 끝에는 뭐라도 얻을까 따라온 부랑자들이 있었고, 행진은 부두에 세워진 인디아 게이트에 다다를 때쯤 멈췄다.

영국인들이 배를 타고 해안가로 들어오는 장면. 그들은 인도 서안에 이 거대한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이 인도의 입구이자 출구라는 듯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멈췄고, 햇빛은 인파를 강렬하게 비춰냈다. 입구와 출구가 같다면, 그렇게 생긴 공간은 입김을 불면 풍선처럼 불어날 텐데. 너무나 많은 차이와 위계를 껴안고 뭄바이는 계속계속 부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역사와 시간과 사람들을 다 품은 채 무엇인가를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햇빛에 살갗이 따가웠다. 그때 소변이 마렵지는 않았는데, 왜인지 나는 그때 나도 모를 무엇인가를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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