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꿈치의 서늘함을 느끼지 못하는 예민함이란...
뒤꿈치의 서늘함을 느끼지 못하는 예민함이란...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2.02.23 0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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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남편의 성격은 예민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예민하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잘 몰랐다. 다들 그렇겠지만 연애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의 콩깍지 하나씩 덮어 쓰는 시기인지라, 그의 밑도 끝도 없는 예민함 따위는 본인도 주장하지 않았을 테고 나도 느끼지 못하였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뒤덮이기 시작한 콩깍지는 어수룩한 성격을 매력으로 둔갑시켰고 행여 단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들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등지에서 수 십 년간 도를 닦은 도인마냥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마는 능력과 아량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기도 하였다. 남편의 근거 없는 예민함은 결혼을 하고 나서야 하나 둘 씩 발견되기 시작하였는데 아니, 본인이 주장하기 시작하였는데 예를 들면 이러하다.

남편은 향이 강한 식재료에 매우 예민한 편이어서 새우볶음이나 부추김치, 깻잎김치와 같은 음식을 싫어하며 잘 먹지 못한다고 했다. 또 소리에 엄청 예민한 편이라 한밤중에 내리 퍼붓는 장대 같은 빗소리에 깨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한 적도 있다. 게다가 피부가 좀 예민한 편인지 자주 종기가 나며 조금만 땀이 나도 즉시 샤워를 해야 함을 자주, 수시로 강조하였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었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시각을 제외한 네 개의 감각이 예민함에 속하니 이리저리 예민함을 따지다가 일상생활에 행여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의 예민함 중에는 나의 취향과 반대되는 부분도 있어서 이 또한 살면서 부딪힐 수 있겠다는 우려를 낳기도 하였다. 볶아 놓은 건새우의 쫄깃함과 담백한 맛은 정말 좋아하는 밑반찬 중의 하나이며 부추와 깻잎은 뗄 레야 뗄 수 없는 여름철 최고의 식재료인데 이 음식을 먹을 수 없다니 이것은 콩 없는 콩자반이요, 된장 없는 된장찌개가 아닌가 말이다.

소리에 예민하다는 남편 덕택에 황당함을 겪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이불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이다. 빈 방에 덩그러니 홀로 버려진 이유인 즉, 지난 밤 심하게 코를 골던 나를 피해서 남편은 이불과 함께 안방을 등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한 여름 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거나 말았거나 천둥 번개가 내려치거나 말았거나 나는 한 번 잠이 들면 아침까지 숙면을 취하는 반면 남편은 그렇지 못한 탓에 나의 새근거리는(?) 코골이를 참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성격까지 꼼꼼하여서 새벽 몇 시 몇 분부터 몇 시 몇 분까지 약 몇 분간 코를 골았다며 본인의 예민함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잠은 안자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남편의 예민함이 도대체 진정한 예민함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으며 이 글을 쓰고자 하는 의도이기도 하다.

향이 강해서 싫다던 새우는 갈아서 천연 조미료로 쓰거나 육수를 우릴 때 사용하면 전혀 알아채지 못하였다. 언제부턴가 부추김치는 라면을 먹을 때 잊지 않고 곁들였으며 부추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깻잎김치도 두 세장씩 밥 위에 척척 걸쳐 먹는 모습은 먹방을 찍어보고 싶은 충동마저 불러 일으켰다.

이불과 함께 피난을 떠날 정도인 나의 코골이에 대해서는 미안함을 가진다. 그러나 !

앉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걸어 다니면서 뿌룩뿌룩 뀌어대는 본인의 방구소리에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한 모습은 일관되게 주장하는 예민함과는 몹시 거리가 있는 일이다. 하물며 식사를 하면서 트림과 함께 동시 다발적으로 뿜어내는 방귀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함께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야유와 눈살 찌푸림 정도는 가볍게 무시하는 소탈함까지 겸비하였으니 어디를 봐서 예민한 성격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이 글의 본론이라 하겠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세탁한 빨래는 개키고 있었는데 남편의 구멍 난 양말 한 짝이 눈에 띄었다. 양말의 경우 오래도록 신다보면 발목 부분의 밴드가 느슨해지기도 하고 뒤꿈치가 좀 낡아지기도 한다. 한 번만 더 신고 버려야지 하지만 종국에는 빵꾸가 나는 경우가 있다. 빵꾸 난 양말을 구태여 골라 신지는 않겠지만 낡아진 양말을 신다보니 빵꾸가 났을 것이고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빵꾸 난 부분에 훤히 드러난 뒤꿈치의 맨살과 바닥과의 접촉되는 부분이 왠지 모르게 서늘함을 느끼면서 그때서야 발바닥을 들어 올려다보면 민망한 속살이 배시시 웃고 있다. 빵꾸 난 양말을 신고 있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면 좋겠지만 어쩌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순간엔 참 쪽팔리는 일이기도 하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남편의 구망난 양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구멍 난 양말을 신겼나 싶은 생각에 어찌나 미안하던지 남편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얼른 그 양말을 버렸는데 그 후로도 몇 번은 구멍 난 양말이 발견되었다. 좀 이상하다 싶어 왜 구멍 난 양말을 버리지 않고 빨래 통에 넣어 두는지 물어봤더니 세상에나 구멍이 난 줄 몰랐다고 한다. 왜 그 느낌을 모를 수가 있지? 들쳐 업고 가도 모를 만큼 잠에 빠지는 무감각한 나도 느끼는 그 촉감을. 구멍 난 부분에 드러난 맨살이 바닥과 만나는 그 서늘함을, 혹은 구두의 바닥에 쩍쩍 달라붙는 조금은 불쾌하기도 한 그 느낌을 느끼는 예민함은 도대체 어디에 처박아 두었단 말인가.

사람은 본시 같은 상황이라도 받아들이는 방법도 서로 다르고 생각하는 방향도 다를 수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나와 다른 것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갈등을 겪게 되고 의견이 충돌할 수도 있다. 땀을 흘린 뒤의 느끼는 꿉꿉함과 구멍 난 양말을 비집고 나온 뒤꿈치가 느끼는 서늘함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양말을 벗으면서 한 번쯤 확인해 보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구멍 난 양말은 지속적으로 출현하였고 그런 양말을 모르고 세탁한 나는 점점 약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세재와 전기와 물과 나의 노동력까지 추가한 다음 쓰레기통을 향하는 구멍 난 양말에 복수를 하기로 했다. 또 다시 출현한 구멍 난 양말을 예쁘게 개켜 두면 그것을 발견한 남편이 조금은 신경을 써 주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이었다.

사람은.....변하지 않는다. 갑자기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다되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으니 아니, 미워하진 않고 있으니 남편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구멍 난 양말은 잊을 만하면 출현을 하고 가끔은 기다려지기도 한다. 얌전하게 개켜진 구멍 난 양말을 또 신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남편은 그렇게 예민하지 않은 것 또한 분명하다. 누구나 먹기 싫은 음식이 있을 수 있고 특정한 소리가 괴로울 수 있으며 피부가 느끼는 촉감의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예민함이라는 단어로 통용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냥 남편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분명한 명쾌한 사람이다.

쓰다 보니 남편의 뒷담화가 되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수 십년 간 구멍 난 양말을 세탁해 온 억울함에 하소연이라도 해 볼 심산으로 주저리 널어놓은 꼴이 되었다.

양말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아 온 남편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에도 용케 잘 버텨 준 덕분에 우리 가족은 걱정 없이 지금껏 살아 올 수 있었다. 어느 새 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지만 그러나 여보, 구멍 난 양말은 제발 버립시다.

몇 번은 더 신어도 될 것 같은 양말 몇 켤레를 큰마음 먹고 몽땅 버렸다. 새로 구입한 양말을 예쁘게 개켜두면서 말이다. 당분간은 구멍을 비집고 드러내는 남편의 뒤꿈치는 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새우를 포함한 각종 해산물로 육수를 우려내어 시원한 국을 끓이고 부추김치와 깻잎 상추쌈을 곁들인 저녁상을 준비해 보아야겠다. 내가 뭘 하든 분명 남편은 맛있게 먹어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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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2022-02-25 11:21:26
저도 땀 흘린 뒤의 찝찝함에 대해서는 예민하지만 양말에 구멍이 나있는지는 모르는--성격의 차이인지, 성별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양말을 벗을 때는 절대 생각나지 않다가 빨래를 하고 나면 '아 버릴걸. 하지만 빨았으니 한 번 더 신어야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둔감함이 공존하는 성격이라서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네요.
또 일 할 때, 옆 사람이 음악을 틀면 이어폰으로 다른 음악을 틀어서 귀를 막곤 합니다. 이상하게 제가 듣는 음악은 백색소음인데 다른 사람이 튼 음악은 소음으로 느껴지더라구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