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위클리서울/ tvN

요즘 나는,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에 빠져 산다.

워낙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인지라 그녀의 드라마가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빠짐없이 챙겨보게 된다. 내가 결혼을 하던 그 해, 그러니까 1996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드라마를 처음 본 순간부터 팬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로도 ‘바보 같은 사랑(2000)’, ‘꽃보다 아름다워(2004)’, ‘굿바이 솔로(2006)’,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 등등등. 수많은 ‘노희경 표’ 드라마가 줄줄이 대 히트를 쳤다. 그 오랜 시간동안 그녀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유는 뭘까. 물론, 첫째는 대본을 잘 썼기 때문일 거다. 좋은 대본이 바탕이 되지 않는 좋은 드라마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노희경 표 군단’이라고 불리우는 배우들, 그러니까 고두심이나 나문희, 김혜자나 배종옥 같은 베테랑 연기자들의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은 대본과 좋은 연기자,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않을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도 마찬가지다. 좋은 대본과 좋은 연기자, 거기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까지 더해지니 볼 때 마다 한 상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을 대접받는 느낌마저 든다. 옴니버스 드라마의 형식으로 엮어낸,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잘 버무려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그녀의 모든 스토리가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 편이었다.

극중 영옥의 쌍둥이 언니 영희는 다운증후군 발달장애인이다. 사람들에게 언니의 존재를 숨기고 살아온 영옥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남자친구와 동네 사람들 앞에 나타난 언니 때문에 부끄럽고 힘들어 한다. 동생과 떨어져 그룹 홈에서 따로 살고 있는 영희는 동생이 그리울 때마다 혼자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영옥은 그림을 그린다는 영희의 말에 ‘네가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 그래!’라며 무시해왔다. 잠시 같이 머무는 시간마저 부담스러워 영희를 그룹 홈으로 서둘러 돌려보내버린다. 그리고 영희가 떠난 뒤, 남자친구 정준이 영옥에게 보여 준 수많은 그림들을 보며 가슴 아프게 운다... 는 이야기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작가는 이 드라마에서, 영옥과 영희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음식점에서 다운증후군인 영희를 바라보며 놀리듯 장난을 치는 어린 아이와 그런 아이를 혼내기는커녕 밥 맛 떨어졌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모의 모습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람들의 ‘아픈 시선’ 때문에 늘 상처받고 움츠려들면서도 당당하게 나서지 못하는 영옥의 모습... 그저 표 나지 않게 흘끔거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해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화나고 상처받고 가슴과 눈이 짓무르도록 울고... 그러다 누군가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장애가 있다는 것, 장애를 가진 사람의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될 수도 있고 또 어느 날 불쑥, 장애를 가진 아이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기 전까진, 내 가족의 일이 되기 전까진 사람들은 그들을 선 밖에다 세워놓고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대한다. 그리고 비장애인으로 살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내심 다행스러워 하는지도 모른다.

노희경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이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눈빛과 배려 없는 행동들이 때론 누군가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편견 없이, 차별 없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들을 당신은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영옥과 영희을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 드라마를 보다보니 몇 년 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하나가 생각났다.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의 글을 우연히 읽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허락을 받은 뒤 글을 올렸다.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이 글을 다시 한 번 올려본다. 영희를 처음 본 정준이 당황하여 했던 행동처럼,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방법을 알지 못 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면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런 작은 도움과 배려와 행동들이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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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마 전, 아이와 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써보려구요.

날씨가 좋았던 지난 주 언젠가. 하원 후 아이 아빠와 유치원 앞 공원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어요. 그날도 역시나 비눗방울을 챙겨가서 근처 꼬마 아이들이 많이 모여 서로 터트리기하며 놀고 있었어요. 손주를 데리고 나오신 어르신도 계셨고, 아이 엄마들도 아이들이 신나게 비눗방울 놀이를 하니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셨어요.

얼마 후, 근처에 있는 중학교도 마칠 시간이 되어 교복 입은 학생들도 놀이터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창 비눗방울 놀이로 신나하는 꼬꼬마 사이로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들어오더군요. 교복상태로 보니 이제 입학한 중1인 듯 했습니다.

눈 맞춤이 좀 다른 걸 인지한 저는 그 학생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그 아이가 돌발행동을 시작하더군요. 갑자기 자기 폰을 꺼내서 아이들을 막 사진 찍더니 가까이 와보라고 팔을 당기고, 횡설수설 아이들에게 질문을 계속하기 시작했어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아이 엄마들은 모두 경계하기 시작하더니 금방이라도 한소리 할 것 처럼 보였어요. 전 얼른 비눗방울을 멈추고 학생에게 다가가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조금 큰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안녕! 여기 중학교 다니니?”

“네~~ 이제 끝나서 쉬러왔어요!!”

“근데 아까 이모가 보니까 너 애기들을 정말 예뻐하나 보다.”

“네~~ 저는 아이들 정말 좋아해요. 예뻐요.^^”

“정말 착하네. 예뻐해 줘서 고마워. 근데 아이들은 힘이 약하고 작아서 그렇게 팔을 갑자기 당기면 다칠 수도 있고 무서워해. 이모 말 이해하지? 네가 잘못했다고 혼내는 게 아니라 이모는 네가 나쁜 사람이라고 오해받을까봐 얘기해주고 싶었어.”

“나 때린 거 아닌데.. 애기들 놀라게 하면 안 되는데.. (눈동자도 많이 흔들립니다)”

“그럼, 다 알지. 너 착한사람인 거 알아서 이모가 말해주러 온 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아가들 사진 찍고 싶으면 함께 온 어른들한테 사진 찍어도 돼요? 라고 꼭 물어보자.^^”

“네~~ 알겠어요!!^^”

“그래, 다음에 놀이터에서 아가들 만나면 형아가 반갑게 인사하고 잘 챙겨줘. 이모가 부탁할게.^^”

이렇게 웃으며 대화하고 아이는 떠났어요.

그리고 앞에 계신 어르신들께 학생이 발달장애가 있는데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혹시라도 다음에 이런 상황으로 만나게 된다면 혼내기보다 한 번 더 친절하게 알려주시면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던 아이 엄마가, 이상한 앤지 알고 신고할 뻔 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네 맞아요.. 이상하게 보이는 상황들인 거..

근데 그 이상한 애가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는 거북이 맘으로써 계속 맘이 이상했어요. 저 역시, 발달이 늦은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경계하고 있었을 지도 몰르니까요. 그 학생 어머니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이렇게 행동하는걸 알고 계실까? 생각도 들고 말이 터지고 길을 혼자 찾아다닌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구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 미묘했습니다. 아마 그날 제가 없었다면 분명 손주를 걱정하시는 할아버지한테 큰 꾸지람을 듣고 겁을 먹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아이가 계속 맘에 남네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을 마주치고 있을지도 몰라요.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병원에서, 마트에서.. 혹시나 그 사람들이 난처한 상황이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우리라도 손을 내밀어 주면 어떨까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다른 누군가도 손 내밀어줄 용기와 방법을 배울 수도 있으니까요.

잠든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밤입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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