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2.08.1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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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일러스트=정다은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이다.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을 훈육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차례로 불러내어 우선 학생의 볼따귀를 잡은 뒤 아버지의 직업부터 묻는다.

학생의 인권이나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전무했고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교사의 폭행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때였다. 다짜고짜 학생의 볼따귀를 잡고 앞뒤로 흔들다가 결국엔 싸대기까지 날리는 장면은 실제로 나의 학창시절에도 종종 발생하였다.

사실 선생님의 의도는, 직장상사에게 굽신 거리는 회사원 아버지나 죽은 사람 염을 하는 장의사 아버지가 힘들게 번 돈으로 너희들을 학교에 보내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시험점수가 이래서 되겠냐며 정신 차려서 열심히 학업에 임하라는 거였다.

바닥을 기는 시험 성적에 대한 훈육이 목적이라면 해당 학생에게 중점을 두어서 학업에 대한 어려움이나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상담을 하고 잘 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하는 것이 요즘의 교육환경이다. 그러나 저 때만 해도 부모님의 직업, 특히 아버지의 직업을 거론하고 부모님의 희생과 노고를 앞장세워 자식으로써 학생으로써의 본분을 강요받았다.

그런데 왜 하필 아버지의 직업이 거론되었을까? 흔하지는 않았지만 직업이 있는 어머니도 분명 존재했을 텐데 말이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절,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밖에서 일을 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벌어 온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 잘하는 것이 최고의 가정환경으로 인식되었다. 오히려 일하는 엄마는 안쓰러운 존재였다. 얼마나 아버지가 무능하여 돈을 못 벌어다 줬으면 집에서 살림을 해야 할 엄마까지 직업 전선에 뛰어들게 만들었을까라는 판단을 해댔다. 게다가 아버지의 직업 유무와 직종에 따라 가정의 부유함을 지레 짐작하고 자녀의 학습 환경에 적합한 지 아닌 지를 결정해버렸다.

그러한 분위기에 익숙하게 성장한 나도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엄마와 공무원이었던 아빠가 부모인 것이 대단한 것인 줄 알았다. 그 속은 곪아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 엄마는 먹고 사는 문제가 난감해졌다. 덩달아 학교에 등록금과 자질구레한 납부금들을 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들은 한결 같이 느그 아부지는 뭐하시노와 느그 엄마는 뭐하시노를 번갈아 가며 물어 보았다. 물론 학생이 처한 가정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학생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물어 보았을 것이란 생각은 한다. 그러나 차마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아직도 살림중이란 말을 쉽게 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선생님들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살림만 하고 있는 엄마밖에 없으니 이제 돈 얘기는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라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학생을 파악하고 학생이 성장해 온 가정환경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해마다 새 학기가 되면 담임 선생님은 가정환경 조사서를 배부하며 시시콜콜한 것 까지 조사했고 심지어 가정방문도 감행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코흘리개들을 교실 가득 빽빽하게 앉혀두고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손 들으라, 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 들으라, 냉장고 있는 사람 손 들으라, 피아노 있는 사람 손 들으라며 항목마다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들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신나게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는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손을 들 기회는 점점 사라졌다. 고가의 가전제품 소유 여부를 물어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자동차가 있는 사람의 손을 요구하였는데 반에서 딱 한 명이 해당 되었다. 그 아이는 우리 동네 극장 집 딸이었다. 아이의 손이 허공을 향해 슬며시 올라오자 부산한 웅성거림과 흘깃거림이 반 전체에 퍼졌다. 가정집에 자동차가 있다는 사실이 당시로서는 거의 재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정환경을 파악하는 항목도 변천하였다. 시시콜콜한 가전제품은 많이 축 되었고 자가와 전세, 편부모와 조부모에 관한 질문이 추가되었다. 선생님들 중에는 감사하게도 학생을 배려해 주는 분들도 많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일이 소수의 누구에게는 결핍이 되기도 하며 소수들은 그러한 사실을 쉽게 밝히기 어렵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아직 살림만 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던 나처럼 말이다. 반 아이들을 모두 눈 감게 하고 해당되는 항목에 손을 들으라는 선생님이 있었다. 해당 항목마다 손이 올라가는 조용한 움직임이 들리긴 했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몰라야 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날도 새 학기를 맞이한 가정환경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민한 질문을 할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 순간은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예상대로 선생님은 편모와 편부에 관한 질문을 했다. 지금이야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혼 가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혼에 대한 생각이 보편화되었지만 예전에는 이혼에 대한 편견이 매우 심했다. 사별로 인한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을 불쌍하거나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일쑤였다. 그러니 반 친구들 앞에서 편부모에 대한 상황을 알리는 것은 사춘기 청소년의 입장에서 어쩌면 치욕스러운 순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심정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게 하였는데 오히려 해당 아이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 발생했다.

“엄마하고 사는 사람 손 들으라.” 군데군데에서 조용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빠하고 사는 사람도 손 들으라.” 눈은 감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잔뜩 움츠린 팔들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찰나에 나는 고민이 되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손을 들까말까 고민하다가 끝내 들지 않기로 했다.

“손 든 사람 출석번호 불러라.” 교실은 불편한 적막을 뚫고 나오는 탄식소리에 젖어 들었다.

허공에 올려 진 팔들이 갈 곳을 잃고 해매는 게 느껴졌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출석 번호를 고해바치는 아이들의 절망이 나에게는 안도가 되었다. 손을 들지 않기로 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학생인권이 강조가 되고 개인 사생활에 대한 보호가 강화됨에 따라 집안의 숟가락 개수까지 파악하려 드는 가정환경 조사는 근절되었다. 요즘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 고작해야 부모님의 성함과 생년월일 그리고 연락처 정도만 기재할 뿐 학생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학습지도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학생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느그 아부지가 뭘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불필요한 사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난타 강의를 하면서 회원들의 사생활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의 본분은 북을 잘 칠 수 있는 타법이나 난타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강습을 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난타 왕초보반에 신입 회원이 왔다. 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반인데 조금은 젊어 보이는 회원이 등장하니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나의 수업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속도도 빠르니 더더욱 그러했나보다.

잠깐 쉬는 시간에 다른 회원들은 방학기간 손주들의 육아전담에 대한 고충을 털어 놓았고 나는 이 때다 싶어서 새로 온 신입회원에게 질문을 했다.

“회원님은 자녀가 있으세요?” 누군가에게 당연한 사실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이 아닐 수가 있음을 나는 간과했다. 비록 잠깐 쉬는 시간에 가볍게 물어 본 사생활의 일부였지만 뒤늦게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저 아직 미혼이예요.”

눈을 감고 손을 든 채 출석번호를 말하게 한 선생님이 생각났다. 훈육이라는 미명으로 느그 아부지의 직업을 캐내려 한 선생님도 생각났다. 내가 그들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몹시 무안한 마음에 옛 기억이 떠올랐나보다. 그렇다고 아예 모른 척 무관심하자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은 곧 나의 사생활이 보호받아야 할 이유이므로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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