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의 심오함
집밥의 심오함
  • 김은진 기자
  • 승인 2022.09.2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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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나는 평소 집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매일 아침 아버지의 밥을 정성껏 차려주시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항상 남아야지 모자라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가진 어머니가 계시는 우리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넘쳐났다. 그래서 내가 따로 요리를 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난가을, 나의 남자친구로 인해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러 한국에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가 심각한 상황이라 여행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 한국에 들어오려면 어학연수 비자를 받는 방법뿐이었다. 그래서 대학원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몇 달간 한국어 어학당의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우리 집에 머물기로 했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우리 가족과 함께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과 내가 만든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으로도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느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생선 요리를 자주 하셨다. 그런데 나의 남자친구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째로 식탁에 올라오는 한국식 생선요리를 먹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김치나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은 많이 낯설어했다. 게다가 나는 어머니께 식사 준비에 평소보다 더 많은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배달음식이나 외식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영양상 균형 잡힌 식단이라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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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유튜브에서 최대한 조리법이 간단한 고기 요리 레시피들을 골랐다. 그렇게 만든 간장 닭구이와 버터치킨커리, 쇼가야키는 성공적이었고 비프스튜와 돼지불백은 탈락점을 받았다. 유튜브는 요리 과정 전체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검색어로만 찾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의 요리 관련 서가는 내 예상보다 넓었고 그 안에는 다양한 요리책이 있었다. 처음에는 초간단, 한 그릇 등의 키워드로 책을 고르다가 점점 샌드위치나 수프 등 특정 메뉴를 전문으로 다루는 책과 각 문화별 요리책으로 옮겨갔다.

그러면서 내가 하는 요리에는 하나둘씩 지향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 효율을 감안해 간단할 것, 외국 요리더라도 한국에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영양소를 고려해 식단을 꾸밀 것, 시판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을 것. 무엇보다 그렇게 만든 요리는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나와 남자친구 두 사람의 입맛에 모두 맞아야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남자친구와 함께 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식성을 더 빨리 알게 되었다. 우리 둘 다 프랑스보다는 영국 요리를, 태국식보다는 한식이나 일식을 더 좋아했고, 남미식보다는 북미식을 선호했다. 남자친구는 의외로 생채소를 잘 먹었지만 나는 익힌 채소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나 치즈 같은 온갖 발효음식의 맛에 대해 남자친구는 의혹의 눈빛을 보냈다. 때로는 남자친구가 자기 가족의 집밥이라며 만들어준 치킨 팟파이나 셰퍼드 파이를 처음 맛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서로의 취향을 반영해 요리를 만들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레시피’라는 어지러운 선택지를 하나하나 좁혀갔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건 바로 요리 후에 남아서 냉장고로 들어가는 식재료 처리였다.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요리를 하고 남은 재료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채소가 그랬다. 씻고 손질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드는데 비해 오랫동안 보관하기 어려워 까다로운 식재료였다. 예를 들면, 몸에 좋다고 소문난 양배추는 보통 한 개의 크기가 너무 커서 사분의 일 정도는 결국 상해 버리기 일쑤였다. 때문에 구입한 식재료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려면 비슷한 재료를 쓰는 다른 맛의 요리 레시피들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시도해 본 양배추를 넣은 누마상 샌드위치와 양배추채를 산처럼 곁들인 돈까스 정식은 성공적이었고 양배추햄스프는 실패였다. 나는 어느 날 냉장고 속 반찬들을 보다가 이 문제는 우리 어머니도 겪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갖은 채소 볶음이나 쌈채소 무침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은 자꾸만 남는 식재료 때문이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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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남자친구는 대학원에 합격했고 학교 근처 자취방을 얻어 우리 집을 나갔다. 그렇게 몇 달간에 걸친 집밥 만들기 대장정은 내게 급성장한 요리 실력을 남겨주며 끝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술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시장과 마트에는 철마다 온갖 식재료가 들어오고 나간다. 우리는 거기서 할인하는 식품을 예정에 없이 구입하기도 하고, 이웃에게서 갑자기 음식 선물을 받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가족들 몸 상태나 일정에 따라 기껏 준비한 요리가 환영받지 못하는 날도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배달음식이나 간편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예산에 맞춰 좋은 식재료를 구입해 관리하고 한정된 시간 내에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요리를 해내야 한다. 그것도 거의 매일. 이 모든 일들이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맛있는 집밥을 먹이려고 궁리하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일들이다. 남자친구를 위해 마트의 신선식품 코너를 기웃거리고 거의 매일 밥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집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시스템인지를 깨달았다.

한동안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여러 식재료가 맛있는 요리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덕분에 요리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해먹는 집밥은 그저 음식 하는 행위 이상의 것이다. 집밥은 단순히 요리 혹은 레시피들의 모음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 경영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다. 여기에는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가족의 경제적 상황, 구성원들의 기호와 체질, 매일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정, 그리고 음식에 대한 가치관 등 온갖 것들이 연관된다.

나는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결국 내 몸을 이루는 것이기에 생의 근본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그런 음식 생활의 기둥은 언제나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이었다. 그러나 그런 집밥의 현실에 대해서 나는 잘 몰랐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한 식사를 매일 같이 준비하면서 비로소 거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함께 사는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사소하고 당연해서 대단치 않은 집안일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을 보다 낫게 끌어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매일의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상시 집에서 가족들이 먹는 밥을 하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하고 또한 그 과정을 이해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나의 집밥 만들기 경험은 너무나 익숙해서 평범한듯한 일상 업무들이 실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받쳐주는 굳건한 토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삶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슬며시 바꿀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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