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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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 위로 언니가 둘, 오빠가 하나 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바른 생활의 표본이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우등생이었고 집에서도 부모님 말씀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오빠였기에 동생인 작은언니와 나는 오빠가 시키는 일은 될 수 있으면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었다. 오빠가 우리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 시키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욕’이었다.
오빠는 욕하는 걸 무지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남들 다하는 ㅆㅂ이나 ㄱㅅㄲ 같은, 사소한 욕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욕 비슷한 거라도 내뱉으면 앞에다 앉혀놓고 이렇게 복창하게 했다.
“취소해라.”
“취소.”
“한 번 더해라.”
“취소...”
“두 번 더해라.”
“취소 취소...”
이러며 나를 못 살게 굴었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오빠 앞에서는 말을 조심하도록 늘 신경 써야 했다.
간혹, 작은 언니와 둘이 다투다가도 오빠가 집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책을 읽듯 표준어로 싸움을 해야 하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웃기고 자빠졌네’ 같은 말은 ‘웃기지 좀 마’로, ‘미쳤냐?’라는 말 대신 ‘기분이 나빠’라고 순화해서 써야 했다. 
내가 살던 부산은 특히나 일상어와 욕이 섞인 말들이 많아 친구들하고 전화 통화라도 하고나면 어김없이 오빠가 나를 불러 앉혀놓고 ‘취소해라’ 고문을 하곤 했다.
“취소 열 번 해라.”
“취소 취소 취소......”
“스무 번 더 해라.”
“취소 취소......쵸 쵸 쵸......”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오빠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는 바람에 ‘취소 고문’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되었지만 방학을 하고 집에 내려와 있을 때면 또 다시 언니와 나는 자유를 잃고 입단속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나서도 오빠 집에 갈 땐, 애들에게 몇 번씩 다짐을 시키곤 했다. 
“너희들, 삼촌 집에 가서는 말조심해야 한다.” 
“알아요, 엄마. 하루 이틀도 아니고......”
우리처럼, 조카들에게까지 ‘취소 고문’을 하진 않았지만 불쑥, 욕 비슷한 말이라도 튀어나오면 그 즉시 엄한 말투로 “그런 말은 절대 쓰면 안 된다”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므로 아이들도 삼촌 앞에서는 어려서부터 말조심을 하는 편이었다.
이00, 박00 시절에 오빠 집에서 뉴스를 보며 밥을 먹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오빠에게 밥숟가락을 빼앗기기도 했다. “애들 앞에서 그게 할 소리가!” 이러면서 말이다.

그런 오빠가... 그랬던 오빠가...
오늘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내 주민등록 번호를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쓸 데가 있다고.
“뭔데? 왜 그러는데?”
아무리 형제라도 이유를 말해야지 안 그러면 못 알려준다고 했다.
그러자, 오빠가 대답했다.
“인터넷 바둑게임 가입할라고......”
“오빠 거로 하면 되잖아. 새언니 거로 하던가.”
“둘 다 못 한다......”
“그니까 왜?!”
“욕해서 쪼껴났다.”
“뭐..라고오??”
“혹시 모르니까 맹서방 거도 좀 알려도. 또 쪼껴나면 써야 된다. 큭큭큭~~~”

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 때, 오빠 앞에 앉아 ‘취소 취소’를 100번까지 복창해봤던(숫자까지 세며 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나로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점잖은 바둑을 두며 욕을 하다니. 아니, 쓰다니(온라인이니까). 이게 말이 되냐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오빠가 욕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물었다.
“근데 오빠야.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무슨 욕을 얼마나 했길래 쪼껴났노?” 
한번 들어나 보게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오빠는 ‘큭큭’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웬만해선 욕을 안 하는데......”
라고 시작된 오빠의 입에선 내가 상상한 거 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신박한 욕들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오빠에게 말했다. 
“취소해라.”
“뭐라꼬?”
“취소하라고.”
“아, 그래그래. 취소!”
“열 번 더 해라. 아니, 백 번 해라.”
오빠는 알았다며, 다신 욕 안 하겠다며, 내 것과 남편의 주민등록 번호를 받아 적은 뒤 전화를 끊었다(인증번호 오면 알려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오빠는 어린 나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욕은 길거리에 뱉는 침과 같은 거라고.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하다보면 그게 더러운 지도 모르고 자꾸 하게 된다고.
자기 집 안방에 침 뱉는 사람은 없지 않냐고.
그러니까 그건 예의 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거라고.

그랬던 오빠가, 인터넷 바둑 게임을 하다 욕을 해서 쫓겨났다니!
한편으로는 배신감도 들고 어이도 없었지만 또 한편, 이제 더 이상은 오빠 앞에서 말조심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묘한 해방감도 들었다. 그리고 오빠에게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쳐주고 싶었다.
“취소는 개뿔!!!”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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