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뜻을 아십니까?
자식의 뜻을 아십니까?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2.11.24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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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둘째 아들이 옷 만들고 남은 천으로 만든 가방 ⓒ위클리서울/ 김양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둘째 아이는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다.

백화점에 들어서면 새 옷들의 스~멜에 미쵸버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옷과 신발을 실성한 듯 좋아하면서도 디자이너가 되려면 미친 듯 노력해야한다는, 아니 노력해도 될깡말깡 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둘째가 중2였던 어느날..

공부 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 같은 모습에 열이 받아, 그놈의 책상 위에 밍크코트처럼 먼지가 쌓인 책들을 들어내버렸다. 집에 돌아와 텅 빈 책상을 보면서 컴퓨터 모니터를 정 중앙에 배치해놓고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고 좋다고 할지도 모를 해맑은 중삐리였다. 근데, 아이의 책상을 정리하다보니 졸라맨이 잔뜩 그려져 있는 노트에 적힌 글 하나가 보였다.

​제목/ 가을의 목표

​나는 가을에 집을 나가고 싶다. 가출해보고 싶다는 말이다. 
물론, 혼자 alone...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니까. 
돈을 벌어 동물 캐리어를 사서 고양이도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토리에게도 바깥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절로 가 볼까 한다. 엄마도 대학생 때 가출해서 절에 있었다고 했다. 
난 머리도 밀어볼 생각이다. 절에서는 고양이털도 밀어야 될지 모른다. 
<동물출입금지>면 다른 절로 가면된다. 물론 연락은 할 생각이다. 
엄마가 경찰서에 신고라도 하게 되면 골치 아파지니까. 
엄마 아빠는 내가 나가면 초딩들처럼 싸울지도 모른다. 애가 누구 닮아 저러냐고. 
암튼, 가출했다 돌아오면 공부도 좀 해볼 생각이다. study. 
물론 성과는 별로 없겠지만 성의라도 보여야 엄마가 옷을 사준다. 
뜬금없지만 토리에게도 옷을 만들어 입히고 싶다. wear. 
난 가을에 고독한 스타일로 옷을 입어 볼 거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어딜 가나 꾸며라. 
평범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

아이의 글을 읽고 나니 머리가 띵~~ 해졌다.

둘째는 그 무렵, 진짜 머리를 빡빡 밀고 들어왔다. 계획한 일 중에 하나를 실행에 옮긴 것일까? 암튼, 웃긴 놈의 자식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중학교 때까지 아무 생각 없고 천방지축이던 둘째가,

고딩 때 만난 여자 친구의 말 한 마디에(너, 그림 좀 그린다^^) 고2때부터 미대 입시 준비를 시작했고 방학 때마다 홍대 앞에 방을 얻어놓고 학원을 다녔다. 그땐 뭔 정성이었는지, 매일같이 홍대 앞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일식. 중식. 한식을 사 먹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넌 할 수 있다 아자!!!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탓인지, 가고 싶었던 대학에는 다 떨어지고 한번 넣어나 보자, 했던 대학에 예비번호 2번으로 합격했다. 학원에서는 재수를 권했지만 둘째는 1년 동안 또 그림을 그리고 앉아있어야 된다는 생각만 해도 깝깝해 미쵸버릴 거 같다며 그냥 다니겠다고 했다.

​그렇게 대학(패션디자인 전공)을 들어가게 되고...

1학년 2학기쯤에는, 재수를 해서 다른 학교로 옮겨볼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2학년 1학기 때,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 선배와 자기가 좋아하는 동기 사이에서 한 동안 방황하더니 도망치듯 군대에 가버렸다. 군대에서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배고픔’이라는 것을 절절히 경험했고 담 밖 너머 세상의 ‘자유’를 눈물 나도록 그리워했다. 부대 뒤편의 오래된 화장실 청소를 하다 피부병이 생겨 한 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군병원이 자기를 마루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또 한 번은, 열이 40도까지 치올라가 한 밤중에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도저히 군 생활을 못 해 낼 것 같은, 영원히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동기들이 뒤에서 쑥덕이는 소리를 들었다. “쟤, 뻑 하면 아프다고 병원 가는 놈이잖아. 군대생활, 참 쉽다. 안 그래? ㅋㅋ”

 

제대할때 둘째 아륻이 선물 받은 모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둘째는 그 말에, 생애 처음으로 ‘치욕’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죽을힘을 다해 군대 생활에 임했고 분대장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슬기로운 군대생활을 해나갔다. 그 결과, 아이는 목표한 대로 분대장이 되었고 제대하기 전날 밤, 모든 대원으로부터 선물과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었으니,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어쩌면 이건 우리 아이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복학해서, 자기와 똑 닮은 여자 후배와 사귀고 있다.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며 알게 됐다. 자식은 절대!! 계획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부모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떠들어대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아이는 여자 친구의 칭찬 한 마디에, 졸라맨에서 다비드상을 그리는 아이로 업그레이드됐고, 반찬 투정을 하며 꼬기 꼬기를 찾던 아이에서 밥그릇과 국그릇을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우는 기특한 군바리 식성으로 변모했다. 밤늦게까지 알바를 하며 자기 용돈쯤은 자기가 벌어 써야 된다는 독립적인 경제관념도 조금씩 가져나가는 듯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게 언제 커서 인간되려나..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만들었고 반쯤 포기한 상태로 아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엄마, 아빠 애를 태우며 밤잠 못 자게 만드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원한다 해도 자식은 변할 때가 되어야 변한다. 자기 스스로 어려운 일을 극복해 보고 서러움도 당해보고 좌절도 해가며 면역력과 힘을 키워나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내가 내린 결론은, 선택은 자기 스스로가 하도록 내버려두고 부모는 원망 들을 일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는 거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이래라, 저래라 아이 인생에 깊이 관여했다가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는 원망만 듣게 돼있다는 거.

어제는 수능을 보는 날이었다. 이맘때쯤엔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실용음악과에 가겠다고 밤낮으로 미친 듯이 기타를 뜯어대던 첫째가 힘들게 대학에 합격까지 해놓고, "이 길이 아닌가 봐요.." 라며 등록금을 들고 필리핀으로 튀어버렸던 일... 그땐, 정말 하늘이 노래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 했다 싶기도 하다. 내가 봐도 첫째는 음악적 재능이 별로였으니까^^

어쨌거나 인생, 지가 사는 거다.

나도 내 맘대로 살아왔기에, 엄마에 대한 원망 같은 건 전혀 없다.

그거면 된 거다. 내 자식에게도 원망 들을 일만 만들지 않고 살아도 부모 인생 선방한 거다.

​나는 자식을, 스스로 자(自) 먹을 식(食)의 自食이라 부르고 싶다. 스스로 먹고 사는 법만 깨우쳐도 성공한 거다. 그러니, 기대치를 낮추고 자립심을 키우도록 격려해 주자. 그게 바로, 부모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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