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느 곳이든 살아야 하므로
언제 어느 곳이든 살아야 하므로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2.11.30 09: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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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한국전쟁 당시 무방비 상태로 북한의 침략을 받은 우리 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가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북진을 하였다. 그러다가 미리 압록강을 건너 숨어있던 중국 인민군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를 본 UN군은 새까맣게 밀려들어오는 중공군들을 human-wave-strategy라고 표현하며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해전술이다. 사람의 머리가 흡사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이며 끝도 없이 몰려든다면, 더구나 적군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살아남는 전쟁터에서 검푸른 바다의 성난 물결처럼 일렁이는 적군의 공격을 당하다면 그 두려움과 공포는 무엇으로 표현해야 가장 적절할까.

한국전쟁이 발발한 때에 나는 아직 세상 빛을 보기 전이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해서 한국사에서만 접하였다. 그러니 인해전술의 위력이나 그 느낌이 어떠한 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출렁이는 인파에 휩쓸려 본 경험이 두 번 정도 있다.

한 번은 몇 해 전 촛불집회에서였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 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라고 하면 최루탄의 매캐한 냄새에 눈물 콧물을 훔쳐가며 투쟁하고 전경들과 대치하다가 진압대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촛불집회는 최루탄과 물 폭탄을 전면에 내세운 과거의 폭력적인 시위 모습과는 달리 질서를 지키며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성숙한 시위의 현장이 사뭇 위대해 보였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은 참석을 해야 한다는 범국민적인 명분도 있었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역사를 개편하고 있는 현장이야 말로 산교육이라는 생각에 온 식구가 광화문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광화문 지하철역에서 하차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사람에 밀리다보니 어느새 내 발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서 있었고 인파의 출렁임에 몸을 맡겨 길거리를 둥둥 떠다녔다. 수많은 인파는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며 성난 목소리를 내고 온 몸으로 화를 내뿜고 있었다. 감히 시위 현장의 중심부 근처에는 접근할 생각도 못한 채 가장자리를 어슬렁거리며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 명이 운집해 있는 광화문 광장의 모습은 어쩌면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을 건너 밀고 내려오던 중공군의 모습과 비슷했을까. 어마무시한 인파의 흐름 속에서 우리 가족은 별일 없이 시위에 참여한 후 집으로 무사 복귀하였다.

또 한 번도 역시나 광화문 광장에서였는데 온 지구인이 새 천년맞이에 들떠 있던 때였다.

해마다 그 해의 마지막 날에는 밝아오는 새해맞이 행사로 보신각에서 연말 타종행사를 했었다. 사람들은 보신각 주변에 모여서 타종행사도 구경하고 지인들과 거리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그렇지만 추위에 몹시 약하고 집순이었던 나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생방송으로만 즐겼다. 그것도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밝아져 있을 새해를 굳이 시간을 맞춰 맞이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천년은 달랐다. 천 년 만에 앞자리가 바뀌는 밀레니엄을 아무리 춥고 잠이 쏟아져도 집에서 맞이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친구들과 광화문 광장에서 만나 새로운 천년을 손수 맞이하기로 하고 밤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과년한 딸이 밤늦은 시간에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외출을 하겠다고 하니 엄마는 난리가 났다.

“이 미친년아, 밖에서 귀신이 부르나? 밤중에 어디를 기어 나간단 말이고? 지금 나가면 1년 만에 집에 기어 들어오는 기다. 고마 집구석에 박혀 있을 일이지 뭣 하러 나간다고 지랄이고”

더구나 새 천년이 되자마자 종말이 온다는 둥 컴퓨터가 오작동하여 방사선이 누출된다는 둥 미사일이 발사될지도 모른다는 등의 밀레니엄 버그에 관련한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어서 엄마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이 허파에 바람 들어가서 터져 나자빠질 년아, 지금 나가면 니 살아서 못 들어온다. 세상이 터진다 안카나. 고마 집구석에 박혀 있거라 이 미친년아.”

엄마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나는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여 새 천년 10초 전 광장을 둘러 싼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카운터를 하며 밀레니엄을 맞이했더랬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여 지하철이 광화문역을 무정차했기 때문에 한 정거장을 걸어간 기억이 난다. 역시나 그 인파에 떠밀려 길거리를 둥둥 떠다녔고 계단위의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일렁거린 듯 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겁도 나고 무섭기도 했다.

집을 나선 지 몇 시간 만에 귀가했지만 엄마는 마치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격파하고 살아서 돌아 온 자식취급을 하며 나의 무사 귀가에 안도하였다. 그 때는 우리 엄마가 참 유별나다고 생각했는데 생때같은 내 자식이 사고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그 조마조마함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얼마 전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니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던 그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뉴스를 통해서만 보았던 사고 현장을 엉겁결에 맞닥뜨리게 되니 몹시 놀라 탄식이 나왔다.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록 버스 차창 너머로 보는 광경이었지만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인파의 위력, 내 몸의 움직임은 타의에 의하게 되고 그로 인한 두려움은 몸을 사리게 만들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스러운 그 순간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다행히 지인들 중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라고 이 안타까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예측하기 힘든 이유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서 나도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 촛불집회나 새 천년을 맞이하러 광화문 광장에 운집해 있는 인파와 함께 있으면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에 새삼 감사를 느낀다. 밤 귀신처럼 기어 나가는 딸년의 무사안일을 기도했던 엄마 덕분인지도 모른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 얼마 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눈에 띈 안내문이다.

나도 모르게 지하 6층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군데군데 아픈 곳이 있기는 하나 특별히 지병도 없고 건강한 삶을 살아 왔다고 자부하지만 언제부턴가 사고에 대한 불안 장애가 생긴 듯하다. 나의 위치는 도대체 지상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다는 말인가. 만약에 싱크 홀이라도 발생했을 때 살아남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숨 쉴 수 있는 산소 잔량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양인가 등의 고민을 하게 만드는 안내문이다. 식은땀과 함께 심장의 두근거림이 온몸에 진동으로 퍼진다. 무사 귀가를 위해 그리고 나의 생사와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온 몸을 도사리고 주변을 탐색한다. 우리는 혼돈의 카오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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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2022-12-19 00:31:50
인파에 밀려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는게 현실감이 나지 않고 참 안타깝습니다.

ps. 저도 1999년 마지막날에 광화문에 있었는데 신기하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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