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는 왜 춤추는 자세로 스스로를 박제했을까
사마귀는 왜 춤추는 자세로 스스로를 박제했을까
  • 김수복 기자
  • 승인 2022.12.20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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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책 위를 산책하는 사마귀
책 위를 산책하는 사마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나 혼자만을 위한 공간 책방을 완성한 지도 어느덧 4년을 넘어 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이 책방을 들어와 본 사람은 열 명이 채 안 된다. 책이라는 물건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중에서 글쎄, 한 명 이상은 생각나지 않는다.

책이라는 물건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은 즐비하게 꽂혀 있는 책을 발견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사람에 따라 낮은 탄식이기도 하고, 큰 소리의 호들갑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방에 있으면서도 책이라는 물건은 아예 싹 무시해 버리는, 책이라는 것은 쳐다볼 필요조차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의 나는 한없이 작아져 가고, 외로워져 가고, 그리고 내가 지금 21세기가 아닌 19세기 어디쯤을 기어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우울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감상의 시간은 짧다. 복잡한 회로를 장착하고 있는 내 머릿속 운영체계가 더 이상의 감상은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벌 수 있겠는가.

21세기 인류의 공통과제가 이것이라는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여준다.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 당신도 돈이 문제로군요. 지금 당장 굶어죽을 걱정은 없고, 얼어죽을 염려도 없지만, 지금 가진 돈으로는 욕망달성이 안 돼서, 더 많이 가진 사람과 자꾸 비교가 돼서 나도 좀 더 많은 돈을, 가능만 하다면 지금보다 천 배 아니 천만 배의 돈을 갖고 싶어 하는군요.

그런 뒤에 나는 이런 질문을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할 건가요? 나의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이게 뭔 미친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힐끗 째려보고,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란 투의 코웃음이나 픽픽 날리며 일어서 버린다.

21세기의 특징은 돈을 많이 모아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나 비전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희망도, 비전도, 내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대라고나 할까. 희망이나 비전이 있다 해도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연계돼 있으니, 돈 자체가 계획이고 비전이고 희망이 되는 황당한 도돌이표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다. 무서워져 버렸다. 상황이 이런 지경으로 흐르다 보니 내가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은 책이나 꽃이나 나무들이고, 거미나 개미, 귀뚜라미, 두꺼비, 도롱뇽 등등 나와는 언어체계가 완전히 다른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자스민화분에 사마귀가
자스민화분에 사마귀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올해는 특히 사마귀가 내 관심을 확 끌어당겼다. 사마귀가 내 책방에 들어온 것은 여치가 들어온 다음 날이었다. 여치가 내 책방에 들어온 것은 서울의 용산 이태원에서 10.29참사가 나기 이틀 전이었고, 진하게 물든 단풍잎이 바람에 훨훨 마구 날아다니는 방식으로 내 정신을 매우 혼미하게 했던 다음날 새벽이었다.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어둠 속을 뚫고 책방 문을 여는 순간 뭔가가 휙, 달려와서 내 이마에 부딪혔다. 너무 놀라서 허둥지둥 급하게 전등을 켜고 보니 한 마리 여치가 내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여치 치고는 덩치가 굉장히 큰 녀석이었다. 녀석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내가 허리를 굽혀서 만지려고 하는 순간 녀석은 획 날아서 벽에 붙었다.

벽에 붙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마 숨고르기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한 발짝 다가서는 순간 녀석은 불불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위로, 위로, 계속 기어오르다가 천장을 만났다. 거기서 녀석은 잠시 멈췄다가 돌아서서 이번에는 기어내리기 시작했다. 아래로, 아래로, 계속 기어내리다가 방바닥을 만났다. 거기서 녀석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르고, 내리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르고, 다시 내리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 녀석을 나는 그야말로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우두커니 선 채로 보고, 또 보기를 얼마나 했는지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하도 신기해서 아마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아깝다는 심사로 부릅뜨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도둑이라도 맞은 것처럼 감쪽같이 보냈다. 피곤해서 더 이상은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여치는 벽에 붙은 채로 오르내리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뒤의 느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어디서 뭔가, 누군가, 무엇인가의 숨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는 느낌이었다. 뭐지?

 

잠깐 다녀간 여치
잠깐 다녀간 여치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날씨가 서늘해져서 방안으로 들여놓은 자스민 화분을 나는 어느새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사람의 예감이랄까 느낌은 역시 정확했다. 색깔이 자스민 이파리와 완전 흡사해서 그냥 대충 보면 발견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사마귀 한 마리가 자스민 이파리 사이를 조용히 산책하고 있었다. 움직임이 어찌나 조용한지 귀를 바싹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신경을 집중하지 않으면 녀석을 식별해 내기도 어려웠다.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들고 홀짝이며 다시 사마귀의 산책 장면을 보고자 했지만, 녀석은 그 사이에 장소를 옮겨 책장에 꽂힌 책들 위를 걷고 있었다.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는 사마귀의 자세가 거침이 없었다. 마치 거기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평생을 살아온 것처럼 익숙해 보였다.

그런데 너는 지금 거기서 뭘 찾고 있는 거냐?

궁금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게 책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도 궁금했다. 사마귀도 그들 나름의 언어가 있을 텐데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싱거운 의문도 살짝 일었다. 어쨌든 나는 애가 탔다. 도대체 넌 왜 책들 위를 걷는 거냐?

여치는 변함없이 벽에 붙은 채로 암벽등반 선수처럼 아슬하게 오르내리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금방 주룩 미끄러져 내릴 것 같은데도 안 떨어지는 여치가 은근 부럽기도 했다. 그런 어느 순간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얘들은 지금 혹시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길을 잘못 들어서 방으로 들어왔다가 지금 밖으로 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책방 안에 여치와 사마귀가 먹을 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여치는 연한 풀을 먹고, 사마귀도 풀을 먹기는 하지만 자기보다 약한 다른 곤충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사마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사마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방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훠이, 훠이, 나가라, 굶어죽기 전에 나가란 말이다, 소리를 질러내며 손수건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녀석들은 의연했다. 장소를 약간씩 옮겨 가기나 했을 뿐, 그 어떤 혼란도 감수하겠다는 듯이, 여치는 태연하게 벽을 타고 있었고, 사마귀는 변함없이 책장을 거닐고 붙어 있었다.

얘들이 왜 이러냐? 녀석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치도 그렇고, 사마귀도 별나게 커 보이는 것이 둘 다 암컷들인 것 같았다. 바람이 서늘해졌으니 녀석들은 둘 다 알을 까야 할 것이다. 어쩌면 알을 깔 시기가 이미 지나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혹시, 책방 어딘가에 알을 까러 들어온 것인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따뜻한 봄날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당장 먹을 것을 찾을 텐데 책방이란 말이 안 된다. 이 세상 모든 어미들은 그 정도의 계산을 본능적으로 하게 돼 있지 않겠는가. 역시 잘못 들어온 거다. 내보내야 한다.

그때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이 들자마자 여치를 가만히 조심스럽게 잡아다가 사마귀 옆에 앉혀 보았다. 여치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투로 가만히 있었지만, 사마귀는 즉각 머리를 홱 돌려서 여치를 바라보았다. 사마귀가 여치를 쳐다보기 시작한 것과 여치가 홱, 날아오른 것은 아마 거의 동시였을 것이다.

날아오른 여치는 다시 벽에 가서 붙었고, 사마귀는 금방 있었던 여치의 행방을 찾는 투로 두리번거리는가 싶더니 관심 끝, 하는 투로 다시 책장을 가만가만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여치는 아마 사마귀를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사마귀는 여치를 먹이로 파악한 것일까. 그런데 왜 쫓아가서 잡아먹을 생각은 안 하고 책장만 파고드는 거지?

그 뒤로도 한나절 가까이를 집요하게 지켜보았지만, 여치와 사마귀는 함께 어울리는 법이 없었다. 어울리기는커녕 서로의 존재를 의식할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면 후딱 멀어져 가곤 했다. 여치가 왼쪽 끝에 있을 때 사마귀는 오른쪽 끝에 있고, 여치가 자스민 화분에 있을 때 사마귀는 책장에서 책이라도 고르는 자세로 슬슬 걷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알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가 깜빡 정신이 들었다. 야 이거 안 되겠다. 오늘 마늘 심기로 했는데 이러다간 하루를 또 곱게 보내고 말겠다. 그리하여 나는, 녀석들을 차례로 한 마리씩 잡아서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녀석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현실을 받아들였다. 사마귀의 날카로운 톱니다리 한쪽이 내 손가락을 붙잡고 매달리기는 했지만 사력을 다한 저항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개똥과 톱밥을 섞어서 발효시킨 거름을 마당 한쪽 텃밭에 뿌리고, 삽질을 하고, 호미질을 해서 마늘 이백 개를 심기까지 아마 세 시간쯤 걸렸을 것이다. 손발을 씻고, 책방 문을 닫으려고 와서 보니 세상에, 어느새 도로 책방으로 들어온 사마귀 녀석이 바닥에 나가떨어진 채로 마치 물에 빠진 풍뎅이처럼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은 사마귀
살아 있는 것처럼 죽은 사마귀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자스민 이파리 위를 걷던 중 이파리가 휘어지는 바람에 나가떨어진 모양이었다. 배가 하늘 쪽으로 환히 드러나도록, 완전히 정통으로 나가자빠진 까닭에 녀석은 모든 다리를 활짝 펴서 자세를 바로잡고자 하지만, 다리가 너무 길어서 몸이 뒤집어지지를 않는 까닭에 계속 바둥, 바둥, 바둥거리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 꼴이 하도 우스워서 한참을 키득키득 웃어대고 나서 녀석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여치는 어떻게 됐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책방 어디에서도 녀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여치는 자연의 숲으로 돌아가고, 사마귀는 문명의 공간으로 되돌아온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또다시 궁금해졌다.

왜 책방으로 돌아온 거야?

박상륭 선생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가 절로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선생의 해석에 따르면 사마귀는 매우 철학적인 동물이었다. 때가 돼서 암수가 하나로 섞이는 날, 수컷의 정소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암컷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순간 암컷은 급격하게 허기를 느끼고 수컷을 잡아먹는다. 암컷에게 먹힌 수컷은 그대로 즉시 새끼가 필요로 하는 알의 중요원소가 되어가는 것이니, 자원을 이렇게도 효과적으로 성실하게 활용하는 동물이 사마귀 말고 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어쨌든 뭐 그랬다. 책방으로 다시 돌아온 사마귀는 또다시 책장 위를 거닐고 있었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10.29참사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사마귀 생각을 할 틈이 없었고, 그 다음날은 이놈의 세상 술이라도 취해서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사마귀는 까맣게 잊은 채로 보냈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새벽에 다시 사마귀를 만났을 때는,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그만 잊고 싶었다. 잊고 싶었지만, 잊을 수는 없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눈길이 자꾸 사마귀를 찾아가는 걸 어쩌랴.

볼 때마다 녀석의 위치와 자세는 달라져 있었다. 하루, 이틀, 열흘, 보름, 무려 한 달이 넘었다. 볼 때마다 달라져 있던 자세가 어느 날부터인지, 어느 때부터인지 아까 전에 본 자세와 위치 그대로인 순간이 왔다.

그런데 그 자리가 하필, 자스민 화분이었다. 화분은 유약이 칠해진 사기질 제품이라 옆구리 쪽은 대단히 미끄러웠다. 그 미끄러운 옆구리에 몸을 바싹 붙이고, 톱니다리 한쪽을 맨 위쪽 가장자리에 턱 걸어놓은 채로, 사마귀는 작은 움직임조차 없이 그냥 있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춤이라도 추는 것 같고, 명백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녀석의 상태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으로 만진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확인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이런 의문이나 중얼중얼 뇌까려 보는 것일 뿐이었다.

너는 왜 하필 내 책방을 죽음의 자리로 선택한 거냐?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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