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도자와의 산책
어느 수도자와의 산책
  • 장영식
  • 승인 2023.02.09 1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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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아침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작은형제회 이종한 신부님이었습니다. 날씨도 차가운데 지하철 전포역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식구는 정신없이 허둥지둥 야단이 났습니다. 얼른 뛰어나가 신부님을 집으로 모셨습니다.

신부님은 영도 봉래 성당 출신 수사님의 종신 서원에 오셔서 갑자기 저희를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여행 가방을 풀고 잠시 쉬신 후에 보수동 오래된 책방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치과 예약 등으로 동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에 다시 만난 신부님은 보수동 책방 이야기와 남포동 원산면옥의 냉면 이야기 등을 풀어 놀았습니다. 아들의 방을 정리해서 신부님의 침구를 마련했습니다.

 

작은형제회 이종한 신부님과 부산 감천 마을을 걸었습니다. 신부님은 감천 마을의 유래와 고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장영식

신부님은 갑자기 제게 질문하셨습니다.

“왜 문재인 씨는 세월호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지?”

“..........................................................................”

저는 순간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어휴~~~”라고 한숨만 깊게 토했습니다.

신부님은 본디부터 보수적인 성품에 가깝지만,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대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시사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월호 문제에 대한 문재인 씨의 태도에 대해서는 저도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문재인 씨가 사람의 장벽에 갇혀서인지, 그의 이미지 관리 때문이었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그의 무능함과 답답함이 이태원 참사 때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결과로 이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신랄했던 ‘문재인평’을 끝으로 신부님은 첫날 밤을 보내셨습니다.

 

신부님은 감천 마을 순례길 중의 한 곳에서 자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1년 후에 도착할 것입니다. 팔순을 앞둔 신부님은 수도자의 길을 걸어 온 신부님에게 무슨 글을 남겼을까요. ⓒ장영식
신부님은 감천 마을 순례길 중의 한 곳에서 자신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는 1년 후에 도착할 것입니다. 팔순을 앞둔 신부님은 수도자의 길을 걸어 온 신부님에게 무슨 글을 남겼을까요. ⓒ장영식

신부님은 박정희 정권 때 시국 미사와 시국 선언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 부산분실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천주교 부산교구 부교구장이었던 서공석 신부님에 의하면, 중앙정보부 부산 책임자가 조사를 마치고 신부님을 서공석 신부님에게 인계하면서 “이 신부님은 진짜 신부님이셨다”라는 말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의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나누고 신부님과 해운대에 있는 공중 온천 목욕탕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신부님의 등을 밀어드리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맹장염 수술을 받고 침대에 있을 때, 신부님은 저의 온몸을 씻겨 주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던 것입니다.

신부님은 감천 마을을 걷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전쟁 후에 생긴 감천 마을은 피난민들과 산업화로 밀려난 사람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판자와 기름종이로 집을 짓고 살았던 마을입니다. 최근 이 마을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 감천문화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감천 마을 꼭대기에 있는 아미 성당을 둘러보고 감천 마을을 걷는 신부님을 두고 저는 돌아왔습니다. 때로는 둘이 아니라 홀로 걷는 것이 자유로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에 관심이 깊은 신부님이 감천 마을의 감수성을 있는 그대로 맛보시길 원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감천 마을에서 돌아오신 신부님은 올해 환갑을 맞는 안해를 위해 맛난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초밥에 곁들인 따뜻한 정종만큼 온기 넘치는 저녁이었습니다.

 

감천 마을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과 산업화에 밀려온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가난한 마을에 '문화'라는 이름을 덧칠해서 '감천문화마을'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냥 '감천 마을'이라고 부릅니다. ⓒ장영식
감천 마을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과 산업화에 밀려온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가난한 마을에 '문화'라는 이름을 덧칠해서 '감천문화마을'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냥 '감천 마을'이라고 부릅니다. ⓒ장영식

오랜만에 신부님과 가진 시간이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신부님은 오래전부터 저희와는 식구였기 때문입니다. 2박 3일 동안 신부님에게 흔쾌히 자신의 방을 내어 준 프란치스코에게도 고마웠습니다. 정양모 신부님은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이 길어서 ‘꼬야’라고 불렀습니다. 꼬야 녀석은 신부님이 좋아하는 커피를 내렸습니다. 안해와 저에게는 까칠한 녀석이지만, 신부님에게는 얼마나 친절했던지요.

신부님은 "이종한 신부의 성화이야기 2"라는 책을 선물로 남기고, 다시 정동 수도원으로 돌아가셨습니다. 30대의 신부님은 깐깐하기가 이를 데가 없으셨습니다. 이제 팔순을 앞둔 자애 가득한 할아버지 신부님이 되시는 것 같아 애잔하지만, 모든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꼬야'는 신부님이 머문 2박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내렸습니다. 신부님은 꼬야가 내린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장영식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꼬야'는 신부님이 머문 2박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커피를 내렸습니다. 신부님은 꼬야가 내린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장영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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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2-11 19:39:14
왜 못했는지 개검한테 물어봐야지 그리고 씨씨는 ㅋㅋㅋㅋ 같잖아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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