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삶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부디 삶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3.08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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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튀르키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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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소식

그리운 사람들의 소식을 이런 방식으로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인터넷을 무심코 두리번거리다 만난 무서운 뉴스를 보며 당신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나는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터키 남동부에서 큰 지진이 났다는 소식에 나는 당신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남동부, 남동부 어디에서 지진이 났다는 거지. 황급히 찾아본 뉴스 기사에는 지진이 가지안테프라는 도시 근처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거의 100년 만에 발생한 이 지역의 대규모 지진이었다. 이 지역이 대륙의 판이 만나는, 지진지대라는 것은 완전히 처음 알았다. 가지안테프는 내가 터키를 여행하며 가장 행복했던 곳 중 하나였고, 대규모 지진은 내가 여행했던 근처 지역 모두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건물이 도미노처럼 쏟아진 사진을 보며 믿을 수 없었다. 저기가 내가 있던 곳이라고, 내가 웃고 떠들고 사람들과 웃음을 나눴던 곳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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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여행 이후에도 종종 안부를 나누었던 지크란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나는 지크란을 동쪽 끝의 도시인 반(van)에서 만났지만 내가 알기로 그의 집은 조금 더 남동쪽에 가까웠다. 다행히 지크란에게 얼마 가지 않아 연락이 왔다. 그러나 돌아온 내용은 전혀 다행스럽지 않았다. 장애아동들을 교육하는 특수교사인 지크란은 지진이 날 당시에 거의 진원지 근처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살았다. 그는 건물의 잔해에서 운 좋게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의 가족들도 무사하다. 그러나 다행이라거나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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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깔렸어. 도처에 죽음이 있어. 춥고 배고파. 우리 집이 모조리 무너졌어. 내 마음에 문제가 생겼어. 나는 지금 치료가 필요해. 지크란의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나는 그저 정말 유감이라고, 정말 정말로 유감이라고, 부디 모든 것이 괜찮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에게 빌었고 나도 그의 신을 향해 빌었다. 지크란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한 사람이라도 더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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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터키 친구들 소식도 찾아보았지만, 연락이 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나와 연락처를 교환한 그 지방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가지안테프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검은색 배경에 흰 글자로 무슨 말이 써 있고, 그 안에 오마르의 이름이 쓰여 있길래, 나는 설마 이게 오마르가 죽었다는 뜻인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구글 번역기에 터키어를 알파벳 하나하나 따라 썼다. 그 내용은, 우리의 게스트하우스는 현재 지진 대피소로 운영 중이라 비어 있는 방이 없다는 뜻이었다. 오마르가 죽은 것은 아니구나. 또 그 아름답던 게스트하우스가 파괴된 것은 아니구나, 순간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도대체 어디까지 안도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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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번역기를 통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누리의 인스타그램에도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지진 피해에 대한 지원을 이야기하는 글인 듯싶었다. 나는 그에게 괜찮냐고 댓글로 물었지만 누리는 영어를 아예 할 줄 몰랐고, 아마도 내 얼굴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적어도 누리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해야만 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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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기억한다

피해를 말해주는 사진은 이토록 선명한데, 정말 믿기지 않는다. 가지안테프부터 시작해, 산르우르파, 마르딘, 디야르바크르, 반 등의 도시를 지났던 터키 남동부 여행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곳이 아랍과 터키 문화가 교차하고,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이야기를 깊게 들어볼 수 있고, 구약성경에 무대가 되었던 지방이라는 머리로 느낄 수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특히 좋았다. 한 명 한 명이 친절했고 어디를 가든 깊은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테러 단체인 IS가 종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이야기에도 안전에 대해 묻고 물어 결정한 여행이었던 만큼, 그곳에서의 기억은 특별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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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부비며 걸었던 도시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지금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일상이 굴러가는 것은 결국 땅 위라는 것도 괜히 생각하게 된다. 말 그대로 ‘지반’이 흔들려서 모든 게 무너진다는 것.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지반이 흔들려 모든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이 깔린다는 것. 밖을 나가 걸을 때, 여기 지진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종종 떠올린다. 일상이 갑자기 멈추고, 모든 게 비상이 되고, 흔들린 땅에 삶 자체가 흔들리게 되는 일을 떠올린다. 그러면,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게 되었을까. 나를 궁금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지금 무사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아비규환에 있고, 내가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 기분이 이상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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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이름이 바뀌고, 나는 터키 여행기 연재를 거의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그들과의 추억을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호명하면서, 글자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제 막 안텝과 우르파와 마르딘과 디야르바크르와 반과 카르스를 지나 트라브존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터키에서 조지아로 나가는 내용을 쓰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제 막 다시 지나쳤더니 이런 재해가 들이닥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혼자 기억을 되살리고 있던 내게는, 최근에 만난 도시와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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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는 재난과 재해가 들이닥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으면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기도 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그때 내 눈앞에 거기 그렇게 있었다는 것을, 그 웃음이 정말로 환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지진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재해이기는 하지만, 이곳이 그만큼의 지진지대라면 더 대비가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앞으로 터키 국민들과 정부가 힘써서 대비할 문제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괜히 한 줄 더 쓰게 된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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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사람은 사람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나는 그 정확한 방법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들을 계속 기억하고 오래 지켜볼 것이다. 할 수 있는 도움이 있다면, 도움의 길을 찾을 것이다. 부디 그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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