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짜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아무리 짜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3.28 08:5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조지아, 바투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조지아, 그루지야

누군가에게 조지아를 다녀왔다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거기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커피 많이 먹고 왔냐고 말했다. 아마 대부분 미국의 조지아 주를 떠올렸을 것이다. 편의점에서도 만나게 되는 조지아 커피가 아닌가. 몇 해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거기, 커피 진짜 맛있어?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사실 여행 전에 내가 조지아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고, 언젠가 그 나라에 가보리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렴풋한 나라였다. 조지아의 예전 이름은 그루지야다. 그루지야라면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러시아와 전쟁을 했던, 정확히는 침략을 당했던 나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뉴스에서 봤다. 러시아 탱크가 시가지를 무심하게 지나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체첸이니 그루지야니 하니, 소련식 화학 냄새가 날 것 같은 이름들. 러시아의 전쟁으로 다시 시끄러운 지금, 오래전 그때를 이렇게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러시아와의 전쟁 이후 그루지야는 나라의 이름을 영어식 발음인 ‘조지아’로 바꾸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또 하나 조지아에 대한 나의 몇 안 되는 기억은 장수풍뎅이에서 왔다. 한참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곤충을 키우기에 열중했던,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인터넷에서 전 세계 장수풍뎅이들의 사진을 검색했다. 그중에서 뿔이 세 개나 되는 거대한 장수풍뎅이를 발견했다. 그 큰 곤충의 이름은 ‘코카서스 장수풍뎅이’였다. 이름도 멋진 코카서스. 코카서스는 조지아와 지금의 러시아 사이에 있는 산맥 이름이었다. 산맥 이름을 넘어, 조지아를 비롯해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가 있는 이 지역을 코카서스 지방이라고 불렀다. 캅카스라고 부르기도 하는, 프로메테우스가 매달려서 독수리에게 쪼아 먹혔다는 그 산맥. 어린 나는 단지 코카서스라는 이름의 특이함과 장수풍뎅이의 멋짐 때문에 그 이름을 무의식 속에 몰래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 몰랐다. 내가 코카서스에, 조지아에 가게 될 줄은.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실은 이 여행 자체가 코카서스를 가기 위해 시작된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아제르바이잔에 가기 위해 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기보다는 촉발되었다고 해야 할까. 제대를 앞둔 나는 제대 후에 아시아 이곳저곳을 다녀볼 요량이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는 아직 정해두지 않은 채였다. 그때 꿈을 꾸었다. 나는 그 시절 문지기처럼 철문 앞을 지키는 헌병이었는데, 꿈에서도 나는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철문 바깥으로, 어느 외국인 가족들이 보따리를 싸고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영어도 한국말도 못했지만, 손짓 발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냐고 물었다. 그들의 태도는 따뜻하고 온화했다. 아이들이 철문 밖에서 꺄르르 웃었다. 규칙은 규칙이니 안 된다고 대답하자, 그들보다 내가 더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그들은 내게 철문 사이로, 무언가를 적은 종이를 주었다. 레시피라고, 한 번 해 먹어보라고, 정말 맛있을 거라고, 말하고 그들은 떠났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꿈은 파편으로 남아 계속 이어진다. 나는 결국 꿈에서 그들이 사는 나라에 갔고, 그들이 사는 나무로 만든 집에 들어갔다. 그들의 나라는 나무로 울창한 산맥에 있었고, 시야에는 높낮이를 달리하며 이어지는 언덕들이 보였다. 초록이 무성했지만 우리의 초록과는 달랐다. 그들과 한참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뛰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여기가 그래서 어디지? 일순간 그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한순간에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이상하게 연출된 꿈의 클라이맥스에서 나는 깨어나 어리둥절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적어도 내 의식 속에서는 처음 듣는 나라였다. 분명 어딘가에서 들었다가 어이없는 순간에 뛰쳐나온 것이겠지만, 내게는 기묘한 경험이었다. 얼핏 들은 나라의 이름을 아직 잊기 전에 검색해 보았고, 그 나라는 코카서스 지방에 있었다. 튀르키예와 비슷한 말을 쓰는 비슷한 민족이 사는 나라. 사실 거대한 호수지만, 바다라는 명칭이 붙은 카스피해에 붙은 나라. 그런데 꿈과는 다른 점이, 아제르바이잔에는 울창한 숲과 언덕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꿈에서 보았던 나라와 더 흡사한 나라는, 바로 옆 나라인 조지아였다. 조지아? 커피? 아, 그루지야. 그루지야가 여기 이렇게 있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검색창을 닫았다. 아제르바이잔도 간다. 조지아도 간다. 어차피 어딘가로 갈 생각이었던 나를 꿈은 알아서 이끌었다. 꿈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꿈이 나를 어딘가로 보낼 수 있다는 게 실없고 좋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짠 음식의 나라

마침 튀르키예 여행을 함께 했던 진도 조지아를 들릴 생각이라, 조지아 여행 역시 함께 하기로 했다. 흑해에 남쪽에 면한 튀르키예의 도시 트라브존에서 역시 흑해에 동쪽에 면한 조지아의 바투미까지 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타면 국경에 갈 수 있었고, 국경에서 알아서 갈아타고 바투미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때 보았던 국경은 내가 보았던 국경 중에 가장 세련된 곳이었다. 공항 같았다고 해야 하나. 공항 수속을 밟는 것처럼 멀끔한 건물에서 검사를 받고 나왔더니 조지아였다. 까마르조바. 카르스에 머물 때 만난 조지아어를 전공하는 튀크키예 대학생들에게 배운 조지아어로 말했다. 까마르조바. 감사합니다. 이슬람 모스크 대신 조지아 정교회의 예배당들이 보였다. 한때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소련풍의 향취가 남아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휴양 도시였기 때문인지, 시골 휴양지 느낌이 났다. 높지 않은 건물들, 해변에 면한 중소 도시, 바투미.

나쁘지 않은 첫인상과 다르게 처음부터 숙소를 찾다가 지쳤다. 아직 유심칩을 새로 사지 않아 인터넷도 쓰지 못한 채로 저장해둔 숙소 근처로 찾아갔더니, 현지인들이 사는 구석 마을이 나왔다. 아무리 독특한 사업 수완이 있다고 해도, 이런 곳에 게스트하우스나 숙소를 놓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있다고 하더라도 간판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과 나는 한두 시간 넘게 그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예약한 숙소를 찾았다. 아무래도 이 위치가 맞는 것 같아 정말이지 가정집처럼 생긴 집의 문을 두드렸다.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놀란 눈으로 우리를 맞았다. 아이가 어머니를 데려오기가 한참. 어머니에게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 숙소를 예약했는데, 위치가 이리로 되어 있다. 맞나?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맞기는 맞았는데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어쩌면 집에 잘 안 오는 삼촌이 예약을 승인해 놓고 사라졌는지, 그들은 우리가 오는지 몰랐다. 예약한 방이 그 방은 맞았지만, 정말 사람 사는 집에 방 하나를 내어 놓은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오히려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우리가 예약한 값의 2배를 불렀고, 은근히 우리가 이곳에 묵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낯선 나라의 사람 표정을 내가 잘못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결국 돌아 나와, 바투미 시내를 무작정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방을 구하다가, 그나마 괜찮은 방을 구해 묵기로 결정했다. 일을 다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바투미의 돌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궁금해 마지않았던 조지아의 음식은, 지나치게 짰다. 이곳은 이제 내게 짠 음식의 나라, 그러나 아무리 짜도 사랑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나는 이 나라에서 곧 발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양미 2023-03-29 15:58:30
저도 조지아를 다녀온 적 있어 그런지 이 글이 무척 반갑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