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지난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봄날이 끝내는 왔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 중에 가장 부지런한 산개구리는 어느새 알 낳기를 끝내고 산으로 돌아갔고, 도롱뇽은 알 낳을 자리를 찾아서 열심히 움직이고, 비단개구리 수컷은 암컷의 등에 업힌 자세로 몇날며칠을 보내며 애처로운 소리를 낸다. 조용하게 바쁜 이 계절에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훈계와 충고 그리고 비난의 소리를 듣느라 어지럽다.

 

완벽한 잡초
완벽한 잡초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집구석이 이게 뭐냐. 마당에 무성한 저 잡풀들을 그냥 두는 이유가 뭐냐. 풀 잡는 약을 사다가 한 번만 뿌리면 된다. 그것조차 못 할 정도로 게을러빠져서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하겠느냐, 등등 별별 언어로 구성된 비난과 충고 그리고 꾸짖음 소리가 내 귀를 어지럽힌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화사하게 피어난 수선화가 너무 예쁘다고, 저렇게 예쁜 수선화를 괴롭히는 잡초가 눈에 보이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한다.

그런 나무람을 들을 때 나는 그저 싱글싱글 웃고나 말자는 자세를 취하지만,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 싶을 때는 공자를 들먹이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무식(?)을 환기시켜주고자 애를 쓰기도 한다. 공자? 뭐랄까. 그 이름 자체가 이미 케케묵은 냄새를 확 풍기게 돼 있으니, 내 입에서 나오는 그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한때 만병통치약처럼 사회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 적도 있긴 하지만, 공자와 제자들 간의 질의응답을 공자 사후에 편집한 것으로 알려진 ‘논어’에는 진리 또는 진실이란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게 하는 문답이 숱하게 나온다. 그 많은 어록 중에 특히 나를 사로잡는 것은 잘남과 못남의 대비이다. 나는 이 대비를 세 문장으로 요약 정리해놓고 가끔 들여다보곤 한다.

잘난 척하기는 쉬어도 못난 척하기는 어렵다.

잘난 척하는 사람의 언행은 따라 하기 쉽지만 못난 척은 따르기 어렵다.

잘난 사람에게서는 배울 만한 것이 거의 없으나 못난 사람은 그 언행 하나하나가 다 배울 만한 것들이다.

나로 하여금 잘남과 못남의 대비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대부분 잡초라는 멸칭을 갖고 있고, 하나같이 작고 못나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른 봄에 피는 작고 못나 보이는 꽃들은 다른 수많은 것들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

힘이라고 했지만 강요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딱히 유인 또는 유혹이라 폄훼할 만한 것도 없다. 생각 없이 그냥 보면 꽃 같지도 않아서 건성으로 힐끗 쳐다보거나 짓밟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긴 생김새 자체가 워낙 작고 평범하고 특징적이라 할 만한 게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냉이꽃
냉이꽃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러니까 이건 뭐랄까, 마음이 허전해서 뭔가 좀 다른 것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발견해내는 기쁨의 소재라고, 이렇게 말하면 될까? 이런 기쁨을 누리자면 약간의 인내와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 기술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울뚝불뚝 거만하지 않게 가만히 쪼그려 앉기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기술이다. 인내는 작은 꽃에 관심을 갖고 쪼그려 앉는 순간 자동으로 작동되게 돼 있으니 구태여 인내하자, 인내하자, 주문을 걸 필요도 없다.

관심을 갖고 보면 보이고, 보이면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된다고 어느 시인이 외쳤었지 아마? 자꾸 보다 보면 어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작년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이며, 어제는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새싹처럼 돋아나고, 작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유레카처럼 홀연 떠올라오기도 한다.

봄 꽃 중에 개불알꽃이라는 게 있는데 그런 이름을 처음 붙인 그 사람도 아마 나처럼 한없이 넋 놓고 보던 중에 불현 듯 그것을 발견했던 것이리라. 꽃송이 하나의 전체 크기가 갓난아이의 손톱보다도 작은 꽃에서 수캐의 그것을 발견한다?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현미경을 들이대지 않는 한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보고 또 보고 깊이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뭔가 다른 것이 보인다.

윤구병 선생이 ‘잡초는 없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냈을 때 나는 도시 사람이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걸음걸이도, 심지어는 언어까지도 전라도 시골 것은 가능한 한 다 내버리고 서울 사람 행세를 했었다. 전라도 티가 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뜬소문이랄까 세태랄까, 하여튼 그런 어떤 유행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한 짓이었다.

도시인 생활 삼십여 년 동안 나는 무슨 유익한 일을 해냈는가? 어느 하루 폭탄처럼 그런 의문이 나를 강타했다. 몇날며칠 밤잠을 못 이루고 그동안 걸어온 자취를 돌아본 결과 또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에게 못나 보이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잘나 보이려고, 잘난 체하는 연습에 몰두한 삼십 년 세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허무해졌고, 의기소침해졌고, 도시를 버려야 할 이유를 찾아서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어느 날 책방에서 우연히 ‘잡초는 없다’ 제목의 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그 책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 죄다 알 것 같았고, 그이가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특별히 편지를 쓴 느낌이어서 잡초는 없다, 잡초는 없다, 이 한 문장을 종교인들의 주문처럼 외고 다니며 생각을 다듬어 나갔다.

 

비단개구리
비단개구리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잡초는 없다.

없다?

맞아.

잡초란 게 있을 수는 없지.

세상을 인간에게 유익함이 많은가 적은가 하는 잣대로만 파악하다 보니 잡초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용어가 나온 것일 뿐이라고 봐야겠지. 이런 오만은 마치 유럽의 백인들이 아메리카에서 문명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디언을 못 살게 괴롭힌 것과도 같고, 일본인들이 북쪽의 키 작은 민족 아이누인들을 자기들과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몰살한 것과도 같은 이치인 거야.

하지만 풀은, 잡초는 좀 다르지 않나?

여기서 걸렸다. 내가 만일 시골 출신이 아닌 도시 출신이었다면, 잡초라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해서 그런 갈등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잡초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농사가 천직인 아버지와 어머니와 이웃 어른들을 이중 삼중으로 힘들게 괴롭힌 것이 바로 잡초였다. 콩밭에서나 고추밭에서나, 논에서나 밭에서나 잡초는 징글징글한 원수덩어리로 여겨져서 한 포기 뽑아낼 때마다 으이그, 으이그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뿐이었을까? 아니다. 굉장한 아이러니가, 모순이 거기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다. 징글징글하다고, 원망의 소리도 높게 뽑아내는 잡초가 사실은 매우 훌륭한 나물이요 된장국이요 반찬거리였다. 쑥부쟁이가 그렇고 질경이가 그렇고, 개망초가 그렇고 고들빼기가 그렇고, 냉이와 달래가 또한 좋은 반찬거리였다. 어머니는 당신이 징글징글하다고 외치며 뽑아낸 잡초 중에 일부를 집으로 가져가서 나물로 무치기도 하고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고, 간장이나 초장에 찍어먹기 좋도록 다듬어서 밥상에 올리곤 했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문제의식을 구체적으로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딱히 기억나는 항목이나 에피소드 같은 것도 없다.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지만 어렴풋이나마 이게 맞아? 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막연한 의문은 내 안에서 나이와 함께 점차 크기를 더해갔을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윤구병 선생의 ‘잡초는 없다’ 선언을 접하는 순각 즉각적으로 동의하는 마음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릴 수는 없었을 터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해서 그것이 있다고 하는 이른바 종 다양성이 생명 활동의 기본이고, 이 기본이 곧 민주주의라는 정치철학의 원리이기도 하다는 얘기를 내가 언제 어떤 계기로 접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여튼 뭐 그랬다. 그런 다양한 삶의 방식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단순명료한 도시의 소모품이 되어 날마다 조금씩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는 나 자신의 생명을 이제라도 어떻게든 좀 씩씩하고 바르게 세워보고 싶었다.

 

사랑초와 수선의 동거
사랑초와 수선의 동거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도시의 매우 깔끔하고 단순하게 정리해 놓은 정원을 보면 숨이 막혔다. 나무를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쳐내서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내 몸의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처럼 아팠고, 분재를 한다고 어린 나무를 철사 같은 것으로 친친 동여매서 휘어놓은 것을 보면 내 몸이 통째로 그렇게 묶여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혔다. 도시를 떠나야 할 이유가 자꾸 추가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용감하게 도시를 떠나 시골 살림을 시작했지만, 시골은 내 마음속의 시골이 아니었다. 마당을 페르시아 융단처럼 화사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채송화 씨앗을 사다가 뿌렸더니 보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 “오매 저것이 뭔 짓이다냐”였다. 마당은 마당다워야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데 채송화 따위가 무성하니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개구리가 있으니 다른 뭐가 또 튀어나올지 몰라 무서워서 한 발도 들여놓을 수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골은 이미 콘크리트가 유행이었다. 집집마다 마당에 콘크리트를 두껍게 깔아서 단 한 포기의 식물도 뿌리를 내리지 못 하게 꾸며 놓았고, 한쪽 구석에 자연석을 세워놓고 사이사이에 철쭉이며 단풍나무 분재 같은 것을 심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도시풍의 화단이었다.

그런 꼴이 보기 싫다고 아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인가? 아니었다. 깊은 산속에서 하루 종일 새소리나 물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나 듣는 것은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에서 사람은 일단 기본 조건이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 그 목소리, 그 눈빛, 그 미소가 없는 세상을 나는 상상도 해볼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나는 또 한 번 공자의 불가근불가원 이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게,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되 내 삶의 방식을 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나무라면 나무라는 대로, 충고를 하면 또 그대로 그냥 싱긋이 웃기나 주는 것.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잡초가 우거진 마당에 쪼그려 앉아서 남몰래 고개를 끄덕인다.

잡초에 뭐가 있느냐고, 누군가 혹시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아마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힘이라고, 잡초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내장돼 있다고 말할 것이다. 봄이 어디서 왜 오는가를 알게 해주는 힘이 있음은 물론이요,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나아가서는 우주 전체와 지구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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