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조지아, 바투미2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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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수영

진은 수영을 좋아했다.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고 싶어 했고, 바닷가에 가면 해수욕장을 먼저 찾았다. 그가 부산 사람이라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은 분명히 수영을 잘했고 또 해수욕장에 어울리는 적절하게 탄 얼굴과 탄탄한 근육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지중해에 면한 터키 남부의 도시 안탈리아의 해수욕장에서 그와 함께 홍합에 밥을 채운 터키 음식을 먹었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레드불에서 협찬 받은 시뻘건 파라솔 아래에 누워 나는 생각을 하는 척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는 바다로 뛰어들어 한참 수영하다가 왔다. 수영을 하는 법을 알긴 알았으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던 나는, 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칠 수 없는 피아노를 보듯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영도, 피아노도 어릴 때 배우고 잊었다는 점에서는 같다.

수영을 배웠던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텐데, 내가 얼마나 배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봐야 몇 달이나 배웠을까. 그래도 나는 곧잘 따라가는 편이었고, 수영이 끝나고 먹는 육개장도 좋아했다. 자유형으로 수영장 레인을 몇 번 왔다 갔다 할 줄도 아는 건강한 어린이였고, 잠수하는 걸 특히 좋아했다. 잠수를 잘 하지 못했던 친구를 혼내는 친구 누나 앞에서 보란 듯 잠수를 하며 자만했던 기억도 생생할 필요는 없을 텐데, 잘 기억난다. 수영장 특유의 염소 냄새와 쭈글쭈글했던 손가락의 감촉 같은 것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고작 잠깐의 잠수를 할 수 있으며, 자유형을 따라하지만 이내 가라앉다가 개헤엄을 지속하는 사람으로 컸다. 진이 바다를 향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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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조지아 바투미에 와서 바로 바다를 찾았다. 안 그래도 빨리 오랜만에 수영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중해에서 몇 번 수영을 한 이후로 수영할 기회가 없었다. 중간의 어느 도시에 묵을 때 근처 폭포로 수영을 하러 가려고 했으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블로그에서 수영할 수 있다고 보았다며, 진은 못내 아쉬워했다. 그랬던 진은 처음 온 나라의 해수욕장의 바다로 신나게 들어갔다. 흑해 동쪽 조지아의 휴양 도시 바투미는 분명히 도시였지만 그렇게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우리가 묵는 곳에서도 적당히 걸어서 바다에 닿을 수 있었다. 바다의 색이 검기 때문에 이름이 흑해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괜히 흑해의 물은 더 검어보였다.

진이 멀리 헤엄치러 간 사이 나도 일단 물속으로 들어가 잠수를 했다. 물에서 눈을 뜰 수 없으니 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눈을 감고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가 머리를 들어 올렸고, 뒤돌아보면 내가 어디에서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알아서 눈을 감아 캄캄한 바다가 나의 흑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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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학예회

수영을 끝내고 보았던 노을이 지는 저녁, 흑해의 노을은 왜인지 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던 저녁, 열려 있던 강당에 무심코 들어가 보았던 공연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진과 내가 바다에서 나왔을 때는 이제 조금씩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참이었다. 해수욕장을 지나면 바로 도시가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넓은 공원이 띠처럼 이어져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걸었던 공원은 나무가 많았고, 이제 막 들어오는 가로등의 나무의 초록색이 비추어 촉촉함과 축축함 사이의 생기를 띠었다. 사람들이 가볍게 웃으며 지나갔다. 길거리에 비치된 탁구대에서 사람들이 탁구를 쳤다.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공공 탁구대인 것 같아, 진에게 탁구 대결을 신청하고 처참하게 졌다. 소란스럽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은 적절한 평화가 그 공원에 깃들어 있었다. 이때 느낀 평화의 분위기를 조지아에서 느낄 일이 많았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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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더 걸었더니 어느 학교 강당 같은 곳이 나왔다. 바투미 시민들이 함께 쓰는 작은 강당 같은 건물인 것 같았는데, 그때는 그걸 생각할 틈도 없이 소리가 나는데 들어가도 막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조용히 슬쩍 들어가 보았다. 돈 내고 보는 공연 느낌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보는 축제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무슨 축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전통 복장을 입고 떼를 지어 전통춤을 추는 것으로 봐서는 일종의 학예회였던 것 같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학예회에 진과 나는 기분 좋게 어리둥절해서, 널널하게 남아 있는 뒤쪽 자리에 앉아 구경했다. 아이들의 복장은 붉고 푸르고 화려했고, 춤에는 세련된 맛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이끌렸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깜짝 공연을 30분 정도 보다가, 배가 고파서 다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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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는 조지아에서 내내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옆 나라 아제르바이잔의 별칭이 불의 나라라면, 조지아의 별칭은 물의 나라다. 정확히는 산골짜기 물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오래된 고서 같은 산골짜기 물의 나라 같았다고 해야 할까. 소련에 속해 러시아와 오래 얽혀 동구권 특유의 투박한 분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동구권 특유의 차분함이 조지아의 느낌과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다. 투박하고 차분하지만, 러시아의 인상처럼 무표정이고 사나운 느낌은 거의 없었다. 오래 머물며 조지아의 역사까지 공부했다면 이 나라의 정서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잠깐 지나던 여행자의 눈에 조지아 사람들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음식도 대부분 토속적인, 비교적 집밥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쉽게도 내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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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는 커피가 아니라 와인이다

내 입맛에 맞았던 것은 조지아의 와인이었다. 조지아는 커피가 아니라 와인이 유명한 나라다. 전 세계에서 와인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최소한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주종을 가리지 않고 여러 술을 즐기는 편인데, 와인만은 굳이 찾아 먹지 않는 편이었다. 이상하게도 와인을 먹으면 숙취가 심했다. 맛의 관점에서도 와인은 내게 떫은 포도주스였다. 섬세한 혀가 있었다면 탄닌감이니, 바디감이니, 가죽 냄새니, 하며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었을까. 와인의 세계는 내게 늘 조금 멀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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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와인은, 다른 생각 하나 없이 좋았다. 단 걸 싫어하는 내게, 조지아 와인이 단지 달아서 맛있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조금 달았는데(물론 내가 단 와인을 샀을 수도 있다), 추천 받아 사 먹은 와인은, 너무나 청량했다. 신선했다. 깨끗했다. 상쾌했다. 그때의 첫 모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여러 수식어를 붙이고 싶을 만큼 좋았다. 수영과 탁구를 마치고 돌아와 진과 와인을 나누어 마셨다. 숙소의 부엌에서 돼지고기를 굽다가 조금 태우는 바람에 눈치를 받았지만, 빠르게 미안해한 이후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셨다.

조지아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와인을 3잔 먹으면 곰이 되고, 3잔 더 마시면 황소가 돠고, 3잔을 더 마시면 새가 된다는 이야기. 그날 진과 내가 먹은 와인은 몇 잔이었을까. 적어도 나는 곰과 황소와 새와 인간을 반복하며 윤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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