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우쉬굴리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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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호하는 탑 앞에서

내가 선물로 건네준 마그넷을 들고 B는 이 굴뚝 같이 생긴 게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는데, 그 대답을 위해서는 내가 지나온 어떤 마을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다. 긴 여행 끝에 어느 외딴 마을에 갔고, 그 외딴 마을에서 어떤 굴뚝을 보았고, 그 굴뚝이 설명할 수 없이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야 했다. 벽돌로 지어진 우뚝 솟은 그 탑을 보고 내가 얼마나 기이하게 평화로웠는지, 그 느낌을 어떻게든 간직하기 위해 마그넷을 샀는지, 그걸 너에게 하나 건넬 만큼 네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구태여 뒷말 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B에게 설명했다. 조지아라는 나라에 갔어. 산골짜기 마을에서 들어가는 산골짜기 마을이 있는데, 거기에는 평소에 식량창고로 쓰다가 적이 침입하면 올라가 마을을 지키는 탑이 군데군데 있었어. 나는 그걸 보면서, 이상하게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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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탑의 이름은 코쉬키, 영어로는 스반 타워라고도 불리는 모양이었다. 조지아 북서쪽 스바네티 지방에만 있는 탑이라고 했는데, 메스티아에 머물 때도 군데군데 보이던 탑이었다. 너무 얇지도 굵지도 않은 벽돌이 든든하게 이어지고 그 끝에는 지붕 모양이 얹힌 처음 보는 모양의 탑이었다. 그 탑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상하게 그 탑이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계속 보게 되고, 되레 왜 계속 보게 되는지를 반추하게 만드는 탑이었다. 눈에 띄게 아름답지도, 압도될 만큼 거대하지도 않은, 그저 그렇게 투박하게 서 있는 탑. 메스티아에서 처음 탑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탑에 대해 생각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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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티아를 떠나기 전에 진과 나는 우쉬굴리라는 마을에 들리기로 했다. 이미 꽤나 산골짜기인 메스티아에서 제대로 닦이지 않은 산길을 타고 2시간이나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들렸다 온 사람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 보라는 전해주는 마을이었다.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했던가, 조지아를 유럽이라고 친다면 유럽에서 사람이 사는 마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무척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그런 마을이라면 한번쯤 다녀오는 게 맞겠다 싶어, 하루를 잡고 다녀왔다. 메스티아부터 우쉬굴리까지 며칠 산길을 걸어 다녀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시간이 없는 우리는 버스에서 2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쪽을 택했다. 운전대를 잘못 돌리면 모두가 한참 굴러 떨어질 산길에서, 터프한 버스 기사도 조심조심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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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산길을 지나 도착한 우쉬굴리는, 정말로 작은 마을이었다. 멀리서 보면 한 손에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소담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마을을 유독 작아보이게 만드는 것은 마을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마을의 양 옆으로 두 산등성이의 비탈이 깨끗하게 갈라지고, 그 사이에 마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먼 설산의 끄트머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풍경이었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고, 마을을 떠도는 개들과 집 근처에 묶인 말들이 조용한 소리를 냈다. 마을의 곳곳에는 내가 오래 바라보았던 코쉬키가 군데군데 서 있었다. 왜 그렇게 그 탑들이 영험해 보이던지, 코쉬키가 서 있던 간격, 그 모양, 그 느낌 모두 잊을 수 없다. 마치 마을을 지키는 묵묵한 수호신 같았다. 적절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작은 풍경에 섞여 이 모든 공간을 지키는 수호신.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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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마을의 수호신이다

우쉬굴리에서 1박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마을 곳곳을 좀 돌아보다가 갈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시작해 빙하 트레킹을 할 수도 있다던데, 날씨 때문인지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얕은 비가 계속 되었고, 포장되지 않은 마을의 길은 검은 진창이 되었고, 그래서인지 마을은 평범한 일상 그대로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돌담 아래 젖은 물기를 터는 가축들과 중세를 지나며 지어졌을 법한 투박한 마을의 건물들. 코쉬키가 보호하고 있는 이 마을이 언제부터 이렇게 있었을까, 궁금했다. 오래전 몽골인들이 침략해 왔을 때도 이 산간벽지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는데, 이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곳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을지,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젖은 마을을 걸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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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마을은 정감이 가서 좋았지만 뜻하지 않은 난점도 있었다. 날씨 때문인지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었다. 운영 중인 게스트하우스나 식당은 마을 주민들이 소일거리로 열어둔 느낌이었는데 마을의 규모상 애초에 그렇게 많지 않았다. 비도 오고 사람도 없는데 굳이 식당 문을 열어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열려 있는 곳이 있었는데, 작은 식당에 여행자들이 몰려 자리를 잡기 어려워보였다. 진과 나는 일단 그냥 더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고 걸어 다녔다. 무언가 방법이 있겠지 싶었고, 정 안 되면 돌아가서 먹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카페’라고 현판에 붙은 한 집을 발견했고, 묻는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니니 우리는 닫힌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문을 열어준 할머니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셨는데 손짓 발짓으로 우리가 밥을 먹을 수 있는지 묻자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 그야말로 가정집이었다. 나무가 삐그덕거리고, 거실에서는 아주 오래된 듯한 작은 정육면체 텔레비전에서 오래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딱히 메뉴를 고를 수도 없어서 그냥 나무테이블에 앉아, 우리를 멀찍이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어색한 눈웃음을 주고받았다.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앞에 고정되어 고개를 사선으로 떨구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갑작스럽게 노부부의 일상에 불시착한 우리는 젖은 옷을 털고 음식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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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맛있었다. 그야말로 조지아 가정식. 다른 곳에서 먹었던 조지아 음식들을 조금 더 집밥처럼 내어 놓은 느낌이었다. 빵과 스튜 같은 것들. 배고픈 채로 먹어서인지 정확히 무얼 먹었다는 기억보다는 기분 좋게 먹었다는 감각만이 남아 있다. 다 먹고 나니 묻지도 않았는데 커피까지 내어주셨다. 인심이 참 좋은 마을인가, 이런 게 현지인의 정인가··· 싶었으나 할머니는 빈 노트에 가격을 표시하며 커피 값까지 모조리 청구했다. 시내 보다 한참 비싼 가격. 외진 마을이니 바가지는 아니었을 것이고, 맛있게 먹었으면 되었다. 착각한 우리가 웃겨서 계속 배부르게 웃으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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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쉬굴리를 떠나기 전, 설산과 바로 마주할 수 있는 마을의 끝 쪽으로 향했다. 마을의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마을이 끊기고, 설산까지 바로 이어지는 넓은 지대가 바로 보인다. 양 옆으로의 산등성이와 설산뿐인, 아무도 없는 자연의 면면. 그 뒤를 돌아보면 조지아 정교회의 사제처럼 보이는 사람이 얇고 기다란 막대기로 만들어 놓은 십자가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묵상에 잠긴 듯했다. 자연 앞에서의 묵상. 끝으로, 끝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우리 곁으로 개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따라왔다. 개는 마치 우리와 언제나 이렇게 걸었다는 듯이 기쁨도 근심도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따랐고, 앞서 걸었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곳에 다다라 벌러덩 누웠다. 너도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니, 개에게 물었지만 개는 대답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되어 우리가 다시 뒤로 돌아갈 때까지 개는 그 자리에 계속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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