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카즈베기
세상의 끝, 카즈베기
  • 정민기 기자
  • 승인 2023.07.19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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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카즈베기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카즈베기 가는 길

카즈베기는 산맥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고 했는데, 조지아에서 산맥은 사실 흔한 풍경이니 그렇게 특이한 풍경은 아니었겠지만 조지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들리는 곳인 모양이었다. 산맥이 병풍처럼 바로 앞에, 아니 벽처럼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카즈베기의 사진을 보며 그 앞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일렬로 늘어선 산맥이 있고, 그 앞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의 꼭대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성당이 있다. 산맥이라는 벽을 마주한 성당. 트빌리시에는 카즈베기를 다녀온 이후로 조금 더 묵을 생각이었으므로, 진과 나는 다시 돌아올 도시를 떠나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 구글맵을 뒤져 다두베역으로 갔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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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역전은 사람들로 붐볐다. 기차를 타고 카즈베기를 가는 방법은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 앞에서 카즈베기로 향하는 버스를 잡아보려고 했다. 아침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세련되지 않은 허름한 길거리, 그러나 편하게 생기 넘치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버스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어쩐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찾지 못했다. 배고프다. 아무래도 배가 고픈 것 같다. 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우리 같은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 기사들이 말을 걸어 왔다. 밤의 사당역 앞에서 수원으로 향하는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의 택시 기사들이 떠올랐는데, 이쪽의 사람들은 정식으로 운영하는 택시는 아닌 듯했다. 마치 카풀처럼 관광객들 몇 명을 묶어 태워 다녀오는 부업처럼 보였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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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걸어온 사람들 중 한 명은 몸집이 굵고 시원시원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침인데도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다. 진과 나는 배가 고팠고 다른 생각을 더 하기는 싫었고 아주머니가 말한 금액이 그렇게 터무니없지도 않아서, 결국 그 차를 타고 카즈베기로 가기로 했다. 우리 둘을 확보한 아주머니는 다른 승객들을 더 찾아보겠다며 사라졌다. 밥을 간단히 먹고 올게요, 라고 말할 새도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거니 하며 근처 매대에 케밥 같은 음식을 먹으러 갔다. 케밥이야 늘 금방 나오니 먹으며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우리를 애타게 찾는 모습을 보았다. 그사이 어느 동유럽의 여행자 두 명을 구해 차에 태워 놓았던 아주머니는 우리를 찾지 못할까봐 잠시나마 전전긍긍한 얼굴이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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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에 탔고, 차는 몇 시간 동안 카즈베기로 향하는 직선 같은 길을 향해 나아갔다.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나는 혼자 음악을 들으며 점점 시골로 변해가는 풍경을, 사람은 줄어들고 풀과 나무가 늘어나더니 점차 고도가 높아지고 언덕이 보이는 풍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낡은 차의 배기음 소리가 가끔씩 들렸다. 방금 지나온 다두베역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장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한 번도 직접 겪지 못한 옛날이지만 어쩐지 그 옛날의 시간을 잠시 구경하고 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지금은 정말로 기억의 한 켠에 놓였으니, 시간은 금세 지나고 기억은 늘 낡은 것들을 머리 한 가득에 쌓아두게 만든다. 창에 기대 산을 바라보며 내가 이런 생각을 했을 리는 없지만, 기억이 기억이 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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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달려 카즈베기에 닿아갈 때쯤에는 고도는 점차 높아지고, 정말로 산맥 한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세워준 절벽의 스팟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떤 전쟁을 기념하는 듯한 거대한 조형물과 절벽을 내려다보는 많은 관광객들, 조지아 국기를 들고 중세 시대 갑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그 뒤로는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고 싶으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가라고, 택시 아주머니는 이야기했다. 한 5만원쯤 하는 가격이었나. 매번 패러글라이딩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기회인가 싶어 한참을 고민했으나, 긴 여행에서 갑작스럽게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창밖으로 보며 카즈베기로 갔다. 나는 이 이후로도 패러글라이딩을 할 기회를 몇 번 만났는데, 하나 같이 다 5만원이었고, 나는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더 비쌀 텐데 그때 그 5만원이 왜 그렇게 아까웠는지.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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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츠민다의 성당

카즈베기라고 부르긴 했지만 정확히 그 마을의 이름은 스테판츠민다였다. 카즈베기 봉우리가 보이는 계곡의 마을. 나는 그토록 넓고 깊은 계곡을 본 적도 처음이었고, 그 계곡 한 가운데 놓인 너른 마을을 본 것도 처음이었으며, 무엇보다 계곡 앞에 산맥이 그렇게 벽처럼 존재하는 것도 처음 보았고, 그 벽 앞에 언덕이 하나 우뚝 솟은 것도 처음 보았다.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점심 때쯤 도착한 스테판츠민다는 햇살이 적당히 내리쬐고 있어서, 마을에는 약간의 활기가 돌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지도 않은 시골길이었지만 생기가 돌았다. 몇십 년 전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던 마을이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게스트하우스가 가득한 마을이 되었다고 했다. 진과 나는 간단히 점심을 먹었고, 역시나 여기서 먹은 돼지고기꼬치도 짰다. 나는 아직도 우리가 운이 안 좋아서 별로인 음식점들만 간 건지, 조지아 음식이 우리와 안 맞았던 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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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나는 마을의 언덕 맨 위에 있는 성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을 향했다. 언덕이라고는 해도 1시간쯤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야 했다. 한참 체력이 좋지 않은 때였던 나는 앞서 올라가는 진의 튼튼한 허벅지를 바라보며 겨우 그를 뒤쫒아 올라갔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뒤를 돌아보면 갑자기 눈을 가득 채우는 벽 같은 산맥이 보였다.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경사가 완만해지며 들판 같은 부분이 나왔고, 그 뒤로 조랑말들이, 사람들이 성당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 좋은 연두색의 풍경 뒤로 위압적인 산맥이 섞였고, 그 아래서 꿋꿋이 서 있는 성당의 모습은 정말이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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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맥은 바로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내어주고, 그 죄로 묶여서 독수리들에게 간을 쪼아 먹혔다는 그 산맥이었다. 정말이지 저런 벽 같은 곳이라면, 묶여서 오래 아파했을 프로메테우스를 향해 수많은 독수리가 날아올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저 뒤로는 바로 러시아였다. 몇 해 전 러시아를 여행할 때 저 반대편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 높은 산을 두고 그 반대편에 왔구나 싶어서, 약간의 감상에 젖었다. 산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작은 마을의 풍경. 지나친 웅장함과 상당한 아기자기함이 뒤섞여 있는 스테판츠민다에서, 나는 잠깐이나마 세상의 끝에 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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