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베란다 창을 통해 스미는 아침 햇살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 멍하니 넋을 내려놓은 채 창 너머 보이는 아파트 외벽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하늘을 찾아내었다. 주말 아침은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고서야 일어나는데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일찍 깨었다. 아마도 전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덕분일 것이다. 내가 잠드는 시간은 한창 밤이 깊은 두 세시 정도이다. 집안일을 마무리 하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어느새 시간은 한밤중으로 치닫고 있었다. 매번 그러다보니 평일에는 눈뜨는 일이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방충망 사이를 뚫고 들어 온 빗소리는 이른 새벽, 희뿌연 내 의식을 두드려 깨운다. 땀구멍마다 내리 꽂히던 한 여름 날카로운 더위 대신 소름이 돋아 오른다. 발치에 휘감긴 이불 끝자락을 끌어 왔다. 회색빛 허공 어딘가에서 부터 날라 댕기다가 지상으로 처박히는 투명한 화살들은 나의 관절 관절마다 도사리고 있는 통증들을 건드린다.이곳저곳 몸땡이가 아파오기 시작한 건 십 수년 전 부터이다. 시작은 어깨였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버겁고 욱신거리던 어느 날,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으로 몸을 가눌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요즘처럼 날이 덥고 후덥지근할 때면 집에서 뭘 해먹는 것도 일이다.특히 나처럼 먹는 일에 큰 관심도 없고 게다가 음식솜씨는 요린이에 가까울 정도로 젬병이어서 삼시세끼 먹거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 계절을 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얼마 전 부터는 자연스레 하루에 두 끼만 해결하는 것으로 생활패턴이 바뀌게 되었다. 사실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서 먹는 시간보다는 잠을 선택하는 것이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국룰이 아니던가.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남편은 아침식사를 하는 게 오히려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며칠 전 미용실을 다녀왔다. 줄곧 짧은 커트 머리를 유지하다가 한동안 내버려 두었더니 덥수룩하고 어정쩡한 길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용실을 갈까 말까의 고민과 머리를 길러 볼까 말까의 고민사이에 봉착하는 동안 머리카락은 자유분방하게 제 멋대로 삐쳐나가고 있었다. 소싯적에는 허리까지 기른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나름 멋을 부리고 다녔다. 가끔은 어느 연예인이 유행시킨 사자머리 펌을 하기도 하고 와인칼라의 코팅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짧은 머리가 그리워질 때면 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서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내가 운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 즘이었다. 그 전에는 튼튼한 두 다리와 대중교통이 최고의 이동수단이었고 운전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차량을 운전하는 일은 기계를 조작하는 일과 같은 맥락으로 여겨져서 나와 같은 기계치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야라고 치부하였다. 그 때는 여성 운전자의 비율이 높지 않았고 게다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설령 면허가 있다 하더라도 운전을 할 차량도 없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상황에 차량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새벽의 찬 기운이 아직은 낮게 깔린 이른 아침이었다. 게다가 한가롭고 평온한 일요일이었다. 출근하는 사람도 없고 학교 갈 사람도 없으니 그야말로 해가 중천에 도착할 때쯤이나 일어나도 된다. 누룽지를 한소끔 끓여서 멸치 볶음과 함께 늦은 아점을 먹고 잠시 멍을 때릴 것이다. 밀려 있는 빨래들은 세탁기를 두어 번 돌리면 될 것이고 새내기 MT를 떠난 아들이 돌아 올 때를 기다리며 간단한 청소를 하고 저녁을 준비하면 그럭저럭 보람찬 일요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 하루를 위해서 치열한 평일을 보내지 않았던가.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중학생 때였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어교과서에서 처음 접한 이 글귀는 미국 속담이다. 학창시절이 아득하고도 먼 옛날이라 영어로 된 문장은 잊어버려서 번역기를 돌렸더니 이렇게 나온다. ‘Don’t look a gift horse in the mouth.’비록 영어 문장은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이 글귀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동물의 입속을 들추어서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굉장히 해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다는 것도 낯선 이야기였다. 간혹 집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방학을 맞아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 거리던 딸아이가 어느 날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진다.“엄마, 외할머니 뵈러 안 가?”여느 대학생들처럼 알바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만나러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공 학업에 매진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이 내심 한심해 보였는데 가끔은 저렇게 입바른 소리를 툭 던질 때는 나보다 낫구나 싶기도 하다.엄마를 면회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자가진단키트를 준비해 가서 검사를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요양원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살다 보니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들이닥쳤다.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지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광속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흩날리는 봄꽃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두터운 겨울 외투를 내려놓는가 싶었는데 화살촉 같은 한 여름 햇볕이 땀구멍 마다 내리 꽂혔다. 변화무쌍한 세상사와는 담을 쌓으며 변함없는 매일 매일을 살았는데 발걸음마다 서걱거리는 낙엽이 밟혔다. 그러다 보니 며칠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고 성탄절이 다가 온다. 도무지 따라 잡을 수 없는 광속의 세월은 눈가에 잔주름을 조각하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한국전쟁 당시 무방비 상태로 북한의 침략을 받은 우리 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가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북진을 하였다. 그러다가 미리 압록강을 건너 숨어있던 중국 인민군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를 본 UN군은 새까맣게 밀려들어오는 중공군들을 human-wave-strategy라고 표현하며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해전술이다. 사람의 머리가 흡사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이며 끝도 없이 몰려든다면, 더구나 적군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살아남는 전쟁터에서 검푸른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맑고 청명한 가을의 하늘이 흐르고 있다. 어느새....머리 꼭대기를 향해 내리꽂던 한 여름의 태양이 힘겨웠던 때가 언제였나 싶게 계절은 또 바뀌어 간다. 희한하게도 지난 계절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오직 더웠다는 맹목적인 사실만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태어나서 철이 들고 계절의 순환을 수 십 번씩 겪으며 살다 보니 이제는 특별히 기억할 것도 남길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시간들이고 세월들인가 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계절은 서늘한 바람을 동반하고 주변을 아름답게 물들이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아침이 오면 괜히 바쁘다. 정시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도 아니고 아침밥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야 하는 아이도 이젠 없다.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임에도 집을 나서기 전까지의 아침 시간은 늘 분주하다. 아침잠이 많아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에 부치니 더욱 그러한 것 같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저녁거리부터 생각한다. 이젠 식구들이 저녁 한 끼만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쌀도 미리 씻어놔야 하고 먹을 만한 반찬이 있는 지도 확인한다. 양치를 하면서 냉장고를 두 서너 번은 열어 보는 것 같다. 저녁에 해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고등학교 재학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는 장면이다.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들을 훈육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차례로 불러내어 우선 학생의 볼따귀를 잡은 뒤 아버지의 직업부터 묻는다.학생의 인권이나 개인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전무했고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교사의 폭행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때였다. 다짜고짜 학생의 볼따귀를 잡고 앞뒤로 흔들다가 결국엔 싸대기까지 날리는 장면은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적정한 수면은 몇 시간이면 될까?연구 결과도 많고 그에 따른 의견도 분분 하겠지만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은 수면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의 경우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성장 호르몬을 가장 많이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권고한다. 깊은 잠에 들어 있어야 성장 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성장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양질의 수면은 무척 중요하다. 숙면을 취함으로써 피로에 찌든 몸을 회복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들개’라는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스물을 조금 넘긴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어느 날, 자신을 야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어깨너머로 수 십 권은 되어 보이는 책 보따리를 짊어진 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 왔다. 사무실 밀집 지역을 돌면서 책을 대여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라며 책을 읽어보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다.요즘으로 치자면 이동식 도서 대여 서비스 같은 개념일 것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남자는 어깨에 걸친 책 보따리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상체가 휘어진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시커먼 커피 한 잔을 타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베트남 산 커피의 진한 향기와 함께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증기가 마치 분출하기 직전의 화산 꼭대기 연기 같다. 나의 고정석인 이 식탁 의자는 식사를 할 때는 물론이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지지고 볶고를 반복하다가 지쳤을 때, 모두가 잠든 후에 혼자 조용히 손뜨개를 할 때, 지금처럼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 때도 애용하는 자리이다. 나의 사랑을 독차지 한 이 의자의 바닥면은 내 엉덩이를 박제해 놓은 모양새가 돼버렸다. 언제 어느 때 털썩 앉더라도 이질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였다.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한 체 세월의 두께만큼 눌려있던 앨범 속 희뿌연 흑백 사진 같은 그 동네는 단층의 한옥들과 허름한 가게들이 질서를 지키며 즐비해 있었다. 아스팔트가 덧 씌워진 신작로는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를 향해 뻗어 있었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차량이나 정화조 차량, 그리고 엿을 파는 아저씨의 리어카만이 굴러다니는 바퀴의 전부였다. 우리 집은 신작로에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야만 다다를 수 있었는데 그 골목길에는 네 개의 집들이 서로 대문을 마주보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남편의 성격은 예민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예민하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는 잘 몰랐다. 다들 그렇겠지만 연애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의 콩깍지 하나씩 덮어 쓰는 시기인지라, 그의 밑도 끝도 없는 예민함 따위는 본인도 주장하지 않았을 테고 나도 느끼지 못하였다.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뒤덮이기 시작한 콩깍지는 어수룩한 성격을 매력으로 둔갑시켰고 행여 단점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들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등지에서 수 십 년간 도를 닦은 도인마냥 장점으로 승화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늦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운전한 경우가 몇 번 있다. 아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연휴를 맞이해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때였을 것이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아이들은 여독에 지쳐 뒷좌석에서 뻗은 지 오래 되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고속도로일수록 주변은 더욱 어둡다. 게다가 주행하는 차량이 극히 드문 한밤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조등과 상향등에 의지한 채 뚫어져라 전방을 주시하며 주행을 하다보면 아무리 달려도 계속 따라 붙는 칠흑 같은 어둠은 귀경길의 유일한 동반자이다. 짧았던 여행의 일정을 다시금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지난 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 난타 출강을 하는 곳이 있다. 인근의 한 아파트 경로당이다.지역의 노인 복지관 소속으로 어르신 대부분이 7,80대 할머니들이시다. 물론 경로당 내부에는 할아버지 방도 있지만 할머니들이 많이 이용하시는 듯 했다. 노인 복지관에서 관리를 하는 시설이어서 출강 섭외를 해 온 사람은 복지관의 사회복지사였다. 어느 날 자신을 사회복지사라고 소개를 하며 내게 난타 출강을 의뢰해 온 것이 벌써 2년 전이었다. 수업시간이며 여러 가지 세부적인 사항을 합의하고 수업을 나가기로 하였는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