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 우리가 아시아인이라는 것- 김혜순, 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학과지성사, 2019시작하는 것이 어려울까 끝내는 것이 어려울까? 혹은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울까 끝내는 것이 더 어려울까? 온통 시작과 끝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에서 적어도 오늘의 나는 끝내는 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어떻게 눈 딱 감고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끝은 도대체 언제 눈을 딱 감아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눈을 딱 감아 버리기에는 이미 해버린 것과 봐버린 것이 너무 많은걸…. 여행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단어란 원체 힘이 세서, 서로 다른 단어가 붙을 때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 이를 테면 가족과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여보자. 가족여행. 가족과 여행 이미 참으로 복잡미묘한 단어인데, 끝까지 힘들 수도 있고, 끝모르고 좋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두 단어가 합쳐진 ‘가족여행’은 그 상반된 마음이 두 배가 된다.어렸을 때는 자주 다니지는 못했던 가족여행을 어느 순간 연례 행사처럼 가게 되었던 것은, 이제라도 다른 가족들처럼 해외여행도 함께 다니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때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탕후루를 한 입 베어 물은 그때요즘 유행한다는 탕후루를 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결국 한 입 먹었을 때, 혀가 아플 정도로 달았던 설탕의 맛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오래전에 내가 있었던 어떤 밤을 떠올렸다. 핥아 먹는 게 좋을걸, 깨물어 먹으면 입에 달라 붙어, 친구는 말했다, 요새는 어딜가든 탕후루 가게가 있다고 설탕을 얇게 입히는 곳이 있고 두껍게 입히는 곳도 있고 다 제각각이라고 자기는 얇게 입히는 곳이 더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찐득하게 떨어지는 설탕물이 꼬치 아래에 끼워둔 작은 종이컵으로 떨어졌다. 쓰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한국이라는 섬긴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한국은 정말 이제 섬과 같은 나라구나, 비행기가 아니고서는 돌아올 방법이 없구나 생각하며 왜인지 늘 밤 풍경으로 기억되는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피곤한 얼굴을 비추어 본다. 이 나라에서는 직접 북쪽으로 올라갈 수 없게 된지 거의 70년, 북쪽으로 올라가 망원경으로 비추어 본 풍경은 황량하고 거대한 유사 사회주의 선전문구들. 한국이 점점 더 섬나라 특유의 특징을 갖추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그 특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너의 조국은 팔레스타인몇 번의 여행 중에 나는 딱 한 번 팔레스타인 사람을 마주쳤는데, 그는 수염이 복슬복슬하고 곰돌이 푸 같은 체형에 환한 웃음이 아름다운 남자였다. 처음 마주친 여행객들이 처음 말문을 열기 위해 시작하듯이 그와 나는 서로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다. 한국? 서울? 좋은 곳이라고 들었어. 그는 몇몇 외국인들이 그렇듯이 진지하게 혹은 장난 섞인 채로 북한이냐 남한이냐 묻지 않았다. 언젠가 한국에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가벼운 말만을 남겼다. 나는 팔레스타인에서 왔어. 팔레스타인? 내가 한 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사랑해요 연예가중계거대한 한증막인 것 같아 이곳은, 이런 날씨를 경험한 적이 없을 몇몇은 이렇게 말했고, 가나에서 온 청년 몰은 그렇게 덥지는 않다는 듯이 늘 긴 청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려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돌아다녔다. 한여름 우즈베키스탄의 온도는 40도가 넘게 올랐는데, 습기가 전혀 없어서 그늘에 있으면 그래도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그래도 낮시간에 어딘가로 움직이려면 태양 아래에 들어가야 했다. 아직 그늘과 에어컨 켜진 방에서 늘어져 있는, 전날에 술을 먹고 자고 있는 여러 나라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오밤중의 수박 파티, 웨스트 코리안수많은 수박으로 둘러쌓인 오밤중의 파티에, 그것도 외국인으로 둘러싸인 파티에 갑작스럽게 초대되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막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도착한 서늘한 여름밤 지친 몸으로 게스트하우스의 문을 열었을 때 풍겨 오는 수박 냄새를 나는 금방 맡을 수 있었다. 비릿한 단 냄새와 모르는 사람들의 체취가 섞여 있었다. 나를 반기는 대머리 아제르바이잔 주인 아저씨의 넉넉하고 단단한 미소가 나를 반기고, 향락에 취한 히피들 과는 다른 적당하게 나른한 배낭여행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노량진수산시장에서 타슈켄트를 말하기에어컨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웠던 우즈베키스탄의 게스트하우스 방바닥에서 유아나의 이름을 처음 물어보았던 순간, 나는 그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다른 나라 이곳저곳을 거의 여름에만 돌아다니며 이제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45도를 웃도는 우즈베키스탄의 폭염은 어쩔 수 없이 낯설었다. 건조하고 마른 햇빛이었다. 큰 빌딩 없이 수평으로 이어진 도시가 그 자체로 익어가는 한증막 같았다.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 있거나 에어컨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바쿠, 라는 도시일본 영화 는 똑 닮은 두 남자를 만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매력적인 첫 번째 남자친구가 어느 순간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여자는 첫 남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남자를 만나게 된다. 자유로운 더벅머리였던 첫 남자친구와는 다르게 단정한 직장인이지만 얼굴만큼은 똑같은 그 남자를 여자는 두 번째 남자친구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다시 첫 번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나게 되고 여자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사랑에 대해 묻고 있다. 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아제르바이잔에 왜 갔냐면우크라이나로 먼저 떠난 진을 보내고, 나는 한낮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냐가 키우는 하얀색 토끼가 건물 중정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금 떠난 진이 꼭 마트에 들렸다가 무언가를 잔뜩 사 들고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지만 그리움의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이 없는 텅 빈 상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트빌리시의 볕은 여전히 밝았고, 그새 익숙해진 몇몇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잠시 자리를 비웠다.나는 기어이 한국까지 가져갈 요량으로 구입한 조지아의 와인과 증류주 ‘짜짜’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예술의 다리에서 그 남자가 울고 있었다둘보다는 하나에 익숙한 여행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진과 한 달 동안 터키와 조지아를 여행하며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여행을 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는 행선지가 다른 각자의 여행을 하던 중이었고 단지 시간이 맞아 꽤 길게 함께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진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도 내 생각이나 감상에 몰두해 있었고, 거의 1년의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나온 진에게 나는 그저 잠시 여행을 나누는 동료였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서로를 존중하는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결국은 맥도날드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돌아왔을 때는 꼭 집에 온 것 같았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자리로 돌아온 진과 나를 사람들은 그대로 반겨주었다. 러시아인 스태프 다냐와 그녀의 토끼도 그대로 있었고, 머리가 반짝거리는 마른 태국 변호사 아저씨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카즈베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산이 얼마나 컸는지 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는 잘 들어주었다. 방에는 몇몇 새로운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과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국 방콕의 공식적인 명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2층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남자들방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가려 걸을 때마다 바닥의 나무가 약간씩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인트칠이 약간 벗겨진 창틀 사이로 빛이 있었고, 그 너머를 보면 초록색 산 풍경이 보였다. 작은 풀들이 길가 옆으로 나 있는 흙 오솔길, 언덕이 많지만 트여 있는 마을, 그 너머에는 더 거대한 산, 또 더 거대한 산, 그리고 끝에 보이는 만년설. 우리가 잡은 카즈베기의 숙소는 정말 헐렁하고 편했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별다른 서비스도 없었고, 그저 누군가 잠깐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카즈베기 가는 길카즈베기는 산맥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고 했는데, 조지아에서 산맥은 사실 흔한 풍경이니 그렇게 특이한 풍경은 아니었겠지만 조지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들리는 곳인 모양이었다. 산맥이 병풍처럼 바로 앞에, 아니 벽처럼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카즈베기의 사진을 보며 그 앞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일렬로 늘어선 산맥이 있고, 그 앞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의 꼭대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성당이 있다. 산맥이라는 벽을 마주한 성당. 트빌리시에는 카즈베기를 다녀온 이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습기 없는 물의 도시그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쉽다. 당장 구글지도를 켜서 확인해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토록 좋은 기억을 남기고 온 곳이 곧바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특별한 일이 있었냐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몇몇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고, 돌아 왔을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게스트하우스를 떠올린다. 물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는 것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당신에게 폐허의 의미는진과 나는 숙소에 조용히 쿠타이시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별다른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는데, 진은 무엇을 찾아보았는지 내게 폐허에 대해 말했다. 쿠타이시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버려진 폐허가 있다고,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진이 이야기했을 때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일 가보자고 말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별 다른 할 일이 없는 쿠타이시에서 조용한 일상을 하루 더 보내도 나쁠 것 없을 것 같았지만,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폐허라는 말이 마음이 동했다.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쿠타이시의 그 남자쿠타이시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지아의 중간에 그 도시가 있다고 했고, 우리는 단지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하고 있었으며, 이왕 조지아에 온 김에 한 곳을 더 들려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쿠타이시에 무엇이 유명한지, 어디를 둘러보면 좋은지는 물론 대충 찾아 보았는데, 구태여 많은 걸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도시에서 모르는 채로 있고 싶었다.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했지만 쿠타이시의 규모는 부담스럽게 크지는 않아 마음이 편안했고, 너르게 펴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나를 보호하는 탑 앞에서내가 선물로 건네준 마그넷을 들고 B는 이 굴뚝 같이 생긴 게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는데, 그 대답을 위해서는 내가 지나온 어떤 마을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다. 긴 여행 끝에 어느 외딴 마을에 갔고, 그 외딴 마을에서 어떤 굴뚝을 보았고, 그 굴뚝이 설명할 수 없이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야 했다. 벽돌로 지어진 우뚝 솟은 그 탑을 보고 내가 얼마나 기이하게 평화로웠는지, 그 느낌을 어떻게든 간직하기 위해 마그넷을 샀는지, 그걸 너에게 하나 건넬 만큼 네가 너를 얼마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메스티아 걷기우리는 산맥의 바로 아래 까지 온 셈이었다. 이 산맥을 넘으면 곧바로 러시아로 이어진다. 코카서스라고 불리는 넓고 긴 산맥. 누군가에게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기도 하는 산맥. 조지아는 코카서스 산맥을 따라 바로 아래 이어진 나라였다. 유럽의 끝, 아시아의 시작. 혹은 아시아의 끝, 유럽의 시작. 혹은 유럽과 아시아라는 불투명한 경계 그 자체를 보여주는 땅. 조지아의 서쪽으로 들어온 진과 나는 동쪽의 수도 트빌리시로 향하기 전 우선 서북쪽의 메스티아부터 들렸다. 거의 반나절쯤 걸려서 도착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당신은 택시를 믿으시나요?택시는 종교일까. 진은 택시를 믿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때로는 믿을 수 없는 게 택시 기사인데 어떻게 외국에서 택시 기사를 믿겠느냐고 진은 물었다. 내가 끄덕일 때 진은, 물론 좋은 택시 기사도 있겠지만 외국인인 우리가 그걸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구글맵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지도의 경로와 대중교통의 시간표에 대한 모든 정보가 구글에 있는 것은 아니기에, 택시 기사는 지나가는 여행자를 속이기 너무나 간단하다. 인천공항에서 줄지어 서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