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아제르바이잔에 왜 갔냐면우크라이나로 먼저 떠난 진을 보내고, 나는 한낮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냐가 키우는 하얀색 토끼가 건물 중정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금 떠난 진이 꼭 마트에 들렸다가 무언가를 잔뜩 사 들고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지만 그리움의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이 없는 텅 빈 상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트빌리시의 볕은 여전히 밝았고, 그새 익숙해진 몇몇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잠시 자리를 비웠다.나는 기어이 한국까지 가져갈 요량으로 구입한 조지아의 와인과 증류주 ‘짜짜’를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에게 있어 식량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지금 세계는 도시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도시 밖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면 그 어떤 도시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에도 평생 도시인으로 살아온 나는 시장에 들어오는 온갖 식재료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른 채 그저 돈 주고 사기만 했을 뿐이다. 시골에 사는 친척이 없어 농사도 구경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집에서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예술의 다리에서 그 남자가 울고 있었다둘보다는 하나에 익숙한 여행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진과 한 달 동안 터키와 조지아를 여행하며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여행을 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는 행선지가 다른 각자의 여행을 하던 중이었고 단지 시간이 맞아 꽤 길게 함께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진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도 내 생각이나 감상에 몰두해 있었고, 거의 1년의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나온 진에게 나는 그저 잠시 여행을 나누는 동료였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서로를 존중하는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요즘처럼 날이 덥고 후덥지근할 때면 집에서 뭘 해먹는 것도 일이다.특히 나처럼 먹는 일에 큰 관심도 없고 게다가 음식솜씨는 요린이에 가까울 정도로 젬병이어서 삼시세끼 먹거리에 대한 고민으로 이 계절을 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얼마 전 부터는 자연스레 하루에 두 끼만 해결하는 것으로 생활패턴이 바뀌게 되었다. 사실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차려서 먹는 시간보다는 잠을 선택하는 것이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국룰이 아니던가.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남편은 아침식사를 하는 게 오히려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패션의 유행이라는 것은 가만히 지켜보면 참 재미있다. 작년과 올해 초를 휩쓸었던 Y2K 패션의 유행은 내게는 일종의 아이러니였다. 왜냐하면 유튜브에 올라와 있던 2000년대 초반 드라마 영상들에 사람들이 댓글로 ‘옷이 저게 뭐냐’, ‘역시 패션 암흑기’ 같은 말을 적어 놓은 것을 그전에 꽤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런 Y2K 패션의 귀환이라니. 물론 과거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는 새로운 감수성을 덧입은 모양새이기는 했다. 그래도 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여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결국은 맥도날드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돌아왔을 때는 꼭 집에 온 것 같았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자리로 돌아온 진과 나를 사람들은 그대로 반겨주었다. 러시아인 스태프 다냐와 그녀의 토끼도 그대로 있었고, 머리가 반짝거리는 마른 태국 변호사 아저씨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카즈베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산이 얼마나 컸는지 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는 잘 들어주었다. 방에는 몇몇 새로운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과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국 방콕의 공식적인 명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살다 가끔, 그 남자들 생각이 난다.대학생 때 가출해서 절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무렵 함께 살았던 남자들 이야기다.대학을 휴학하고 집을 나와 무작정 찾아 간 곳은 설악산의 어느 유명한 절이었다. 세상 소음과 등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왔건만 유명 관광지여서 그런지 우리 동네보다 더 시끄럽고 복작거렸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 그 절의 사무장님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집 전화번호부터 적으라고 했다.“안 적으면 안 도와준다.”사무장님은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2층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남자들방에서 쉬다가 밖으로 나가려 걸을 때마다 바닥의 나무가 약간씩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페인트칠이 약간 벗겨진 창틀 사이로 빛이 있었고, 그 너머를 보면 초록색 산 풍경이 보였다. 작은 풀들이 길가 옆으로 나 있는 흙 오솔길, 언덕이 많지만 트여 있는 마을, 그 너머에는 더 거대한 산, 또 더 거대한 산, 그리고 끝에 보이는 만년설. 우리가 잡은 카즈베기의 숙소는 정말 헐렁하고 편했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별다른 서비스도 없었고, 그저 누군가 잠깐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카즈베기 가는 길카즈베기는 산맥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고 했는데, 조지아에서 산맥은 사실 흔한 풍경이니 그렇게 특이한 풍경은 아니었겠지만 조지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꼭 들리는 곳인 모양이었다. 산맥이 병풍처럼 바로 앞에, 아니 벽처럼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카즈베기의 사진을 보며 그 앞에 서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했다. 일렬로 늘어선 산맥이 있고, 그 앞에 약간 높은 언덕이 있다. 그 언덕의 꼭대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성당이 있다. 산맥이라는 벽을 마주한 성당. 트빌리시에는 카즈베기를 다녀온 이후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삶을 살면서 ‘물건을 산다’는 행위는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에게 피해 갈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아무리 무소유의 삶을 산다고 해도 최소한의 식재료와 옷과 같은 필수품은 사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자주 식재료를 구입해야 하는 주부들은 나름의 쇼핑 전략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전통시장에서 능숙하게 물건값을 깎는 협상을 하는 분들도 여러 마트를 돌며 가격을 비교하는 품을 파는 분들도 자기만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나는 쇼핑을 잘하지 못했다. 그나마 내게 가장 능숙한 쇼핑 품목은 책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습기 없는 물의 도시그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쉽다. 당장 구글지도를 켜서 확인해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그토록 좋은 기억을 남기고 온 곳이 곧바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특별한 일이 있었냐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몇몇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고, 돌아 왔을 때도 그 모습 그대로였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 게스트하우스를 떠올린다. 물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만 있는 것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지난 달, 책을 내고 많은 일이 있었다.태어나 생전 처음, 사인이라는 것을 해보았고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올려주신 리뷰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별점과 리뷰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좋은 말도 나쁜 평가도 세상에 책을 내어놓는 순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 하지만 몸에 좋은 쓴 말과 몸에 나쁜 쓴 말은 같지 않아서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한다.많은 분들이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리뷰를 읽었다. 그 중에 한 사람, 얼마 전 에세이집(‘이보다 더 좋을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며칠 전 미용실을 다녀왔다. 줄곧 짧은 커트 머리를 유지하다가 한동안 내버려 두었더니 덥수룩하고 어정쩡한 길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용실을 갈까 말까의 고민과 머리를 길러 볼까 말까의 고민사이에 봉착하는 동안 머리카락은 자유분방하게 제 멋대로 삐쳐나가고 있었다. 소싯적에는 허리까지 기른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나름 멋을 부리고 다녔다. 가끔은 어느 연예인이 유행시킨 사자머리 펌을 하기도 하고 와인칼라의 코팅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짧은 머리가 그리워질 때면 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당신에게 폐허의 의미는진과 나는 숙소에 조용히 쿠타이시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별다른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는데, 진은 무엇을 찾아보았는지 내게 폐허에 대해 말했다. 쿠타이시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버려진 폐허가 있다고,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진이 이야기했을 때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내일 가보자고 말했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별 다른 할 일이 없는 쿠타이시에서 조용한 일상을 하루 더 보내도 나쁠 것 없을 것 같았지만,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폐허라는 말이 마음이 동했다.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패션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걸이 같은 장신구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옷과 소품들을 좀 구입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돈이 없던 시절이라 주얼리류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당시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구입했던 저렴한 목걸이 두 개는 잃어버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귀를 뚫고 나서 한동안 열심히 귀걸이를 했었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서 그것도 귀찮아져 안 하게 되자 귀에 뚫은 구멍이 막혀버렸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귀걸이들은 결국 주변에 나눠주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쿠타이시의 그 남자쿠타이시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지아의 중간에 그 도시가 있다고 했고, 우리는 단지 수도인 트빌리시로 향하고 있었으며, 이왕 조지아에 온 김에 한 곳을 더 들려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쿠타이시에 무엇이 유명한지, 어디를 둘러보면 좋은지는 물론 대충 찾아 보았는데, 구태여 많은 걸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도시에서 모르는 채로 있고 싶었다.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는 했지만 쿠타이시의 규모는 부담스럽게 크지는 않아 마음이 편안했고, 너르게 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드디어 나의 첫 책이 드디어 나왔다.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어디론가 막 숨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제목이 조금 무시무시해서 그런지,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도 계신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 같이 쌈마이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친구들이 애쓰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문만 열고 나가면 어디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설로 엮어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사실 나는,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읽고 돌아서면 아무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내가 운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20대 후반 즘이었다. 그 전에는 튼튼한 두 다리와 대중교통이 최고의 이동수단이었고 운전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차량을 운전하는 일은 기계를 조작하는 일과 같은 맥락으로 여겨져서 나와 같은 기계치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분야라고 치부하였다. 그 때는 여성 운전자의 비율이 높지 않았고 게다가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설령 면허가 있다 하더라도 운전을 할 차량도 없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 상황에 차량을 소유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나를 보호하는 탑 앞에서내가 선물로 건네준 마그넷을 들고 B는 이 굴뚝 같이 생긴 게 무엇이냐고 내게 물었는데, 그 대답을 위해서는 내가 지나온 어떤 마을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다. 긴 여행 끝에 어느 외딴 마을에 갔고, 그 외딴 마을에서 어떤 굴뚝을 보았고, 그 굴뚝이 설명할 수 없이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야 했다. 벽돌로 지어진 우뚝 솟은 그 탑을 보고 내가 얼마나 기이하게 평화로웠는지, 그 느낌을 어떻게든 간직하기 위해 마그넷을 샀는지, 그걸 너에게 하나 건넬 만큼 네가 너를 얼마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우리 집에는 예전부터 식물이 꽤 많았다. 어머니가 화분에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옷방과 세탁실을 제외하면 우리 집에 식물이 없는 공간은 없다. 그 식물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연과 경로로 하나둘씩 들어와 집안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세어보니 우리 집의 화분 개수는 거의 60개고 수경재배 중인 관엽 식물까지 합치면 총 식물 수는 70개가 넘는다. 그중에는 어머니가 선물로 받으신 서양란과 동양란, 오래전에 유행했던 벤저민 고무나무, 아는 분의 꽃집 개점 기념으로 사 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