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노조 채용비리] 관련자들



"저녁 8시쯤 이력서를 들고 H파출소 근처의 모처로 찾아갔다. 그리고 (브로커에게) 이력서를 건넸다. 다음날 저녁 하청업체 3~4군데서 전화가 왔다. 이 가운데 한 업체에 최종 합격했다. 안전 교육도 받았고, 5공장 라인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출근 날짜까지 잡혔는데..."

울산 남구에 살고 있는 A씨(32)의 말이다. 그는 전직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직원이다. 최근 현대차 채용과정에서의 금품 수수가 언론에 오르내리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자신의 입사과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A씨는 지난 2003년 현대자동차 입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정규 직원으로 입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대신 현대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돈이 필요했다.


노조간부, 회사임원, 외부 브로커 연루 의혹

그는 "일단 하청업체 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중간 브로커에게 500만원을 입금해야했다"면서 "하청업체 입사가 확정된 다음, 안전교육까지 받은 상황에서 현대차 공장 인사팀 관계자로부터 (공장내) 다른 사업부로 옮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일단 (현대차) 하청업체 직원으로 들어가서 1~2년 고생하면 정규직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지만, 막상 정규직 전환때 별도의 추진비가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사를 포기했다. 그는 이후 해당 중간 브로커에 송금했던 500만원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고, 되돌려 받았다고 전했다.

A씨는 돈을 돌려받았지만, 현대차 울산공장의 채용 과정에 대해서는 혀를 내둘렀다. 울산 `바닥`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규직 채용을 둘러싼 금품거래는 뿌리 깊고 광범위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오히려 돈을 주지 않고 입사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A씨의 경우는 중간 브로커를 통해 하청업체를 연결해주는 조건으로 돈을 건네는 사례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하청업체는 500만~800만원, 정규직은 2500만~3000만원 선

<오마이뉴스>가 만난 현대차 전현직 직원 등에 따르면, 채용과정에서 비리가 개입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 정도로 모아진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 대의원에게 2000만∼3000만원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울산공장 인사 관련 고위 간부에게 직·간접으로 돈을 건네는 방법 등이다.

특히 공개채용 과정에서 회사쪽 고위 간부의 추천권을 따내기 위해 고액의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이들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돈을 건네는 과정은 보통 중간 브로커를 통해 입사 희망자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하고 있다. 오가는 금액은 대개 하청업체 직원으로 들어갈 경우 500만~800만원선, 정규직 채용은 대개 2000만~3000만원 정도 선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B씨(28)는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3000만원의 `뒷돈`을 간접적으로 제안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청업체로 근무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노조 간부로부터 직영(정규직)으로 가기 위해선 3000만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검찰은 10일 지난 2002년말부터 정규직 채용과정에서 수천만원대의 금품을 수수한 전현직 노조 간부 3명을 긴급체포 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노조 전현직 대의원과 집행부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그동안 공장 내부에서 공공연히 이른바 `빽`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늘어놓는 직원도 있다"면서 특정 공장의 이름을 대며, 불법적인 방식으로 채용된 직원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회사쪽 도움없이 노조 단독으로 채용비리는 불가능"

지난 2003년 현대차 정규직 채용에 응시했던 C씨(30)의 경우는 회사 임원의 추천권 사례를 전했다. 그는 "(정규직으로 가기 위해) 중간 브로커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돈을 넣는데 이때 회사쪽 임원들의 추천권을 이용한다"면서 "대개 임원급 인사에게는 2명의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채용 과정에서 공장 이사급 관계자의 이름을 추천란에 적게 되는데, 물론 사전에 돈을 건넨 쪽으로부터 해당 임원의 이름을 전달 받게 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추천권 장사`를 통한 채용 청탁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하지만 회사쪽에선 부인하고 있다. 울산공장 인사담당 관계자는 "인력 채용과정에서 노조에 인력을 할당하거나, 입사 원서에 별도의 추천란이 있지도 않다"면서 임원을 통한 추천 입사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채용 비리 과정에서 회사의 개입 의혹은 여전하다. 전직 현대차 노조 고위간부는 "노조에 별도의 인력이 할당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쪽 도움없이 노조 단독으로 채용비리가 이뤄졌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며 "노조 비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전형적인 기획수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
현대차 "회사쪽 채용비리는 없다"... 노조는 임단협에 미칠 영향 등 촉각

이와 관련해 현대자동차쪽은 노조 채용비리 수사가 알려지자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5월 중순께로 예정된 임단협 협상을 앞두고 이 사건이 향후 노사 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채용비리 가능성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현대차 울산 공장 관계자는 "기아차와 현대차는 같은 그룹사지만 인사시스템이 판이하게 다르다"면서 "신입사원들은 인사담당자와 면담에서 채용비리에 연루될 시 취업이 취소된다는 각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회사쪽은 비리가 드러나는 직원의 경우 원칙대로 처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현대차 노조쪽도 전현직 간부들이 긴급체포 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검찰이 지난 10대 노조 집행부 간부에 대한 계좌추적 등 수사 강도를 높여나가자, 향후 수사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아직 검찰 수사결과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다"면서 "검찰에서 집행부 차원의 조직적인 채용비리를 의도적으로 흘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사태를 두고 노조 차원의 양심선언을 요구하는 지적도 있다. 조가영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은 "인사권 자체가 회사에 있기 때문에 노조 차원의 조직적인 채용비리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일부 부도덕한 노조 간부로 인해 전체 노동자가 매도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이번 기회에 노조 차원에서 털고 갈 것은 털고가야 한다"면서 "자칫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까지 피해를 입기 전에 양심선언 등의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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