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최병선 교수 "올바른 평가 제도 정립위해 노력해야"

-특별기고: 대학, 졸업생으로 경쟁해야한다

신물이 나고 넌더리가 난다. 대학입시제도 논쟁 말이다. 수십년 째 끌어왔으니 이제 그만 좀 결론을 낼 때도 되지 않았나 싶건만 갈수록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그게 그거 같은데  대학이 고집하는 것은 논술고사이지 본고사가 아니란다. 교육부는 그것이 본고사의 변형일 뿐이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도무지 종잡을 길이 없거니와 왜 이런 소모적 논쟁을 거듭해야 하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대학교육의 현장에 있는 한사람으로서 제안하고 싶다. “제발 우리의 대학교육 문제를 똑바로 보자”고.  그리고 덧붙여 묻고 싶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입시제도 둘러싼 소모적 논쟁 언제까지

무한경쟁의 세계화시대,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관건인 시대에 교육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제규모 11위인 나라,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서울대학교조차 세계 100대 대학에 낄까 말까 하는 판국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교육경쟁력의 현주소다.

우리 대학의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가 재정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라는 것도 3불(不)에 속해 있으니 문제해결의 뾰쪽한 방도는 없다. 그러나 재정이란 언제나 풍족할 수는 없는 법이고 보면 마냥 재정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경쟁력은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머리에서 나온다. 발상의 전환이 경쟁력이다. 지금 대학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고, 학사제도를 강화해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교수들은 정성을 다해 가르치기만 해도 상당한 경쟁력 향상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얼마나 공부를 안 하는지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다른 누가 아니라 중고교생들이 이 사실을 가장 잘 안다. 이들이 죽기보다 싫은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것도 오로지 빨리 대학에 들어가 마음껏 놀자는 꿈(?)이 있어서다. 대학 들어가느라 죽도록 고생했으니 좀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신입생이나 그저 대학에 들어가 준 게 감지덕지인 부모들이  있는 그런 나라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대학생은 덜 떨어진 학생일 터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 대학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이유로 우수한 대학으로 인정받는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것은 우수한 학생을 배출한 고등학교의 자랑이어야지 그런 학생을 뽑은 대학의 자랑일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의 유명대학들은 학생을 잘 길러내고, 그 대학 졸업자가 사회 각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해서 유명해진 것이지, 우수한 학생을 뽑아서가 결코 아니다. 이런 대학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것은 그 대학의 성과와 평판이 부른 결과일 뿐이다. 우리의 사정은 이와 반대다. 통계가 없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순위는 바로 입학생의 성적순위가 아니던가.

우리나라 대학교육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대학이 성과와, 실적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이 이런 경쟁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간의 게임은 곧 우수학생의 선발게임으로 판가름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각 대학 출신의 우열을 정확히 가려낼 능력이 부족해 간판(대학명)으로 이를 대신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이상 학생과 학부모가 오로지 간판 얻기에 몰두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학은 비난을 비켜갈 수 없다. 도대체 해마다 입시제도 논란으로 온 나라를 들쑤셔 놓는 대학이 어느 나라에 있는가. 대학생에게 공부를 제대로 시켜서 입학할 때보다 더 우수하고 사회적으로 더 쓸모 있는 사람을 만들어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대학이 과연 이 나라에  있기나 한 것인가.

어떤 대학의 졸업자가 우리사회에서 인정받고 우대되고 있다면 그가 받고 있는 인정과 우대는 그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이미 결정된 것이지 졸업할 때 결정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고, 이 가능성은 유수대학일수록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입학생 경쟁이 아니라 졸업생 경쟁을
    
그러면 무슨 수로 대학이 입학생 경쟁이 아니라 졸업생 경쟁, 원료경쟁이 아니라 제품경쟁을 하도록 만들 것인가. 해결의 방향은 외길이다. 그것은 대학이 교육의 질, 졸업자의 취업성적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가 대학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대학이 입학생이 아니라 졸업생으로 경쟁하는 입장으로 돌아서면 입시제도의 문제해결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대학이 그리도 요란하게 신입생을 뽑아놓고서는 “입학시키고 보니 수학능력이 부족하더라. 그러니 이번에는 제대로 뽑아야겠다.”는, 제 얼굴에 침 뱉기 식의 불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바로 그런 학생을 제대로 가르쳐 우수한 인재로 길러내는 것이  대학의 책임이요 역할이 아니던가. 

대학이 대학교육의 본령에 입각해 참된 경쟁에 열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학의 평가기준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도 대학평가제도라는 것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교수대 학생비율, 건물, 실험시설 등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투입요소를 평가하는 것이지 그런 요소투입으로 만들어진 제품, 즉 졸업생의 질적 수준의 향상을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제도는 아니다.

 그런 제도는 쓸모없다. 아니 쓸모가 없을뿐더러 역효과가 많다. 교수의 연구능력이나 교수능력 등 직접적으로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인적 요건의 평가는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고 객관화가 힘들다는 이유로 경시되는 반면, 교육의 질과는 거리가 먼 물적 요건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현 대학평가제도의 병폐다.

지난번 칼럼 (제목: “간판사회가 문제이긴 하지만”)에서 이미 강조한 바 있지만, 간판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재능과 능력을 올바로 평가하는 지식과 기술이 충분하고 적절하게 개발되어 활용되지 않는 나라에서 간판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학평가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 서 있다. 대학졸업자들이 사회에서 얼마만큼 인정받고 성공적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출신대학별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대학의 방향 착오, 엉뚱한 경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올바른 평가제도 정립을 위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글쓴이 / 최병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한국정책학회장
미국 하버드 대학 정책학 박사
저서: 정부규제론, 무역정치경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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