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물건 잘 팔아쓰시고 대신 우리에게 행운을..."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이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8박 10일간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과 유럽의 사회보장제도 현황과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4개국 순방에 나섰던 시기에 광주 문흥동 자택을 도둑에게 털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특히 강 의원은 집을 턴 도둑에게 보내는 격려편지를 지난 12일 노르웨이 오슬로 현지에서 홈페이지에 올렸다.

 
강기정 의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도둑님 전상서`. 

강 의원은 `도둑님 전상서`란 제목의 의정일기를 통해 "만약 도둑님 당신이 문흥동 라인@ ****호가 국회의원 강기정 집이란 것을 사전에 알고 들어 왔다면 당신은 결코 큰 도둑이 아닌 듯 싶소"라며 "국회의원 집이면 장롱 한 귀퉁이에 현금 뭉치와 달러 그리고 귀중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을 당신은 변화된 현실 추세를 읽지 못하는 시대에 뒤 떨어진 도둑님이었다"라고 조소했다.

강 의원은 "내가 지난번 재산신고에서 5000만 원 정도의 재산이 갑자기 1억 6천만 원으로 늘어난 것을 보고 틀림없이 숨겨둔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거라는 짐작에서 집을 뒤진 듯싶은데 그 역시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에 따르면 도둑은 자녀들이 코 묻혀 가며 모은 저금통과 50만원 정도에 달하는 결혼반지와 목걸이 등을 훔쳐갔다.  강 의원은 "반지 목걸이는 9년 전 결혼 당시 두 사람 모두 직장이 없어 결혼 비용을 최대한 아껴 보려는 마음에서 예물을 거의 생략하면서도 못내 아쉬워 마련한 반지와 목걸이였다"고 전했다.

또 "큰 딸 하은이 돌잔치 때 여러 개의 돌 반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은 지난 IMF 금모으기 때  팔아먹고 하은이가 크면 주려고 남겨둔 기념 반지 하나를 들고갔다"며 "하루 종일 당신이 죄다 흩트려 놓은 방은 치우느라 속상해 할 집 사람을 생각하니 당신이 조금은 야속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강 의원은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국회의원집이라고 찾아 온 당신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되고 특히 소중한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을 큰 다행으로 삼는다"며 "훔쳐간 물건은 잘 팔아 쓰시고 대신 우리들에게 행운을 주시고 사랑과 애정을 굳게 지켜 달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1985년 전남대학교 삼민투 위원장을 지냈으며 85년 5.18 진상규명, 미국의 배후조종 및 학살개입 여부를 밝히고자 신정훈, 함운경, 허인회 등과 함께 미문화원을 점거했다. 이 사건으로 강 의원은 8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4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지난 2000년 총선과 2002년 보궐선거에서 광주 북갑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다음은 강 의원이 `도둑님`에게 쓴 편지 전문이다.
 
도둑님 전상서

2005년 5월 12일  강기정의 의정일기 

국회의원 집이라고 큰 맘 먹고 들어 왔을 텐데 막상 집을 온통 뒤져도 벌이가 시원치 않아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지요?

만약 도둑님 당신이 문흥동 라인@ 1003호가 국회의원 강기정 집이란 것을 사전에 알고 들어 왔다면 당신은 결코 큰 도둑이 아닌 듯 싶소.

국회의원 집이면 장롱 한 귀퉁이에 현금 뭉치와 달러 그리고 귀중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을 당신은 변화된 현실 추세를 읽지 못하는 시대에 뒤 떨어진 도둑님이었소이다.

국회의원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였소?

당신은 신문도 보지 않소?

혹시 내가 지난번 재산신고에서 5000만 원 정도의 재산이 갑자기 1억 6천만 원으로 늘어난 것을 보고 틀림없이 숨겨둔 돈이 조금이라도 있을 거라는 짐작에서 집을 뒤진 듯싶은데 그 역시 잘못된 판단이오.

그러니 지구 하은이가 코 묻혀 가며 모은 저금통이나 들고 가지요.

집을 샅샅이 뒤진 도둑님!

하필이면 당신은 내가 노르웨이 넓은 벌판을 횡단하고 있는 그 시간에 우리들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훔쳐 갔네요.

당신이 어제 가져간 물건은 돈으로 치면 50만 원 정도의 값어치 밖에 나가지 않는 결혼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얘들의 돼지 저금통이 전부였지요?

반지 목걸이는 9년 전 결혼 당시 두 사람 모두 직장이 없어 결혼 비용을 최대한 아껴 보려는 마음에서 예물을 거의 생략하면서도 못내 아쉬워 마련한 두 사람의 반지 하나씩과 목걸이였지요.

또 큰 딸 하은이 돌잔치 때 여러 개의 돌 반지를 받았는데 대부분은 지난 IMF 금모으기 때  팔아먹고 하은이가 크면 주려고 남겨둔 기념 반지 하나지요.

끼고 다니지는 않으나 가끔 꺼내보는 물건들이지요.

IMF때 마저 팔까 생각하다 그냥 보관하던 거지요.
당신은 그걸 훔쳐 간 거랍니다.

하루 종일 당신이 죄다 흩트려 놓은 방은 치우느라 속상해 할 집 사람을 생각하니 당신이 조금은 야속하답니다.

도둑님!

그래도 다행인 것은 국회의원집이라고 찾아 온 당신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되고 특히 소중한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것을 큰 다행으로 삼습니다.

훔쳐간 물건은 잘 팔아 쓰시고 대신 우리들에게 행운을 주시고 사랑과 애정을 굳게 지켜 주소서.(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베르겐 가는 길목에서 도둑든 소식을 듣고 5월12일)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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