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프로서 "고객돈으로 경영권 방어"


 
최근 삼성에 들어간 이인용 전무가 "MBC를 떠나 정치인이 된 이 사람이 기자 못지 않게 큰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현했던 당사자인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이 아이러니하게 삼성그룹을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가 편법 소유한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어 24일에는 MBC 시절 또 다른 동료였던 손석희의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삼성그룹에 대해 혹평했다.

금융 사업을 하겠다면서 고객 돈을 끌어 모은 재벌 금융기관들이 이 돈을 가지고 자기 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는 주식을 사들이는 것은 고객에 대한 배임이란 주장도 제기했다.

박영선 의원이 6월 제출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 ‘금융 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에버랜드의 주식을 25.64%나 가지고 있는 삼성카드는 5%만 남기고 나머지 주식을 모두 강제 처분해야 한다.

현행법에도 재벌금융사는 같은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있으나마나한 처벌 때문에 법 자체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돼 버렸다.

박영선 의원은 ‘시선집중’에서 “법에 따른 제재를 가해도 해당 회사가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팔겠다’라고 계획만 제출했지 여태까지 제재가 가해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는 과거 초과 보유한 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만 제한하겠다는 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박영선 의원은 이에 대해 사실상 재벌들의 입장만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의결권 제한만 해서는 이것이 법의 취지를 살릴 수 없다. 지금까지 갖고 있는 주식을 처분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특정 회사를 자꾸 거론하게 된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 진행자가 “삼성인가”고 묻자 박 의원은 “그렇다.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 25.64%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답변했다.

박영선 의원은 “삼성에서 의결권을 갖지 않는 쪽으로 먼저 정부에 건의를 했다”며 “삼성이 주식을 팔지 못하겠다는 이유가 회사 자체 경영에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삼성에버랜드의 삼성측 우호 지분이 94.48%로 거의 100% 다 소유하고 있는 형편인데 20% 가량을 매각한다고 해서 경영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해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과거 주식 처분명령은 소급입법’이란 반론에 대해 박 의원은 “주식을 산 것은 과거 행동이지만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며 “(현재 소유 주식을 처분토록 하는 것이) 소급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재벌 서열 2위 현대자동차 그룹이 주식을 처분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떳떳한 자세를 재벌 1위 삼성이 본받으라는 충고도 나왔다.

박영선 의원은 “현대자동차 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캐피털은 기아자동차 주식보유 지분을 6.82% 가지고 있다”며 “차차 단계적으로 처분해 이것을 5% 아래로 줄이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카드도 에버랜드 주식 25.64%를 단계적으로 처분해서 보다 떳떳한 금융회사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 진행자는 “현대캐피털이 주식 매각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겼는데도 삼성에버랜드가 1년 이상 버티고 있는데 대해 정부가 전혀 제재를 않는다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동의했다.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촵합병 핑계를 대는 재벌들의 엄살에 대해 박 의원은 “재벌의 억지논리”라고 일축했다. 그는 “선진국 가운데 산업자원과 금융자본을 분리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경영이라든가 또 건강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박 의원은 그러나 “단계적으로 처분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다”며 “3년이나 5년 정도의 기간을 줘서 매년 몇 %씩 조금씩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박영선 의원은 법개정안에 대해 “당과는 아직 의논을 한 게 아니고 재벌과 경제에 관한 소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얻은 금융자금과 산업자본의 분리라는 교훈이 명쾌하게 정리가 돼야 보다 더 글로벌 기업화 할 수 있고 떳떳한 기업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의원은 “이 기업을 어떤 사람이 물려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시스템이 잘 돌아가야 이것이 글로벌 기업화 될 수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철저한 잣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영선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도 삼성카드의 금융산업법 위반 문제와 잇따른 유력인사 영입 행태를 한데 묶어 “총체적 난국을 보이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지금까지 몇몇 의원들이 삼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듯 하다 막상 발언 시간에는 생략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 것과 달리, 박 의원은 지속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내들고 있다. 삼성의 이인용 전무가 옛 동료에 대해서 표현한 “당당한 태도, 거침없어 보이는 언변”이 그대로 삼성에 대한 핵펀치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처럼 삼성이 듣기 싫어 하는 소리를 찬찬히 뜯어보면 오히려 삼성이 계속 ‘삼성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들어 있다는 지적이다.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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