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신평 김기상의 영화 다시보기

 

  7,80년대에 별다른 문화생활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해마다 크리스마스에는 <쿼바디스>를 시청하고 석가탄신일에는 <서유기>나 `효`를 바탕에 깐 홍콩의 무협 불교 영화를 TV에서 싫증나게 보았을 것이다. 며칠 전 석가탄신일에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영화는 갈수록 점점 자극적이 되어간다. 관객들이 원하는 강도가 높아져서 인지 아니면 영화 제작사들의 지나친 친절(?) 때문인지 잔혹성의 수위가 높아만 간다.
  그중 한몫을 하던 김기덕 감독이 내놓은 <봄 여름...>은 김기덕 감독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김기덕 감독은 입봉작 <악어>를 비롯해 <야생동물 보호구역>,<파란대문>,<섬>등에서 아웃사이더들의 냉혹하거나 폭력적인, 그 잔인함으로 가득했었다.
  `봄`부터 시작되는 화면은 대중적인 메이저급 영화처럼 초반부터 관객을 압도하려는 획기적인 장면을 무리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물 흐르듯 편안하게 `기승전결`을 향해 흘러간다. 그동안 한국적인 정서를 화면으로 보기가 드물었기 때문인지 화면 속도가 늦은 감이 있어도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화면이 아름다우면 관객은 그 속에서 스스로 대사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호수 한 가운데 떠 있는 암자, 그곳에서 생활하는 노스님과 동자승.
  `봄`에서 동자승(主人公-主로 생략하여 표기함)의 무의식적인 동물학대(물고기, 개구리, 뱀) 행위가 노스님의 노여움을 사고 그 행위의 원점으로 돌리려 하나 모든 일은 항상 행위자가 원하는 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다.
  `여름`의 청소년기에서 主는 사연(병)을 갖고 찾아온 모녀 중, 어머니는 떠나고 남아 있는 여고생을 통해 이성을 알고 기쁨과 헤어지는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된다."는 노스님의 말씀이 심상치 않다. 결국 主는 불상을 바랑에 집어넣고 밤도망을 한다.
  `가을`이 되어 노승은 主가 내버린 닭 대신 고양이를 데려온다. 노승이 탁발로 가져온 떡을 싼 신문지를 펼치니 도망간 主의 얼굴이 살인사건의 수배자로 실려 있다. 결국 집착이 살의를 품고 일을 저질렀다. 가방 속에 불상을 넣고 피 묻은 칼을 품은 主는 돌아왔다. 그의 눈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다. 적개심과 살기로 번뜩이고 있다. 그는 독기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자살을 하려하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主를 찾아온 형사 앞에서 노스님의 부탁으로 主는 날이 새도록 반야심경의 서각을 뜬다. 主가 끌려가고 노스님은 스스로 입적한다.
  `겨울`이다. 형을 마치고 돌아온 主는 얼어붙은 호수를 걸어서 건넌다. 얼어붙은 얼음폭포에 불상을 새기고 서랍에서 발견한 `도(道)` 책자를 보고 몸을 단련한다.
  보라색 스카프로 얼굴을 감싼 여인이 어린아이를 안고 찾아온다. 아이를 두고 새벽도망을 하던 여인이 호수의 얼음 구덩이에 빠진다. 물에 빠진 시체를 主가 건져 스카프를 벗겨본다.
  主는 맷돌에 밧줄을 감아 허리에 두르고 깊숙이 모셔 두었던 불상을 꺼내들고 어린 동자승 시절 괴롭혔던 물고기, 개구리, 뱀을 생각하며 산 정상에 오른다. 主가 키우던 어린아이가 동자승으로 성장하고 예전의 主처럼 동물학대(물고기, 개구리, 뱀)를 재연한다. 산 정상에서 主가 모셔놓은 불상이 내려다본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보여 주려 했음인가. 이 영화가 무엇을 암시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이 무엇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
  유달리 색감에 민감한 김기덕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화면을 차지하는 거의 모든 장면이 사계절 풍경인데 거기에 어찌 대항하겠는가. 사실 `한국적`인 색감은 자연을 제외하면 거의 무채색에 가깝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유독 눈에 띄는 색상을 짚어 낸다면, 어린아이를 안고 찾아온 여인의 얼굴을 뒤덮은 보라색 스카프다. 그 보라색은 미지의 여인과 어우러져 여인의 움직임에 신비함을 실어준다. 한 가지 사족을 붙인다면 `겨울`에 직접 출연한 김기덕 감독의 첫 장면에서 김감독이 입은 빨간 바지는 어울리지 않고 옥의 티처럼 거슬렸다. 김감독이 왜 빨간 바지를 입었을까가 궁금했다.
  이 영화에서 다소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면 主의 성장과 계절에 배우를 교체한 점이다. 동자승이 자라서 청소년이 된 장면의 변화는 이해되지만 그 밖에 `가을`에 나타난 수배중인 主와 `겨울`의 主는 생뚱맞은 느낌이 들어 전체적인 흐름에 무리를 주는 것 같다. 내용상 主의 성격적인 변화는 배우의 연기력으로 묻어가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겨울`에서 `도`의 책자를 보고 수련하는 장면은 상투적이라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아쉬웠다. 
  돌고 도는 인간사에 적당히 거친 호흡을 섞었다. 부담 없이 한 폭의 한국화를 본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이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달리 어깨에 힘을 빼고 찍은 작품이다. 편한 마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 같았다. 행여 해마다 석가탄신일에 방영되는 건 아닌지. <김기상> (김기상님은 서예가로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거처를 두고 작품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위클리서울에 영화 리뷰와 함께 문화 칼럼과 기사 등을 게재해주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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