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노동자연대운동 15년사' 출판기념회 현장


 
24일 오후 7시 ‘한일노동자연대운동 15년사’ 출판기념회가 전주 민촌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전북 지역 대안언론 `참소리`가 스케치해 본 그날의 현장 모습이다.

전북지역과 일본 오사카지역의 노동자들의 교류와 연대활동은 15년전인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섬유기업인 아세와스와니 익산공장의 노동자들이 노동탄압에 항의하며 일본원정투쟁에 나섰고 전항만 소속 오사카 지역의 노동자들이 이들을 지원했던 것.

이를 기점으로 일본의 노동자들이 한국을 방문했고 지속적인 한일노동자연대운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96년부터 본격적인 한일 노동자 교류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8~9월 경엔 전북의 방문단이 오사카를 방문하고, 11월 노동자대회에 즈음해서는 일본의 노동자들이 방문했다. 이렇게 오고간 노동자 및 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수만 1백여명.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전북의 노동자들은 해년마다 노동법 개악,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반대, 한일FTA, 반전평화 등 공동의 사안을 갖고 일본 노동자들과 고민했다. 또 일본의 노동자들은 군산 기아특수강(현 세아특수강)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군산미군기지 투쟁, 공무원노조투쟁 등에 연대했다.

지속적인 교류와 연대는 사안별, 특정 주제별 연대를 넘어 폭넓고 깊이있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내와야 한다는 고민으로 심화됐고, 지난해 일본에서 일한민주노동자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철의 노동자’ 소식지를 발간하며 구체화됐다.

이어 전북에서도 한일민주노동자연대 전북모임이 구성됐고, 일본 노동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시기에 맞춰 지난 15년을 정리하는 책자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한일 노동자연대, 15년의 궤적

양면에 각각 한국어와 일본어로 기재된 책자에는 15년사를 요약정리한 약사, 한일 노동자교류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노동자들의 생각과 다짐, 15년을 돌아보는 좌담회 등이 실렸다.

한일 노동자 교류의 단초가 된 아세와스와니 투쟁을 당시 현장 노동자의 구체적인 증언 등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고, 한일 교류과정에서 느낀 각국 노동자들의 문화적 특성과 노동현실에 대한 소회들을 적었다. 또 한일 노동자연대운동의 더나은 전망을 모색하기 위한 운동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글귀에서 드러난다.

좌담 중에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익산노동자의집에 있던 문정현 신부가 ‘일본놈이 왔다’며 지팡이를 먼저 들어 당황했다는 나카무라 다케시 씨의 회고담도 눈에 띈다.

이렇듯 15년간을 지속적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개별적인 운동가들의 노력이 크게 기여했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한일 각국의 노동자들이 시대만 약간 다를 뿐 같은 길을 가고 있고 더 나은 삶을 꿈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보다 10여년 빨리 구조조정과 노무관리방식의 변화를 맞은 일본의 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이 젊고 활기차다고 느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노동운동에 새희망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일본 노동운동의 후퇴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아가 자본의 해외진출에 따라 만들어지는 또다른 나라의 노동탄압에도 공동으로 연대하며, 동아시아 노동자들의 연대를 꿈꾸기도 한다.

일단 시작하면 ‘계속은 힘이다’

“15년이 지나고, 나는 61세가 되었습니다. 향후 몇 년이 내 일생에 남아있는지를 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여권은 2010년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그 때에 갱신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동안 전북동지들의 뜨거운 뜨거운 동지애에 감사하면서, 일-한 노동자의 연대가 앞으로도 뜨겁게 계속될 것을 바라면서, “소년이여! 큰 뜻을 펴라, 이 노인과 같이.”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보냅니다.
시작할 때는 ‘시작이 반이다’이고, 일단 시작하면 ‘계속은 힘이다’입니다.“
- 나카무라 다케시, ‘전북-오사카 한일노동자연대운동 15년사’ 중에서

24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전북-오사카 노동자연대를 이끌어온 한일 노동자들이 참석해 책자 출간을 자축했다.

한일민주노동자연대 전북모임의 오기주 위원장(민주노총 전북본부 부본부장)도 연단에 나서 “그간의 교류활동은 우리의 고통과 그들(일본 노동자들)의 고통을 함께 하는 시간이었고 그 깊이를 현장방문을 통해 체험하며 느낄 수 있었다. 한일 선배님들의 몫을 조금 더 젊은 세대가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노조 교육프로그램 연수를 목적으로 올해 한국방문단으로 참가한 세명의 일본노동자들과 전북지역 노동자들의 인사 및 소감도 이어졌다. 연단에 오른 사람들은 15년간 변함없이 교류연대의 중심에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온 나카무라 다케시 씨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가장 먼저 한일 노동자 교류의 물꼬를 만들고 올해로 30회째 한국을 방문한 나카무라 다케시 씨(전일본항만노조 관서지방 건설지부 부위원장). 그간의 활동에 감사하며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그를 지도위원으로 추대했고, 환갑을 맞던 지난해에는 전북지역에서 별도의 축하회를 여는 등 남다른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나카무라 씨는 “15년 동안의 기록사진들을 보며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것도 느낀다. 15년간 교류사업을 지속하고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힘들다기 보다는, 매번 새로운 기대를 갖게되는 즐거운 일이 됐다. 이제 일한민주노동자연대와 같은 조직들이 만들어졌으니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류와 연대를 하자”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약 한시간 가량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저녁식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지역을 방문한 일본노동자들은 25일 귀국한다. 그리고 올 가을 한국 방문단이 꾸려지고 일본을 방문하며 15년째의 교류프로그램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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