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젝슨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 피터젝슨 감독/ 1994년

 사춘기 소녀들에게 서로의 존재 필요성은 매우 크고 중요하게 자각된다. 필자도 여고를 나왔다. 남학생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고, 여자친구들과 더 잘 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과 붙어 다녔었다.
무리를 지어 뭉쳐 다니던 패거리 안에서는 단순히 가까운 친구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커플선언을 한다 해도 그것이 그리 낯선 일만은 아니었다. 그때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 그들만의 어떤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소녀들의 로망이었다. 사랑과 우정의 선을 분명하게 그어놓고서는 감성에서조차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구분 지어 놓는 어른들의 세계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에게 너무도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것이지도 모른다.
이러한 면에서 소녀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누구도 쉽게 이해 할 수 없으며, 그들보다 나을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세계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소녀들. 그것은 그들의 전부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절대적 필요성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는 아마도 거기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세계를 가지는 데에는 교감하는 서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에 대한 지나친 의지는 집착으로 변형되며 그것은 때때로 절망을 가져오기도 한다.

잔혹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파커-흄’사건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부모를 살해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이 사건은 ‘잘 때 문도 안 잠그고 자는’ 평온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더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젝슨이 연출한 이 영화는 부모가 자신과 친구와의 우정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파커가 친엄마를 죽이게 되는 내용이다.
소재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한 이 영화는 젝슨의 비주얼적인 영상 감각과 드라마가 가진 스토리의 탄탄함과 더불어 두 사춘기 소녀, 흄과 파커의 관계를 굉장히 공포적이고 몽환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드라마 장르적인 특성을 뛰어넘어 스릴러장르까지 감상 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젝슨 감독은 보통 스플래터(사지가 잘리고 피가 이리저리 튀는 잔혹영화) 전문감독으로 알려져 왔으나, 그의 영화이력을 보면 그가 각기 다른 장르, 다른 스타일들의 영화를 섭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한가지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면 ‘어떤 금기에 대한 파괴’다.
초기작 <피블스를 만나요>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살인, 섹스, 불륜, 인신매매, 폭력까지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악이 등장한다. 젝슨은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다른 세계, 금기에 대한 인지를 대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8세기부터 낭만주의 작가들 사이에 번져가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은유가 이 영화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질병을 광기에 대한 억압이 표현되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천재성을 대입시키던 낭만주의 시대의 은유의 세계는, 금기되어야 할 것들에 판타지나 환상을 가진 사람들의 또 다른 세계이다.
낭만주의 소설의 주인공은 주로 폐병이나 결핵에 걸렸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몸은 연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늘 사유와 사색의 길을 걸었다. 그런 면은 지식을 갈망하던 층들에게는 로망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로망...낭만주의 예술가의 로망

이 영화가 비단 사춘기 소녀들의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다. 예술과 창작에 대한, 그러니까 재능있는 예술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능은 보이나, 미친 것처럼 보이고 위험하다. 감독은 파커와 흄과 같이 많은 예술가들은 재능과 광기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런 면에서 볼 때 <천상의 피조물>을 ‘낭만주의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모든 사춘기 시절이 불만과 금기, 그리고 환상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것만은 아니다. 다소 공포스럽고 진지한 사춘기 영화 <천상의 피조물>을 보면서 어떤 희열을 느낀다면, 자신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돌아보시길 바란다. 분명 죄악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민경 기자 

- 필자는 전주대학교 영화학과에 재학중이며 몇개의 단편영화를 직접 연출한 바 있다. 영화학도인 필자가 짧지 않은 간격으로 참소리 지면을 통해 영화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코너 이름 `영화 두레질`은 두레로 물을 퍼올리듯 무수히 많고, 또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의 바다에서 함께 읽고,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건져올리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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