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박주영을 살리려면
죽어가는(?) 박주영을 살리려면
  • 승인 2005.06.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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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조급함’이다. 곰의 은근과 끈기도 한국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지만 현대에 오면서 은근과 끈기보다는 조급증이 먼저 거론되곤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특별한 정설은 없지만 추측컨데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6,70년대를 거쳐 80년대를 지나면서 급격하게 서두른 경제 개발, 선진화, 민주화 등등이 아닌가 싶다.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그렇다보니 사람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또 기대하는데 있어서도 그런 경향이 보인다.

요즘 축구 국가대표의 슈퍼 루키라고 불리는 박주영을 보면 그렇다.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은 어린 선수에게 ‘축구 천재’니 ‘제 2의 마라도나’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박주영은 요즘 답답한 한국 축구의 현실에 분명 신선한 샘물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대표 최고의 보석이 된 박주영

청소년 대표선수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와 박주영의 소속 프로팀인 FC 서울이 한동안 감정대립을 했을 때도 그를 아끼는 팬들은 의견이 엇갈리며 덩달아 흥분하기도 했다.

또 그의 성인 대표팀(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놓고도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에서부터 반드시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지난 3일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가 있던 심야, 대부분의 팬들은 박주영이 대표팀에 발탁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내내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던 한국 국가대표팀이 후반까지도 0대 1로 패색이 짙었을 때 박주영이 기적 같은 동점골을 터뜨리며 무승부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만약 박주영이 선발되지 않았다면” 또는 “선발은 됐지만 경기를 뛰지 못했다면” 그리고 “선발로 출장했는데 후반전에서 다른 선수로 교체됐더라면” 등 갖가지 “…라면”을 외치면 기뻐했다.

그것을 보면 분명 이번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박주영 선발은 결과적으로 잘 한일이 된 것이다.

박주영의 혹사, 해도 너무한 수준

하지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박주영에 대한 이런 기대들이 자칫 박주영을 단명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최근 박주영의 활동을 보면 가히 ‘죽음의 일정’이다.

박주영은 지난 달 20일까지 국내 프로무대에서 맹활약했었다. 소속팀이 FC 서울은 거의 모든 경기, 그것도 풀타임으로 박주영을 그라운드에 있게 했다. 이유는 하나. 박주영이 뛰어야 관중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FC 서울은 중위권 정도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박주영이 팀에 합류한 이후 엄청난 관중 동원에 성공했다. 이는 단순히 FC 서울만의 경사는 아니었다. 박주영이 뛰는 경기에는 적진에서도 엄청난 관중이 몰렸다. 때문에 FC 서울은 물론 타 구단과 협회 관계자들도 박주영의 결장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국내 프로리그에서 활약한 박주영은 5월 24일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고 맹훈에 들어갔다.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도 그렇지만 A매치 데뷔 경기, 월드컵 6회 연속 본선 진출, 그리고 ‘죽음의 원정길’로 불리는 2차례의 경기 등의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도 훈련은 강도 있게 진행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훈련을 마치고 박주영은 31일 서울을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적진, 그것도 체감 기온이 섭씨 40도에 이르는 열악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 시각으로 6월 1일 도착, 현지 적응을 한 후 3일 경기를 가졌고, 박주영은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이자 한국 대표팀을 나락에서 건진 동점골을 터뜨리며 환희에 찼지만 이내 5일 다시 쿠웨이트 원정길에 올랐다.

쿠웨이트의 자연 환경은 우즈베키스탄보다 더 열악했다. 낮 기온은 섭씨 45도, 경기가 있을 저녁 기온도 37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또 다시 현지 적응을 한 박주영은 9일 쿠웨이트와의 경기도 치른다.

여기까지는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 중에도 비슷한 입장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9일 경기를 마친 다음부터가 문제다.

9일 경기 직후 박주영은 이번엔 바로 네델란드로 떠난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10일부터 시작되는 대회는 한국팀이 결승까지 오를 경우 19일 정도까지 경기를 계속한다.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보석이 된 박주영이 선발 풀타이머가 될 것을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가 끝나도 박주영에게 휴식은 없다. 대회의 성적이 어떻게 되건 대회를 마친 후 귀국한 박주영은 곧바로 국내 프로리그의 경기에 투입될 것이다.

가뜩이나 박주영이 자리를 비운 한 달 여 간 FC 서울은 물론 국내 프로리그가 영 재미 없었을테니.

죽어가는(?) 박주영을 살릴 수 있는 묘약은 없는가

아무리 아직 어려서 혈기왕성한 젊은이라도 이건 너무 심하다. 자신의 몸을 돌볼 최소한의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 선수의 기본적인 체력이 아무리 강건하다고 해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과연 박주영을 어떻게 배려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한다. 배려라는 단어도 멋쩍다. 좀 더 과장해서 생각한다면 그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부터 각광받는 운동선수들이 무리한 출장 때문에 선수생명이 단축되는 것을 심심찮게 목격해왔다. 국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트의 임수혁 선수도 기억하고 있다.

물론 한참 물올라서 훨훨 날고 있는 박주영을 놓고 선수 생명의 단명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도 적절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걱정해야 한다.

다음 달 10일이면 박주영의 나이 이제 만 19세가 된다. 황선홍이나 홍명보, 그리고 유상철 등을 생각하면 앞으로 그가 국가대표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할 기간이 적어도 15년은 남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처럼 박주영을 혹사시켰다가는 15년은 커녕 그 절반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된다.

물론 1년 정도만 있으면 그는 청소년 대표에서는 제외될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북경 올림픽에도 분명 대표 선수로 뛰어야 할 것이고, 2010년 또 다른 월드컵에도 뛰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런 악순환으로부터 박주영은 자유로울 수 없다. 최소한 올림픽 대표에서 빠지는 23세가 되는 2009년까지는.

이제는 어떤 경우든 대표팀(그것이 월드컵 대표가 됐든 아니면 청소년 대표가 됐든)에서 박주영이 빠진 상황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본프레레 감독이나 축구 협회에서 필자의 의견에 동의해 박주영을 뺀다고 하면 국민들의 질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이제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박주영을 일찍 죽이지 않고, 그가 대선배인 황선홍 홍명보 등의 뒤를 이어 오랜 세월 한국의 대표적인 축구 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어쨌든 어린 나이에 죽음에 이르는 강행군으로 국회의원들 보다 훨씬 애국하고 있는 박주영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석원 기자 galamoi@dailyseop.com <이석원님은 현재 데일리서프라이즈 인터넷팀 차장으로 근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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